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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도서관 창가 자리

먼지와 빛의 리듬

by 김하종

현관을 밀자 건조한 공기가 먼저 맞는다. 책 소독기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 반납대의 ‘삑’ 하는 짧은 음, 카트가 바닥의 이음매를 지날 때 나는 잔잔한 쇳소리. 도서관의 소리는 늘 낮고 느리다. 잠깐 서서 좌석표를 찍고, 창가 쪽 빈자리를 찾는다. 유리창 가까이에 앉으면 바깥의 느린 그림과 안쪽의 느린 소리가 겹쳐진다. 그 겹침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가만히 붙들어 둔다.


자리에 앉아 스탠드의 다리를 한 번, 두 번 가볍게 움직여 원형의 빛을 조정한다. 둥근 빛이 책 위로 내려앉고, 가장자리는 부드럽게 흐린다. 손등으로 창틀의 먼지를 살짝 쓸어 낸다. 먼지가 공중에 떠올라 작은 반짝임으로 바뀌고, 곧 빛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 빛의 속도가 오늘 내 읽기의 속도로 알맞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분명하게.



첫 장을 펼친다. 여기선 조용함이 먼저 읽고, 내가 뒤따라 간다. 누군가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아주 얇은 공기의 뒤집힘이 방 전체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낀다. 또 다른 누군가가 볼펜을 캡에서 뺄 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움직임은 전해진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지만, 서로의 정적 속에 기대어 앉아 있다. 내 숨소리도 그 집단의 호흡에 맞춰 자연히 느려진다.


첫 문단을 지나며 유리창 너머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 번 흔들린다. 가지가 그림자로 책 가장자리에 얇은 무늬를 그린다. 나는 그 무늬의 끝에서 한 줄을 멈춘다.


반납 카트가 멀리서 한 번 지나간다. 표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종이 소리, 사서의 장갑이 비닐 커버를 쓸어 넘길 때 나는 마찰음. 그런 소리들 사이에서 문장이 더 선명하게 오른다. 나는 스탠드 아래 둥근 빛의 경계에 연필을 잠깐 눌러 오늘의 단어를 써 본다. ‘리듬.’ 뜻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되돌아올 수 있는 발판 하나하나를 놓는 행위. 리듬이 생기면 이해는 자연스레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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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기후정의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 아프고 힘들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들려줄 사랑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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