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안에서의 독서
지하철 출근 시간, 계단을 내려갈수록 바람이 지하의 냄새로 바뀐다. 금속과 먼지, 사람의 체온이 섞인 공기다.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 앞에 서면 선로에서 낮은 바람이 치고, 전광판 숫자가 뒤로 미끄러진다. 걷다가 멈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가방 지퍼를 반쯤 열어 둔다. 책등이 손끝에 닿는 자리까지. 그러곤 손가락으로 괜스레 건드려 본다.
지하철이 들어오면 바퀴가 레일을 깎는 소리가 먼저 와서 가슴뼈를 건드린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움직임을 반복한다. 비켜서고, 비집고, 자리를 향해 한 박자씩 이동한다. 오늘은 창가에 기대어 선다. 유리창에 내 얼굴이 얇게 겹친다. 아직 덜 깬 눈, 입술의 건조한 선, 목도리의 털. 그 위로 어젯밤 읽던 문장들의 느낌이 아주 약하게 떠오른다. 내 얼굴과 문장이 서로를 통과한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무릎 높이에 붙이고 선다. 한 손은 손잡이에, 다른 손은 페이지의 모서리에. 움직임이 클 때는 살짝 덮고, 속도가 고르면 다시 펼친다. 전동차의 진동이 줄을 당기듯 문장을 잡아당긴다. 그 힘을 이용해 한 줄씩 넘어간다. 읽다 말고 창밖으로 눈을 옮긴다. 터널 벽의 회색이 빠르게 흘러가고, 어두운 유리에는 우리 칸의 조명이 겹친다. 가끔 창문에 붙은 작은 물얼룩이 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로 내 얼굴이 또 한 번 얇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차 안내가 울리면 굳이 페이지를 더 넘기지 않는다. 역 이름이 흘러가는 동안 한 문장을 마음속으로 두 번 읽는다. “여기까지.”라고 짧게 표시하듯 눈으로 모서리를 눌러 둔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올라타는 코트의 마찰, 내리는 구두굽의 간격이 합쳐져 한 번의 쉼표가 된다. 쉼표는 길지 않아도 리듬을 바꿔 준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면 나는 방금 쉬어 둔 자리에서 살짝 옆으로 몸을 옮기듯 다음 줄로 읽어 들어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