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 새벽 베란다의 숨

빛이 오기 전의 한 줄

by 김하종

알람이 울리기 전, 몸이 먼저 깬다. 어둠은 여전히 방 안을 채우고 있지만, 빛이 오기 직전의 희미한 회색이 가장자리부터 번진다. 발을 바닥에 대면 미지근한 타일 냉기가 올라온다. 부엌에서 전기포트 스위치를 올린다. ‘딸깍’ 소리가 먼저 켜지고, 곧 아주 작은 끓는 소리가 뒤따른다. 냉장고는 밤새 숨소리를 아꼈다가 아침에야 낮게 웅웅거린다.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볼륨을 낮춘 채 돌아온다.


베란다 미닫이를 반쯤 열고 나가 본다.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동그랗다. 볼을 톡 치고 지나가며 깨어 있는 피부만 확인한다. 화분 흙에서는 습기가 조금 올라오고, 잎사귀 끝에는 어젯밤 남은 물방울이 구슬처럼 맺혀 있다. 유리에 손바닥을 올려 둔다.

한동안 식은 창이 내 열을 받아들인다. 둥근 온기가 번져 나가다가, 경계가 모서리에서 사라진다. 그 짧은 사이에 숨이 길어진다.


책은 어제와 같은 자리, 식탁 가장자리에 엎드려 있다. 스탠드는 켜지 않는다. 아직 켜지 않은 빛이 더 알맞을 때가 있다. 커튼 틈으로 스며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페이지를 얇게 덮는다.

의자에 앉아 등을 조금 기대고, 무릎 위로 책을 올려놓는다. 알람까지 7분이 남았다. 7분은 짧은 숫자이지만, 새벽에는 길게 느껴진다. 길어져야 할 것만 길어지는 시간이다.


첫 문장을 소리 없이 따라 읽는다. 혀가 아주 조금만 움직인다. 목구멍에 뜨거운 기운이 없으니 단어가 차분하게 굴러간다. 새벽에는 과장된 마음이 없다. 과장이 사라진 자리에 문장이 바로 앉는다. 어젯밤엔 어렵게 느껴졌던 문단도 이때는 고집을 덜 부린다. 같은 글씨가 다른 얼굴을 하고 와서,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포트가 한 번 크게 끓는 소리를 내고, 스스로 소리를 낮춘다. 머그에 뜨거운 물을 세 손가락 너비만큼 따른다. 김이 손등을 스치는 고요한 감각.

컵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페이지의 종이는 아직 차갑다. 한쪽 손바닥을 올려 살짝 데워 준다. 종이의 온도와 손의 온도가 비슷해지면 시선이 깊어진다. 이 시간의 읽기는 이해보다 체온을 먼저 맞추는 일과 닮았다.


베란다 바깥에선 첫 차가 멀리서 길게 숨을 내뿜는다. 새 한 마리가 아주 짧게 울고 곧 조용해진다. 도시가 깨어나며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여기까지 닿는다. 그 사이에 오늘의 단어를 하나 고른다. ‘숨’. 새벽에는 무엇이든 크게 시작하지 않기로 한다. 숨처럼 작은 것을 택한다. 단어 하나를 손에 쥐었으니, 오늘의 방향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어가 먼저 길을 틀어 준다.


문장은 이런 순서로 들어온다. 한 줄, 숨, 한 줄, 숨. 두 줄을 욕심내면 숨이 고르지 않고, 한 줄만 읽으면 숨이 길어진다. 새벽은 길어지는 쪽의 편을 든다. 두 번째 단락에 닿았을 때 유리창에 김이 아주 얇게 오른다. 손바닥을 떼지 않아도 좋다. 김은 금방 사라지고, 온기는 조금 늦게 사라진다. 늦게 사라지는 쪽이 오늘에 더 오래 남는다.


책 속 사람은 막 새벽길을 걷기 시작한다. 골목의 소금기, 마당의 물기, 현관 앞 고무매트의 촉감 같은 묘사가 이어진다. 문장이 묘사하는 것들이 내가 있는 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나도 방금 고무 슬리퍼를 끌고 나왔고, 물의 숨을 손등으로 건너왔다. 닿는 점이 많을수록 무엇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읽는다는 건 때로 나 자신에 대한 증명을 잠시 쉬는 일이다. 이때만큼은 시간을 아낀다기보다 마음을 아낀다.


알람이 멀리서 울린다. 카메라 셔터가 반쯤 눌렸다 놓이는 소리처럼 짧다. 멈춰야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은 타이밍. 책갈피를 모서리에 얇게 끼운다. 아주 작은 각도로 접힌 종이가 나를 대신해 멈춘다. 기계음을 끄고 돌아와 같은 줄을 한 번만 더 눈으로 덮는다. ‘여기까지.’ 오늘도 이 말이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모양을 만든다. 끝내려는 말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표식 같은 말.


새벽도 아주 천천히 밝아진다. 커튼의 섬유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한 톤씩 올라간다. 빛은 소리보다 느리고, 냄새보다 분명하다. 빛이 조금만 더 오르면 집 안의 그림자들이 제 모양을 되찾을 것이다. 그 전에 책을 덮는다.

표지 위에 손바닥을 한 번 더 올려 두고 온도를 옮겨 둔다. 페이지에는 내 손의 따뜻함이 아주 얇게 남을 것이다. 자취가 아니라 예고 같은 온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정리한다. 베개를 털고, 이불 모서리를 반듯하게 접는다. 작은 동작들이 새벽의 리듬을 마저 완성한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물을 한 번 튕긴다. 물방울이 광대뼈로 흩어지고, 눈이 완전히 깬다. 오늘의 시작을 크게 선언하지 않는다. 새벽은 선언을 싫어한다.


출근 준비를 하며 가방을 챙긴다. 책은 늘 들어가던 자리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얇아진 쪽으로. 현관문을 열기 전, 손잡이에 잠깐 이마를 기대 본다. 차갑다. 차가움은 깨어 있는 쪽이다.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디딜 때 방금 고른 단어가 발목 근처에서 따라온다. ‘숨.’ 계단을 내려가며 한 계단마다 그 단어를 속으로 한 번씩 밟는다. 내려갈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 없는 감각이 하루의 기초가 된다.


밖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하늘의 회색이 짙은 파란색을 밀어 올리는 중이다. 버스 정류장 유리에는 다른 집의 새벽이 겹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스탠드 불빛, 다른 누군가의 물 끓는 소리. 도시가 동시에 숨을 들이마신다. 가방을 어깨에 걸고 책등을 손바닥으로 톡 두드린다. 아주 작은 소리. 그 소리만으로도 오늘의 첫 줄이 다시 켜진다.


새벽에 들여다본 한 줄이 낮의 긴 시간을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지도 모른다. 둘 다 괜찮다. 중요한 건 바뀌는 결과가 아니라, 바뀔 수 있는 몸의 각도다. 빛이 오기 전, 아주 조금 틀어진 방향이 하루 전체의 표정을 바꾼다. 횡단보도 앞에서 숨을 한 번 더 고른다. 신호가 바뀌기 전의 짧은 멈춤. 그 멈춤 위에 아까의 문장이 얹힌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건넌다.

keyword
월,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