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움이 식기 전까지
퇴근하고 돌아와 불을 켜면 부엌이 먼저 나를 맞는다. 싱크대에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냉장고 문을 열자 낮 동안 천천히 식은 공기가 얼굴로 흘러나온다. 남은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간을 1:00으로 맞춘다. 둥근 접시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책을 부엌 테이블 위에 펼쳐 둔다. 오늘 읽을 분량을 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1분만 함께 있어 보기로 한다.
기계는 규칙적으로 웅웅거리고, 문틈 유리에는 김이 살짝 맺힌다. 타이머의 숫자가 59, 58, 57… 하고 내려간다. 숫자는 빠르게 움직여도, 내 호흡은 느려진다. 식탁 의자에 앉아 첫 문장을 소리 없이 따라 읽는다. 혀끝이 약간 움직이고, 목이 아주 조금 젖는다. 읽는다기보다 닿아 본다에 가깝다. 어제의 피곤함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 짧은 시간만큼은 온전히 오늘의 것이다.
접시가 반 바퀴를 돌 때쯤, 문장 하나가 안쪽에 눌러 앉는다. “잠깐이면 된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눈은 페이지에, 귀는 전자레인지에, 몸은 부엌에 있다. 공간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고 겹친다는 느낌. 안부를 묻듯 점잖은 리듬. ‘오늘도 괜찮았어?’ 하고 페이지가 물으면, 나는 ‘응, 괜찮았어’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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