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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Mar 29. 2021

엄마의 MBTI 성향

엄마 수행 평가

날짜만 봄이지 하늘은 뿌옇고 비는 추적추적, 몇 날 며칠 미세먼지는 나쁨의 연속이다.

몸도 마음도 날씨에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이다.

딸도 날씨의 영향을 받은 걸까?

옆에 털썩 앉아 무슨 말을 하려는 폼을 보아하니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


"아 핸드폰 바꾸고 싶다.

말해봐야 소용없겠지?"


핸드폰, 역시 헛소리를 하려는구나.

나는 대꾸하지 않는다.


"말해봐야 소용없겠지?"

한참 뜸을 들인다.



"이번 기말고사에 1등 하면 핸드폰 바꿔줄 거야? 안 되겠지?"

1등이란 말에 혹해서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한다.

"1등? 반에서?"

"아니 전교 1등"


전교 1등? 핸드폰?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고민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아니 뭐 나는 목표가 없어. 핸드폰이라도 단기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잠시. 갑자기 화가 치민다.


딸이 초등 6학년 때 같은 반에 어떤 아이가 친구들을 돌아가며 따돌리고 sns로 모욕하고 이간질하고 바보 만드는데 한번 표적이 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도 당할 뻔했는데 끝까지 무시하는 전략을 썼더니 다른 아이를 또 괴롭힌다고

그 애 엄마는 대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고

그 애는 돈도 엄청 많이 들고 다닌다고 엄마가 학교 단원평가를 100점 맞을 때마다 만원씩 준다고

분명히 문제가 있는 가족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누군지 물었다가 아이가 너무 순서 평소 내가 좋게 봤던 아이임을 알고 많이 놀랬었다.

아무래도 그 애가 아픈가 보다. 마음이 아픈 거야.

학교 시험 잘 봤다고 돈으로 칭찬하는 것처럼 나쁜 것 없지.

그것만 봐도 그 부모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그 애는 이유도 모르고 마음이 병들었을 거야.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날 일이 생각났다.

학교 시험 잘 봤다고 돈으로 칭찬하는 것처럼 나쁜 것은 없는데 지금 딸은 전교 1등이라는 미끼를 던지며 나를 평소 가장 혐오하는 부모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안의 속물근성을 건드렸다.


"딸! 너 무슨 착각하는 것 같다. 전교 1등 하면 가장 좋은 사람은 너야. 부모한테 좋은 건 그냥 조금일 뿐이야. 네가 첫 시험에서 1등을 하면 그것으로 너에게 큰 선물인 거지.  왜 엄마가 핸드폰까지 사줘야 해? 엄마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말이 길었다. 언성도 높았다. 내 안의 속물근성을 숨기려고.

나는 그 아이 부모와는 달라야 하니까.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다.

중2. 학기 말 고사. 15년 만에 처음으로 시험을 치르게 될 아이

초등학생 때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며 시험에 적응이 되어 있 나에게 중학교 첫 시험은 그냥 매년 있는 시험 중 하나였다. 물론 중학교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지만 태어나 처음 치르는 시험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정부의 방침 아래 초등학교에서 시험다운 시험 한 번 치러보지 못하다가 중2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시험이란 놈을 마주하는 거다. 그것도 코로나 이후로 중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어 누구 하나 터놓고 얘기할 사람도 없다.

그것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거다.


딸은 나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2학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학기말 시험을 걱정하는 딸

등교를 하지 않으니 소심한 성격에 중1도 중2도 친구가 없다고 힘들어하는 딸.

그 와중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학교 총학생회 임원이 되기 위해 면접까지 보고 나름 열심히 하는 딸

아이는 나에게 어떤 얘기가 듣고 싶었던 걸까?


언젠가 딸이 엄마랑 나랑 정말 안 맞아. 하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MBTI 성격검사를 들먹이면서

감성적이고 즉흥적이고 타인과 공감을 잘하는 자기에 비해 엄마는 검사할 것도 없이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일 거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해결책을 제시했었다.


그런 엄마가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투의 말투였다.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냐는 투


MBTI라니 그런 거 참 시간낭비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심리검사 시간에는 MBTI니 뭐니 온갖 심리검사에 대해 배운다. 하여간 좀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유형일까?

인터넷을 검색하니 요즘 유행인지 온갖 관련 문서들이 나온다.

그중 하나를 들어간다. 12분이나 걸리다니. 정말 시간낭비 같다.


긴가민가하는 수십 개의 문제를 풀고 나온 결과는

ISTJ(청렴결백한 논리 주의자)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명이면 족한 일을 둘이서 수행하면 될 일도 안되거니와, 셋 이상이 하는 경우에는 일이 전혀 성사되지 않더군'


긴 말이 필요 없다.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일할 때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다 처리해야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의 말을 증명하는 문장도 나온다.


'때론 이러한 그들의 대담한 행보는 사람들에게 냉정하고 로봇 같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 주기도 합니다. 감정이나 애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혹 사람들로부터 냉혈인이라든지, 더 심하게는 감정 자체가 있느냐와 같은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돌아서는 딸의 뒷모습은 내게 슬픈 장면이 되었다. 돌이키고 싶은 그런데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아이가 사라진 복도를 바라본다.


전교 1등 하면 핸드폰 바꿔줄 거냐는 딸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했을까?

하루하루 다가오는 처음으로 대적해야 하는 시험이라는 실체가 걱정되어 문득 딴사람처럼 이상한 말을 하는 아이에게

목표가 없다고 새 핸드폰이라면 단기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고

어떡하든 잘해보고 싶은 아이에게 나는 어떤 얘기를 해줘야 했을까?


잠시 MBTI  결과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본다.


'불안하구나. 걱정되는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너도 지금까지 많이 경험했듯이 뭐든지 한번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잘될 거야. 잘 안돼도 괜찮아. 이런 거구나 알고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이런 말을 원하는 걸까? 또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걸까?

부모로 모든 최초의 경험을 선사하는 딸 앞에서 나는 늘 갈팡질팡한다.

아이와의 모든 최초의 경험을 다 망쳐놓고 괜찮아 잘 될 거야. 잘 안돼도 괜찮아. 이런 거구나 알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해라고 나를 다독일 수가 없다.

차라리 시험이었으면 60점짜리 답안지라도 내 안에 숨길 텐데 아이는 다르다. 60점짜리 답안지가 아이의 가슴에 남는다. 그래서 이렇게 늘 갈팡질팡이다.

날짜가 예정된 기말고사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아이라는 시험 앞에서 나는 늘 불안하고 갈팡질팡한다.


오늘도 이 부족한 엄마는 시험을 엉망으로 망치고 뒤늦게 모범 답안지를 작성하며 다음번엔 실수하지 않으리라. 달성하지 못할 목표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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