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간격과 한 문장
공항에서 나와 바람을 한 모금 마시니 공기가 다르다. 짠내가 아주 얇게 입술에 붙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간 작은 카페, 창은 바다 쪽으로 크게 열려 있고 테이블 표면에는 소금꽃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나는 창가 한 칸을 고른다. 의자를 살짝 당기고, 물컵의 습기 고리를 냅킨으로 한 번 닦고, 얇은 책을 내려놓는다. 오늘의 읽기는 이 유리에 묻은 염도와 함께 시작된다.
먼저 책의 여백에 점 하나를 찍는다. 늘 그러듯, 단어를 정하기 전에 남기는 작은 표식이다. 점이 있으면 책을 펴고 읽기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점을 찍고 나니 오늘의 단어가 스스로 떠오른다. ‘간격.’ 파도와 파도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표지—차례—첫 단락. 기존 루틴을 그대로 밟는다. 표지의 종이결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차례에서 내가 서 있는 지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첫 단락부터 읽어내려간다. 소금기 어린 공기가 페이지 위에서 아주 얇게 돌고, 종이가 미세하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만큼 문장은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창유리를 통해 파도가 반복해서 밀려온다. 하얀 능선이 한 번 솟고, 무너지고, 사라진 뒤에도 얇은 거품이 오래 남는다. 나는 그 거품의 소멸 시간을 마음의 메트로놈으로 삼아본다. 거품이 가라앉을 동안 한 줄, 다음 물결이 올 때까지 한 번 쉬어가며 사색에 빠진다. 파도의 간격이 문장의 박자를 정리한다. 이 간격이 잘 정리되면 이해는 자연히 따라온다.
책 모서리가 습기를 머금고 살짝 말린다. 왼손으로 모서리를 눌러 각을 잡고, 오른손은 커피잔의 미지근함을 확인한다. 잔 바닥의 수분 고리가 다시 번지려 할 때, 나는 페이지 여백에 작은 사각형을 그려 오늘의 좌표를 만든다. 좌표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길을 잃지 않으면 오래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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