나는 아이의 인스타그램을 본다

by 고도리작가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스마트폰이 생겼다. 눈물로 호소해서 겨우겨우 스마트폰이 생겼는데 그것도 하루에 1시간 30분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졌다.

사용할 수 있는 어플도 일일이 아빠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인데도 시간 늘려달라는 요구 없이 딱 그 시간만 사용하니 참 용한 아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는지 늦은 시간에 가끔 내 핸드폰을 빌리곤 한다. 급하게 확인할 게 있다고

하루 1시간 30분은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별 말없이 폰을 빌려준다.

아이는 인스타그램을 한다. 공부 인스타그램. 줄여서 말하면 '공스타'

매일매일 다이어리에 그 날의 결심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 여부를 O X로 표시한다.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면서 계획을 올 클릭 한 날도 있고 8시부터 잠이 들었다며 텅 빈 날도 있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 말고도 하루에 적게는 3시간 많게는 6시간씩 공부하니 내 딸이지만 참 대단하다 싶다.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이라 시험다운 시험을 본 적이 없어 정확한 등수를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성실하게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


매일매일 남기는 문장도 참 인상적이다.

'힘들게 찾은 꿈이잖아. 나중에 공부에 발목 잡히기 싫으면 지금 열심히 해봐.'

'모두가 바쁘게 하든 경쟁하라 배웠으니 우린 우리의 시차로 도망칠 수밖에.'(무슨 뜻이지?)

'열심히 해서 오는 건 번아웃 증후군, 놀아서 오는 건 그냥 넌 아웃이군.'(와 이거 괜찮다.)

'우리가 출발한 곳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어디를 향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일단 공부를 잘해놓으면 성공할 길이 백 가지 천 가지 더 주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노력 없이 성공을 바라는 건 양아치 짓이다.(오~)

'자신감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몇 시간, 며칠, 몇 주, 몇 년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의 결과인 것이다.'



도대체 이런 멋진 말들은 어디서 커닝(?)하는 것일까? 하여간 창작이든 커닝이든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자기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서 사고 싶은 거 다 살 거라고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해 대더니 그래도 속은 꽉 찬 모양이다.

공스타그램을 하는 다른 친구들이 서로 팔로잉하면서 오늘도 수고했어요. 으쌰 으쌰 응원하는 댓글을 남겨준다.

참 대단하고 멋진 아이들이 많구나.

그런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우리 첫째가 참 대견하다.


저녁 늦게 엄마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니 늘 내 폰의 인스타그램은 로그인되어있고 아이 친구들이 대화를 보낼 때마다 울림이 와서 본의 아니게 살짝살짝 훔쳐보게 되는데 특별히 비밀스러운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괜히 걸려서 자꾸 엄마가 보게 되니까 엄마 폰을 사용한 후에는 인스타그램을 로그아웃해 보라고 했더니

"뭐 엄마가 봐도 상관은 없지만..."

상관은 없지만 로그아웃은 하겠다는 의도였을텐데 아직도 로그인 상태. 나는 아직도 아이의 인스타그램을 본다.


주변에 학부모들에게 첫째가 중학교 1학년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사춘기??"

엄마들에게 사춘기는 엄마 말 더럽게 안 듣고 괜히 반항하고 공부도 안 하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시기를 뜻할 것이다.

구구절절 우리 아이에 대해 말할 수는 없어서 우리 애는 아직 착하다고 말할 뿐이다.

친구들과의 사적인 대화에 대해서도 엄마에게 개방적인 아이. 매일매일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아이.

가끔 그런 딸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고 웃은 적도 있다.


퇴직을 결정하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큰 아이와의 관계

아이와 부딪칠까 봐. 아이와 갈등이 생길까 봐.

혹시 내 잔소리가 아이의 생활을 지옥으로 만들까 봐.


이젠 내가 나서서 아이를 끌고 갈 상황도 아니다.

아이가 배고프다면 먹을 걸 주고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고

늦게 귀가하는 아이에게 "수고했어 배고프지 않아?" 한마디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비밀이 없도록 하는 것.

힘든 일이 생겼을 때는 꼭 먼저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이 굴곡진 삶을 안정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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