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책상 서랍을 열면 노란 포스트잇 묶음이 있다. 맨 위 장에 연필로 두 글자를 적어 둔다. 여기까지. 글씨가 단정할 필요는 없다. 약간 기울어도 좋고, 획이 흔들려도 괜찮다. 오늘 나는 이 두 글자를 또 하나의 의자로 삼는다. 너무 멀리 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앉기 위해서다.
아침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 말을 먼저 떠올린다. 숫자가 올라가다가 멈추고, 다시 내려오다가 멈춘다. 엘리베이터에도 여기까지의 순간이 있다. 잠깐 멈춰 문을 열고 닫아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 서두르지 않는 기계의 예의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의 읽기도 저렇게 멈추고, 저렇게 다시 가면 좋겠다고. 한꺼번에 오르지 않고, 한 층씩, 한 장씩.
회사 근처 도서관을 지나가다 유리문에 붙은 반납 안내를 본다. 반납일은 늘 선명한 글씨로 쓰여 있다. 날짜는 기한이면서도 가끔은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그날 다시 만나자’ 하고 말하는 초대장. 나는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여 본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날들, 지갑에서 접힌 영수증을 꺼내 뒷면에 적어 두던 책 제목과 페이지. 그때의 나는 부끄럽기보다 묘하게 안심했다. 책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돌아올 자리를 남겨 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책상에 앉는다. 커피 얼룩이 작게 번진 독서 노트의 빈 칸에 오늘 날짜를 적는다. 날짜 아래에 줄 하나를 그어 두고, 지금 펼친 페이지 번호를 가볍게 써 넣는다. 문장을 한 단락 읽다가 멈춘다.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포스트잇을 끼운다. 여기까지. 염소가 풀을 뜯다 고개를 든 듯, 나는 그 말과 함께 숨을 고른다. 마치 멈추는 연습을 하는 사람처럼. 멈춤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걸 배워 가는 중이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책갈피 대신 영수증을 끼워 넣는 걸 보았다. 종이 위에 숫자들이 눌려 있고, 끝에는 “감사합니다” 같은 말이 박혀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영수증을 가지고 다니며 하루의 경계를 만든다. 계산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음 일이 시작된다. 그는 영수증을 살짝 밀어 넣고 눈을 감아 버렸다. 나는 그 동작을 마음속에 저장해 둔다. 내일 비슷한 시간, 나도 그대로 해 볼 생각이다.
퇴근길 신호등 앞에서 파란 사람들이 걷기 시작한다. 그 사이 붉은 잔상이 조금 늦게 사라진다. 신호등도 약속을 지킨다. 잔상이 남아 있는 동안은 아직 내 차례가 아니라고 말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잔상 같은 시간이 있다.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데리고 천천히 사라질 때, 나는 일부러 여기까지를 꺼내 든다. 끊어지는 대신 남겨 둔다. 다음에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한 올의 실을 밖으로 잠시 빼 둔다.
집에 돌아와 스탠드를 켜고, 손바닥으로 책 표지를 한 번 어루만져 본다. 오늘은 멀리 가지 않기로 한다. 멀리 가는 대신 정확히 돌아오기로 한다. 페이지 귀퉁이를 아주 얇게 접는다. 접힌 모서리는 나를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릴게” 하고 말하는 얼굴이다. 종종 모서리의 표정이 나보다 성숙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 표정을 믿는다.
읽다가 막히면 의자에서 허리를 떼고, 창가로 가서 커튼을 손끝으로 들어 올려 본다. 창문에 머물던 가로등 불빛이 커튼 가장자리에 얇은 선을 긋는다. 그 선이 오늘의 페이지 경계처럼 느껴진다. 커튼을 놓고 다시 앉으면 머릿속이 반 걸음 가벼워진다.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부러 한 줄 앞에서 연필을 멈춘다. 여기까지. 그 말은 때로 아껴 두는 기술이다. 좋은 과자를 끝까지 먹지 않고 마지막 한 조각을 작은 접시에 남겨 두는 마음과 닮아 있다.
가끔은 책을 덮고도 포스트잇만 한참 바라본다. 노란 종이의 매끈한 섬유, 가장자리가 만들어 내는 그림자, 연필 흑연의 은은한 광택.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가 오늘을 지탱해 준다. 실패와 미완을 떼어 놓고, 미완의 상태에서 다음으로 이어 준다. 이 작은 표식 덕분에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진다. 달력의 빈 칸처럼, 포스트잇은 꾸짖는 회초리가 아니라 단지 머무를 자리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온다. “다 읽었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한다. “아니, 여기까지.” 친구가 웃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아무렇지 않게, 마치 그 말이 완성형 답장인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거나 늦추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여기까지를 공유한다. 그렇게 마음 편히 속도를 공유할 때, 묘하게 안심이 된다. 다음에 만났을 때 어디서부터 얘기를 이어가면 되는지, 이미 정해진 느낌이 든다.
늦은 밤, 세탁기가 마지막 회전을 마치며 낮은 소리를 낸다. 빨래 건조대에 옷을 하나씩 걸다 보면, 젖은 소매 끝에서 물방울이 가장 아래에 모여 간다. 적당히 무거워지면 툭 하고 떨어진다. 문장도 그와 비슷하다. 어느 정도 무게가 모이면, 스스로 멈출 지점을 만든다. 억지로 앞당기거나 미루지 않아도 된다. 떨어질 때 떨어지고, 멈출 때 멈춘다. 내 역할은 그저 떨어질 자리를 마련해 두는 일, 그러니까 여기까지를 준비하는 일이다.
컴퓨터를 끄기 전에 오늘 읽은 페이지 번호를 다시 노트에 적어 둔다. 숫자 옆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다. 점은 별처럼 작다. 그러나 그 별이 내일을 부른다. 연필 끝에서 나오는 아주 짧은 숨소리, 종이에 박히는 미세한 소리. 별 하나가 생기면, 내일 같은 자리에 또 하나를 찍고 싶어진다. 이어지는 별들은 흔들리지만, 금세 별자리의 모양을 만든다. 별자리는 완벽해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비워 둔 구간 덕분에 기억된다. 빠진 별들이 오히려 전체의 모양을 또렷하게 만든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셔 본다. 차가운 물이 목을 지나가며 뜨거웠던 부분을 천천히 식힌다. 오늘의 문장도 그 물처럼 내려간다. 다 내려가진 않아도 괜찮다. 일부는 내일의 목을 위해 남겨 둔다. 여기까지는 끝내려는 말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남기는 말이다. 같은 문장도 내일은 다른 온도로 다가올 것이다. 그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기면, 독서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라 생활이 된다.
불을 끄기 직전, 책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 본다. 봉긋한 등뼈가 손바닥 중앙에 닿는다. 책은 살아 있다. 어제와 오늘, 조금 다른 체온으로.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방을 어둡게 만든다. 눈이 천천히 어둠에 적응하는 동안에도 두 글자가 오래 남는다. 여기까지. 마치 속삭임처럼.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내일의 나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까. 아침의 정류장일 수도, 점심의 카페 모서리일 수도, 저녁의 전자레인지 앞일 수도 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여기까지를 남겨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이 내일의 나를 곧장 데려온다. 길을 잃지 않게 해 준다. 끝은 쉽게 지워지지만, 다시 쉽게 돌아온다. 여기까지의 기술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같은 자리의 다른 얼굴로, 조용히 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