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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pr 01. 2021

엄격하지만 공평함

엄마 수행 평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이었다.

원칙은 반드시 필요하고 원칙이 있어야 서로 편하고 원칙은 지키기 어려워도 결국 아이들을 성장하게 해 준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사줄 때는 조금 모자란 듯이 한다.

아이들이 물건의 소중함을 알고 무언가 갈망하며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부모의 도움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어떤 것. 소위 fighting 정신 또는  Grit(끈기, 투지) 같은 것을 키웠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이들 마음속에 결핍만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다.


우리 집 초등 2학년 아들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장난감은 한 달에 한 개만 사기.

한 달에 한 개면 적은 것 같지만 장난감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사주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어린이날같이 특별한 날도 있어 우리 집에도 장난감이 넘쳐난다. 그뿐이냐 오며 가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참 많이도 산다. 

하여간 심심해서, 또는 마트 갔는데 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냥 사는 장난감은 한 달에 한 개다.

이 원칙은 여러모로  쓸모 있다. 

특히 마트 갔다가 무언가 사고 싶어 해도 기다렸다가 다음 달에 사자고 할 수 있다. 

아들도 한 달에 한 개 원칙은 수용했다.


문제는 또 있다. 언제 사느냐?

물론 원칙은 매달 첫날 이길 바랐으나 이것도 변수가 많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첫날 사느냐 배송기간만큼 일찍 사느냐

1일이 마트 문 닫는 날이면 그 전날 가느냐 같은 것

뭐 이 정도 사정은 융통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정이 전혀 없는 날. 1일이 가까워질수록 아들은 안달이 난다.


최근 아들은 동네 문구점에서 무선 이어셋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전달 마지막 주부터 타령을 하는데 이때부터 며칠간 아이와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려는 엄마와 며칠은 좀 봐줬으면 하는 아이

하루 종일 긴장이 계속될 무렵 우연히 유튜브에서 오은영 박사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원칙은 필요하지만 너무 높고 이상적인 원칙을 정하고 지키도록 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원칙을 정하고 상황에 따라 타협할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아이를 말 잘 듣게 하기 위해 어른이 기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건 잘못이다. 부모는 어른이고 아이는 아이이다. 아이는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지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니다. '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다음날 나는 아들 앞에 앉았다.

"아들 그게 그렇게 갖고 싶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 

"그래 오래 기다렸으니까 오늘 사자. 대신에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그게 뭐라고 했지?"

"응 뭐든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맞아. 잘 기다렸고 우리 다음 달은 이번보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문구점으로 갔다. 부모 노릇하기 참 힘들다.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하는 것이 좋은 건지 맞는 건지 사실 모르겠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정말 모르겠다.

나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게 쉽고 편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 쉬운 길을 택할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언젠가 엄마의 뜻을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최근 아들에게 '엄마 아빠를 바꿔주는 가게'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주인공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은 하는데 너무 엄격하고 사사건건 바른 습관을 지적하는 부모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 아빠 중고가게에 팔아버린다.

많은 부모들이 중고가게에 팔리고 아이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부모를 고른다. 

부모들이 들고 있는 팻말이 재미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하게 해 줌

용돈 넉넉함

취침시간은 7시

군것질 절대 안 됨

매일 시금치를 먹어야 함

뭐 이런 식이다.


주인공은 학교도 안 가고 실컷 놀다가 원래 자기 부모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었는지 깨닫고 부모님도 원래 딸이 얼마나 괜찮은 아이였는지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부모님이 들고 있는 팻말은 이러하다.


엄격하지만 공평함


나는 아이들에게 엄격한데 과연 공평했을까?


내 옷장에 터질 듯이 걸린 옷들과 선물로 받고 샘플로 받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나 유통기한을 넘긴 화장품들. 그래도 내 피부에 맞지 않는다고 또 화장품을 사는 내가, 요즘 봄이라고 몇 장의 티셔츠를 한꺼번에 사는 내가 과연 공평한가?


그림 선생님이 어느 날 기분 나쁜 말 했다고 돈만 내놓고 한 달 내내 가지도 않았던 내가 과연 아이에게 학원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뭐라 할 수 있을까?

바이올린 몇 개월 배우다 내 취향이 아니라며 바이올린만 사고 그만두었던 내가 아이에게 한번 시작한 악기는 끝까지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들이 하고 싶어 해서 작년 여름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거 정말 걱정이다. 다만 처음처럼 매일 가기 싫다고는 하지 않아서 조금 더 지켜볼 참이다.-

나는 엄격한데 공평하지는 않은 부모가 아닐까? 

아이와 어른에게 똑같은 잣대를 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너무 깐깐하고 나에게 너무 관대한 거 아닐까?


어릴 적 기억나는 슬픈 장면이 있다.

키가 작은 아이가 손이 닿지 않는 신발장 제일 위칸에 있는 빨간 구두를 너무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선물 받은 구두. 할머니는 어디 놀러 갈 때만 신고 평소에는 못 신게 했다. 결국 발이 커져 영영 못 신게 된 빨간 구두.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강조하는 원칙은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많은 부모들의 우스꽝스러운 규칙은 모두 자신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이다.

자신도 시달렸고 강요당한 원칙을 또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


그러나 나는 결국 내가 정한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만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야지. 아이들 숨통을 트여줘야지. 가끔은 예외도 인정해 줘야지. 다만 길게 보고 바른 방향으로 가게 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이들에게는 조금만 더 관대하게 나에게는 조금만 더 엄격하게

아이가 크는 만큼 나도 큰다. 

오늘은 또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부모 되기 참 다이내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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