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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pr 08. 2021

둘째가 억울해?

엄마 수행 평가

나는 둘째였다. 두 살 위 오빠가 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집안 어른들이 그랬듯 남자면서 윗사람인 오빠는 늘 나보다 대우받았다. 

집안 행사 때도 오빠는 큰 상에서 밥 먹고 나는 작은 며느리 상에서 먹었다. 

조금씩 철들면서 이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엄마에게 투덜거리는 것뿐 계속 생각하는 것도 귀찮았다. 나는 어느 때부터 작은 엄마들이랑 작은 상에서 밥 먹는데 속 편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정말 부당하고 억울한 건 따로 있었다. 

둘째라고 꼭 오빠보다 용돈을 적게 주는 것.  

아빠 형제들이 많아 명절이나 제사 때 나는 꽤 많은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었다.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어른들은 조카들에게 후했다. 

나는 행사가 끝나고 용돈 주머니를 정산하곤 했는데 늘 오빠보다 적은 게 불만이었다. 

어른들은 오빠보다 나에게 용돈을 적게 주었다.

어릴 때는 오빠 3천 원, 나 2천 원 

조금 크면 오빠 5천 원, 나 3천 원 이런 식이었다.

왜 나는 적게 주냐고 따질 수도 없고 엄마한테 물어보면 늘 같은 말이다. "넌 더 어리니까"

나에게 그건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릴 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억울했다. 


어른이 되었다. 결혼하면서 조카가 생겼다. 두 살 터울의 자매였다.

일 년에 몇 번 만날 때마다 나는 둘째도 첫째에게 똑같은 액수의 용돈을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문제가 생겼다. 큰 아이에게 맞는 액수를 동생에게 똑같이 주려니 그 액수가 제법 컸다. 그렇다고 둘째에게 맞는 액수를 첫째에게 줄 수는 없었다. 

그랬구나. 역시 어른들은 노련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슬그머니 두 아이의 용돈을 다르게 주고 있다. 


둘째는 둘째라서 억울한 법이고 첫째는 첫째라서 억울한 법이다.

오빠는 아기 때 정말 잘생긴 아들이었고 나는 정말 못생긴 딸이었다. 

게다가 대놓고 차별하는 할머니 덕에 나는 어릴 때 아주 온몸으로 차별을 당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욕할 마음은 없고 그저 옛날 사람들은 어찌 그다지도 감수성이 둔했을까 싶다.


그래서 오빠는 좋았을까?

오빠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본다.

부모에게 매번 첫 경험을 선사하는 오빠는 부모님에게 늘 테스트의 대상이었다.

좀 더 잘하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안팎으로 부담이 작용하고 있었다. 

고3 때 밤늦게 공부하면서도 부모님의 시선을 느꼈고 대학입시 때 전공을 선택할 때도 부모님의 의견이 작용했다. 오빠는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경영학과에 지원했다가 전기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엄마에게 후회로 남아있다.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들은 늘 최선을 다한다. 다만 맘대로 안될 뿐이다.


나는 둘째라서 늘 오빠보다 뒷전이었지만 그 뒷전에서 더 자유로웠다. 

그 자유 속에서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이 그랬고 진로를 결정할 때 그랬고 결혼과 그 이후까지 나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독립성이 생겼다.

꼭 둘째라서가 아닐 것이다. 타고난 성향이 더 클 수 있다.


큰 아들을 통해서 한번 테스트를 치른 부모님은 자식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으셨을 텐데

이제 50이 다 되어가는 오빠가 아직도 아빠와 갈등이 있는 것은 어쩌면 아들을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아빠의 욕심 찌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대로 되지 않은 아들에게 아직까지도 방향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 그 방향이 맞는 지도 모르면서


오빠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고 가끔은 미안하다.

어린 시절 감수성 예민한 오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 맘에 쏙 들지 못하는 오빠를 한심해했다는 것이 지금 와서야 너무 미안하다.

오빠는 부모님뿐 아니라 동생의 평가까지 받았겠구나 생각하니 어린 삶이 얼마나 각박했을까 싶어서 더없이 미안하다.



나는 큰 딸과 작은 아들이 있다. 

부모로서 매번 첫 경험을 선사하는 큰 딸을 통해 나는 좋은 부모, 괜찮은 부모임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진짜 멋진 딸이라고 칭찬받고 싶었나 보다.

또래보다 빨리 한글을 떼고 훨씬 많은 책을 읽고 수준 높은 영어와 수학 실력을 가지도록 했다. 

또래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때 집에서 책만 읽는 아이를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경험 없는 나는 우리 딸은 특별하구나 생각해서 햇빛 좋은 날이라도 일부러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딸은 어느 햇살 좋은 날 스스로 깨달았다.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 '놀이터에서 처음 놀았던 경험'을 영어 에세이 주제로 삼았을 정도록 그 날 사건은 아이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았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끌려 창가로 향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뭐가 저리 좋을까? 집에서 매일 책만 읽다가 그 날 처음 놀이터에 나간 나는 그날부터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놀았다. 주말에는 아침밥만 먹고 하루에 7시간을 논 적도 있다. 놀이터에 쏟아지는 태양과 흐르는 땀, 그것을 식혀주는 싱그러운 바람 냄새, 풀냄새...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릴 때 밥때가 되어 오빠가 찾으러 올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던 나는 그게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경험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모른척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까, 아이는 놀이터에 관심 없으니까 너는 나에게 책을 좋아하는 첫 아이니까 하면서


결국 아이들은 스스로 알게 된다.

딸은 아직도 책을 좋아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할 것이 많아 주말에 몰아 읽기도 한다.

어릴 때 그렇게 공들였던 영어실력을 활용해 전래동화 번역으로 봉사점수를 채웠다.

봉사점수는 이미 다 채웠지만 그래도 약속한 것이 있으니 방학중에 계속 봉사하겠다는 예쁜 마음까지 가졌다.

이렇게 스스로 잘하는 것을

부모는 늘 첫 평가의 대상인 큰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중한다.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우리 둘째 아들은 매일 논다.

누나와 너무나 성향이 다른 아들은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태권도 줄넘기 퍼즐 퀴즈 마술 방탈출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첫째 때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유일하게 하는 게 책에 관심을 갖도록 꾸준히 책을 빌리고 읽어주는 것

그래도 조급하지 않다. 첫 테스트를 통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다는 것. 결국 자신의 성향을 따라 길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둘째는 그런 시행착오 없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때가 되면 너의 길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리라 믿는다. 

그 내적인 힘을 믿고 쭉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조금씩 방향을 잡아주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임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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