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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08. 2020

2019년 개봉작 BEST 12

한참 뒤늦게 올리는 작년 최고의 영화 열두 편

2020년도 어느덧 1분기가 다 지나간 지금 시점에서, 이렇게 작년 최고의 영화를 가려보는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개인적으로 너무 바쁜 일이 많아서 챙겨본 영화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따지고 보면 정말 보고 싶었던 (제가 좋아할 만한) 개봉작은 모두 챙겨보았기 때문에 아마 본 편수가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이 리스트에 들어간 영화가 변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네요. 아쉽게 빠지게 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보았지만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러브리스’ 정도일 것 같습니다. (만약 리스트에 들어갔다면, 상당히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었을 거에요. 즈비아긴체프가 러시아의 동시대 감독 중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아래 리스트 중 여섯 편의 영화에 대해서는 리뷰를 쓴 적이 있어서 링크도 걸어두었습니다. 자, 그럼 개봉일 기준으로 제가 2019년에 보았던 가장 뛰어난 12편의 작품입니다.




12위, <아사코> (하마구치 류스케, 일본)

이상한 스탠스의 멜로영화. 모습이 똑같은 두 사람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멜로영화의 장르로 빌려온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 사이의 간극을 다루고 있는데, 이때 빌어오는 영화 밖의 레퍼런스가 동일본 대지진임을 떠올리면 이 영화의 의도가 더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현재(라는 현실)는 과거의 실패에 계속 천착하고, 과거(라는 환상)는 현실의 불만을 자꾸만 왜곡한다. 서로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현재와 과거(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같지만 다른 한 인물)는 결국 이 이야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함을 말해준다. (이 영화의 일본어 원제는 ‘잠들어도 깨어나도(寝ても覚めても)’ 라는 병치되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암시이며, 영어 제목은 'Asako I & II', 즉 현재와 과거 아사코의 두 가지 시점에 대한 암시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가 기묘한 방식으로 봉합되는 이 영화의 후반부야말로 현실과 유리되면 유리될수록 묘하고 흥미롭다. (寝ても覚めても / Asako I & II, 2018)



11위, <어스> (조던 필, 미국)

조던 필은 두 번째 작품 '어스'로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중의적인 제목을 의도한 '어스(Us)'는 극중 인물의 대사 '우리는 미국인이다(We're American)' 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우리(us) 그리고 미국(U.S.)을 지칭한다. (전작 '겟아웃'에서와 마찬가지로, 조던 필은 필요한 부분에서는 직설적으로 상징을 부각시키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잘 짜여진 호러를 넘어서 통렬한 풍자다. 그 풍자에는 ('겟아웃'의 핵심이었던) 흑백 갈등을 넘어서는 피아(彼我)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가 드리워있다. 단순한 도플갱어 이야기인가 싶던 '어스'는 극이 궤도에 오르자 유약한 인간의 믿음에 대한 신선한 드라마로 도약하는데, 그렇기에 ‘어스’는 장르영화의 틀을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그 틀을 박차고 나가는 데 성공한다. ‘어스’를 보고 나니, 조던 필이 앞으로 만들어 낼 작품들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Us, 2019)



10위, <벌새> (김보라, 대한민국)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나 싶더니, 이내 강렬하게 뒤흔든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수도 없이 다루어진 소재를 익숙한 화법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내용의 깊이감과 연출의 원숙함에 있어서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서울, 1994년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통해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결국 관객들 모두가 감응하게 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 화두를 돌린다. 따스한 차 한 잔의 온기, 외로운 시간에 내리쬐는 햇살, 아물어가는 상처의 따끔거림. 이따금은 누구나 갖고있을 법한 철없는 기억들로 웃음짓게 하고, 이따금은 누구나 문득 떠올릴 법한 깊숙한 기억들로 서늘하게 한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맺음하고 잊지 못할 순간들로 영화를 갈음하는 김보라의 ‘벌새’는 이윽고 등장인물의 마음과 관객들의 박동을 하나로 이어준다. (벌새 / House of Hummingbird, 2018)



9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미국)

쿠엔틴 타란티노는 (특히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통해) 이미 정립된 역사를 과감하게 대체역사로 풀어내는 와중에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펼쳐낸 적이 있었다. 그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라는 실존인물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지극히 영화적인 방법으로 극화하는데, 그 화법은 이제까지 그가 만들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뭉클하다. 배우들의 호연과 타란티노 특유의 입담으로 차차 쌓아가던 픽션의 맥락은, 엔딩에 다가갈수록 샤론 테이트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적 전율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인물(그리고 그 인물이 속한 헐리우드의 특정 시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영화 전체에 감돌고 있기 때문인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중 어쩌면 가장 감정적인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8위,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멕시코)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의 신작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소수 언어의 도큐멘테이션을 위해 멕시코의 작은 마을을 방문하는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전하고자 하는 (혹은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의 매개자 내지는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비밀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비밀과 병치시켜 전개하는 이 영화의 화법은, 언어의 절멸과 생명의 소멸을 엮어감에 따라 그 의도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사라질 언어를 지키려는 이들과 틀어진 관계를 돌리려는 이들의 노력은 결국 꿈 속에서 빛을 발하는데,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언어와 삶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는 이 영화는 그 둘의 총체야말로 운명 혹은 인연을 부여잡는 갈피가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Sueño en Otro Idioma / I Dream in Another Language, 2017)



7위,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 (후보, 중국)

중국 감독 후보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린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는, 장장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중국의 작은 도시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겹치고 또 겹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리지만 정확하게 전달한다. 길고 느리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한해서는 칭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도시의 변두리에 놓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크게 네 가지 이야기를 병치하는가 싶던 이 이야기는 지독하게 삭막한 현실을 끈질기게 좇아간 끝에, 결국 감정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극의 후반부, 영화 제목의 정체가 시각적으로 희미하게 그러나 청각적으로 명확하게 환기되는 순간의 서늘함은 오랫동안 잊기 힘들 듯 하다. 이 영화를 끝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후보의 영화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애석하기만 할 뿐. (大象席地而坐 / An Elephant Sitting Still, 2018)



6위, <기생충> (봉준호, 대한민국)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교묘한 비유로 담아내려는 우화인 동시에, 봉준호의 영화가 언제나 그러했듯 희망과 절망 사이의 명백한 간극에서 오는 씁쓸한 우수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에서 기생충처럼 묘사되는 이들이 투쟁하는 양상을 보면, 결국 이건 블랙코미디인 동시에 희망은 그저 겉돌 뿐인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크고작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시의적절’하고 ‘상징’적이지만, 계층적 구조는 여전히 공고하고, 상승(이라는 희망)은 어김없이 하강으로 끝맺는다. 지극히 대중적인 화법으로 장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명확하게 과녁을 명중시키는 영화적 터치가 놀랍다. 웃기고도 서늘한 이 이야기 속에서 결국 악인은 없었지만, 만약 '악'이 있다면 그건 이 이야기를 빚어내게 한 사회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니 ‘기생충’은 어디로 보아도 ‘괴물’이나 ‘설국열차’를 만들었던 봉준호의 영화다. (기생충 / Parasite, 2019)

→ [리뷰] 간절한 바람과 덧없는 꿈 사이, '기생충'



5위, <행복한 라짜로> (알리체 로르바허, 이탈리아)

서정적인 정서를 통해 도식적인 상황을 풀어내는 데 능숙한 알리체 로르바허의 신작 '행복한 라짜로'는, 동화와 현실을 기묘하게 섞어내는 지점에서 아이러니로 가득한 세상을 훌륭하게 환기한다. 결국 극중 인물에 의해 구전되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행복한 라짜로'는 늑대와 성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수식하는 데 사용되곤 하는 '마술적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때때로 영화이기에 가능한 마법같은 순간들을 통해 동화적 터치를 가미하지만, 그러한 환상으로서의 순간이 끝나고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현실의 굳건한 벽이다. 언뜻 염세적으로만 보이는 이 영화에서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지닌 힘이었다. 민중이라는 존재의 힘으로 ‘행복한 라짜로'는 아스라한 희망을 품어내는 데 성공한다. (Lazzaro Felice / Happy as Lazzaro, 2018)

→ [리뷰] 늑대, 성자, 그리고 모두, '행복한 라짜로'



4위,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폴란드)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신작 '콜드 워'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전후 냉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의 전작 '이다'와는 퍽 다르게) 뜨거운 감정이 일렁이는 강렬한 드라마이다. 시대의 비극 앞에 맞선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각본은,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돌아야 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서로 다른 언어로 불리워져야 하는 노래의 감정으로 승화시킨다. 프레임 속에 작게 드리운 인물들의 형체를 뛰어나게 활용했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전작 ‘이다’가 프레임에 걸쳐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면, 프레임 속을 가득 메우는 인물들의 표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콜드 워'는 프레임(으로서의 시대)을 떠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대의 표층과 불꽃처럼 뜨거운 감정의 심층 사이에 단단하게 자리한, 마치 심장serduszko과도 같은 사랑영화. (Zimna Wojna / Cold War, 2018)

→ [리뷰] 우리는 (프레임을) 떠나야만 해, '콜드 워'



3위, <레토>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레토’는 여름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여름이 오기 전 아직 추운 초봄의 어딘가(가 상징하는 동구의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영화처럼 보인다. 실존했던 뮤지션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음악을 영화의 전개에 따라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기영화의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이 영화가 묘사하는 이야기가 억압당하는 현실과 맞선 이들이 꿈꾸는 이상 사이의 명백한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르포영화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극중 네 차례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야말로 흑백-컬러 사이의 전용 및 프레임 브레이크를 통해 이를 뛰어나게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 네 곳에 모두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의 존재는 마치 감독의 분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감각적인 화술로 이렇게 시대적인 화두를 노래하는 ‘레토’는, 마치 심장박동의 두근거림을 닮았다. (Лето / Leto, 2018)

→ [리뷰] 시대의 심장박동을 닮은 영화, '레토'



2위, <미드소마> (아리 애스터, 미국)

전작 ‘유전’에서 보여주었던 아리 애스터의 천착과 기벽이 한층 더 드러난 괴작이자 걸작. 세계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통제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염세적인 세계관으로 보아도, 미국에서의 프롤로그가 스웨덴에서의 메인스토리에서 주인공의 관계적 맥락에 미치는 영향과 그 결과로 보아도, 특정한 관습과 의식을 공유하는 컬트적 집단을 관찰하는 제 3자의 이야기로 보아도, 어느 측면에서나 모자람 없이 그 극단까지 내달려나간다. 이야기(그리고 주인공의 감정)의 전율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이 영화의 화법은 그 절정의 해소를 전적으로 관객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괴상하지만 강렬하고, 무엇보다도 황홀하다. 그렇게 곱씹어보자면 ‘미드소마’는, 결국 (공포든, 컬트든) 장르 내에서 예상 가능한 틀을 하나씩 부수어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광시곡과도 같은 영화. (Midsommar, 2019)

→ [리뷰] 선택하는 위치에 놓인 이의 황홀경, '미드소마'



1위,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영국)

켄 로치의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이어서, '미안해요, 리키’ 역시 켄 로치가 희구하는 사회의 모습을 바랄 수 없는 현실적인 장벽을 사려깊고 세심한 극화를 통해 표현해낸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사과해야만 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억압에 마음이 울컥할 즈음, 켄 로치는 인물을 어루만지는 특유의 덤덤한 시선을 통해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만다. 극중에서 (문자 그대로, 혹은 상징적 차원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영화의 원제 'Sorry We Missed You'가 환기될 무렵이 되자 이 영화는 가슴 속에 깊게 저며드는 메시지가 되고, 이미 50년이 넘도록 영국 영화의 한 저변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켄 로치의 관록에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멀게만 느껴지는 이상을 위해 누군가가 바라는 모든 것이 절실히 담겨있는 휴먼드라마이자, 가깝게 다가오는 부조리를 다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사회드라마가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점. (Sorry We Missed You, 2019)

→ [리뷰] 상처를 남기는 이유, '미안해요,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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