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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Oct 07. 2022

[프롤로그] 서른 살, 이립(而立) :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여러 산을 오르내리곤 했다. 나도 모르게 뒷동산에서부터, 설악산, 지리산까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산을 웬만하면 다 가본 것 같다. 그런데 20대가 되고 나서는 산을 오르기가 너무도 싫었다.     


왜 자연 풍경을 보러 굳이 산까지 올라가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언덕을 오르며 무거웠던 군장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던 기억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무를 보러 산에 오를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로 하도 나무를 베어대는 산 아래의 모습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헛소리를 해대면서 말이다.     

서른 즈음에 우연히 산을 다시 올랐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가끔 내리막길이 나오기도 한다. 내리막길이 무서운 이유는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려오면서부터 다시 오를 생각에 한숨부터 나온다. 어쩌면 다시 올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거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리면 어쩌지? 발목이 접질려 제대로 걷지 못하면 어쩌지?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정상을 기를 쓰고 오르려 할까? 사람들은 왜 훌훌 털어내고 다시 오르면 되는데 내려오는 걸 그렇게까지 두려워할까? 또 어떤 사람들은 탄탄대로로 잘 닦인 평지만 따라서 걸으면 참 좋을 텐데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주어진 길을 따라 잘 걷기만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구불구불하고 들쭉날쭉한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곳을 찾아 오르려고 하는 걸까?      


산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려오는 것이 무서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산을 오르내리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살이, 성공과 좌절, 실패와 도약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소득을 벌면서도 더 나은 삶을 찾겠다며 사표를 집어던지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대학 4년 내내 전교 1등을 하고 장학금 한 번 놓친 적이 없었는데도 매 순간 불안해하면서 시험 기간만 되면 밤을 새우는 걸까?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우리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조만간 내리막길이 나오겠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또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오를 날이 오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니와 알고 있다고 해도 가끔 내 가슴은 날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다. 올라가고 있을 때는 한없이 오를 것만 같기도 하고 내려가고 있을 때는 끊임없이 바닥까지 내려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 힘들 때는 힘든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는 너무 빨리 달리다가 혹시나 놓치는 것은 없는지 잠시 멈춰 주위를 살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     


주어진 상황에 개의치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꾸준히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 오르막일 때나 내리막일 때나 앞만 보고 내달리지 않고 한 번쯤 뒤도 돌아보고 주변 사람을 함께 챙겨 같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     

뒤에 있을 때는 밀어주고 앞에서는 끌어줄 수 있는 사람. 혼자만 잘났다고 뻗대지 않고 어려울 땐 홀로 외롭게 깊어지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면 산을 내려오는 일이 조금은 덜 무섭지는 않을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라면 인생이라는 길이 조금은 안전하고 여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나는 본인의 인생이 싫었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냥 좌절하고 넘어지는데 연습이 조금 필요했을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풍파에 흔들려도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난 30년을 흔들려왔고, 흔들리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 함께 사는 법을 배워왔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 기록은 지난 30년간, 나의 인생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 왔던 기행문이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만나 서로 손 내밀고 손 맞잡으며 지금까지 잘 살아내 준 우리 모두를 위로하며 보내는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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