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한 점술가가 그러더라. 나는 애들이 셋인데 다 아들에, 판검사나 경찰같이 나라에서 일을 한다고. 정말 신기가 있는 건가? 그런 것까지 나오다니. 아무튼 나는 딸도 낳고 싶어서 딸은 없나 물으니, 아들이 셋은 낳아야 딸이 생긴다고 했다. 어쨌든 다복하다는 것인데, 미안하지만 말을 거칠게 하겠다. 다복하긴 개뿔. 아주 그냥 아들은커녕 아이가 생기지도 않더라. 상대적으로 좀 오랫동안.
결혼하면 꼭 아이를 낳고 싶었다. 결혼했으니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결혼 상관없이 아이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너무 당연했다. 그냥 무조건이다. 그런데 안 생겼다. 난임? 일단은 아니다. 어쨌든 시작부터 공식적인 부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주 그냥 신나게 놀았다. 오히려 결혼 전보다 후에 훨씬 자유로웠다. 선을 지키는 선에서 서로에게 자유를 주었다. 일 년만 놀고 가지려 했는데, 그랬는데. 혹여나 갑작스레 아이가 생길까 조심 또 조심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지만,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아이가 생기기 어려우니까.
실컷 놀았으니 슬슬 아이를 계획했다. 많은 부부가 그럴 것 같은데 임신 시도를 하는 시점부터 바로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걱정이 된다. 예민한 나도 딱 그랬다. 처음 시도한 첫 달에 바로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이제 겨우 첫 달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잡는다. 두 달째, 안 생겼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마음 편하게 가지자. 석 달째, 안 생겼다. 혹시 우리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왜 안 생기지? 지금 생각하면 겨우 석 달째인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난임과 불임. 난임이라는 단어보다 불임이라는 단어가 훨씬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난임이라 한다. 임신이 어렵다는 뜻이다. 불임은 임신이 정말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생물학적으로 신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고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임신이 어렵다는 뜻의 난임이라고 한다. 불임은 참 냉정하고 차가운 말이다. 현실이다.
일단 나의 경우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검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직업과 취미 상 컴퓨터를 하루 종일 하고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오랫동안 피운 전력이 있기에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이 다 하는 것이지 정확한 상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임신이 왜 안 될까, 혹시 안 되는 거 아닐까,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질 뿐이다. 이럴 때는 검사를 바로 해서 자기 몸이 어떤 상태인지 확실히 아는 게 낫다. 하지만 참 어렵다. 이런 문제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기가 참 어려웠다. 나도 항상 조금만 더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30대 초반의 나이라서 그랬을까? 그때는 검사는 미루자는 여유가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 왔으니 생각하지만 같은 결과라면 그냥 검사해 버리고 털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들먹이게 된다.
걱정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문제가 있어서 간다기보다 임신을 준비하면 다들 흔하게 간다고 했다. 한창 예민한 때라 그런지 친구들 말도 미웠다. 그 친구들은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거나, 임신을 준비하고 곧 임신이 돼서 임신 준비로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야속했다. 친구들은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텐데, 그땐 마음이 안 그랬다.
집 근처에 제법 큰 C 산부인과가 있어서 별다른 고민 없이 갔다. 아무래도 집 근처라서 가게 되었다. 운명이었을까? 하필 난임을 다루는 병원이었다. C 병원은 아쉽게도 나에게 맞지 않는 병원이었다. 다니는 내내 병원에 들어가면 뭔가 차갑고 싫었다. 난임이 문제가 아니고 그냥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다.
조금 두려웠다.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이 될까 봐. 혹시나 내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임신을 준비한다고 하니 기본적인 확인과 배란 주사를 먼저 시작하자고 했다. 우선 초음파로 내 몸을 확인하고 다른 소견이 없는지 확인한다. 이상소견이 나왔다. 나팔관에 혹이 달려 있다고 했다. 단순한 혹일 수 있지만 다른 부분일 경우 임신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아! 사실 별거 아닌데 그땐 역시나 불안감이 앞섰다. 들어는 보았나? 나팔관 조영술. 검색해 보니 나팔관을 엑스레이로 확인하기 위해 조영제를 넣어 나팔관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술이다. 발견된 그 혹이 무슨 혹인지 확인하고 나팔관이 막혔을 경우 뚫어주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이 시술을 검색하면 난임 관련 정보가 제일 먼저 나온다. 불안하지만 어쨌든 의사가 권장하니 당연하게 하기로 했다.
아이는 나만이 아닌 우리 부부의 뜻이니 불안한 나로서는 남편이 곁에 있어 주기를 원했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본인이 같이 가주겠다고 했지만, 남편과 나의 일이니, 남편이 반차를 내고 가는 것에 동의했다. 그냥 그때 친구랑 갔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좀 길다.
정보의 바다는 때로 유레카를 외치게 하지만 걱정이 들어가면 문제다. 친구가 병원을 권하며 골반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골반염은 자궁 내 경관에 번식하고 있던 세균이 자궁내막과 나팔관, 혹은 복강까지 퍼지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조영술에 대해 검색하니 시술하다 병원에서 균이 옮겨져 골반염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을 본 터라 또 불안했다. 단순한 아픔이 아니고 골반염으로 인해 임신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 과도한 검색은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모르는 사람은 없다. 쉽지 않을 뿐.
의사는 조영술이 아프긴 해도 매우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나의 경우? 미치는 줄 알았지. 정말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설사의 배 통증이 시작되는데 점점 세지면서 이 정도면 끝나나 했지만 통증이 더욱 증가하며 너무 아파서 억 소리가 났다. 이봐요 의사 양반, 조금 아프다면서요. 어디까지나 내가 그랬을 뿐. 사람마다 다르니 혹시 하게 된다면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과는 별 이상이 없었다. 막힌 곳도 없고 문제의 그 혹은 다행히 얼굴에 나는 작은 뾰루지 정도여서 더 커지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이상이 없으니 이제 내 주기에 맞춰 배란 주사를 맞고 지정하는 날짜를 지키면 된다. 세 번 정도 시도 후 임신이 안 되면 피검사를 한다고 한다. 내 피검사. 그때는 정신없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순서가 잘못되었다. 여자부터 임신을 위한 의료적 시도를 하는 게 아니고 남편도 같이 검사해야 하는 게 맞다. 아무튼 그렇게 적절한 날짜를 확인하여 주사를 맞고 임신 시도를 석 달 정도 한 것 같다. 당연히 임신은 안 됐다. 임신이 잘 안 되는 것이 심리적인 영향이 있는지 문의하니 의사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아이를 기다리는 분들이여! 모르지 않잖아요? 다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이 쉽지 않을 뿐이다. 피검사와 함께 그리고 약도 먹어야 한단다. 지금이야 뭐가 문제일까 싶지만, 그때는 그렇게 싫었다. 약까지 먹어가며 준비하는 게 너무 서글펐다. 남편에게 약 먹기 싫다면서 울었다. 남편은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또 몇 달인지, 일 년인지 시간은 흘렀고 여전히 임신은 되지 않았다. 자력으로 임신 시도를 하려니 불안하고, 결국 다시 병원이다. 아마 병원에 다닌다는 것은 나의 불안함의 표시다. 어딘가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같은 모임의 동생이 알려주는 병원으로 갔다. 집에서 좀 멀지만, 다행히 지하철을 타면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라서 다니는 건 괜찮았다. 방법은 비슷했다. 초음파로 상태를 확인해서 날을 잡아 주사를 맞고 진행한다. 이 병원에서도 좋은 소식은 없었지만, 병원의 의사만큼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의사는 내가 한약을 먹는 것에 대해 문의하면 그것도 좋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한약을 먹든지 어떤 시도를 하든지 내 맘 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하라고. 별것 아닌 일이지만 불안하고 우울한 내 마음에 소소한 위로가 되었다.
병원을 몇 달 다니는 동안 초음파 비용이 인상되었다. 임신 후의 비용은 비용 할인 혜택이 있었지만, 임신이 아닌 상태에서 비용은 그렇지 않았다. 그땐 이것도 좀 서운했다. 과학과 의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임신하고 싶은 사람한테 너무하다 싶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초음파 비용을 보고 한 달에 세 번 정도라면 할만한 비용이었는데, 인상된 가격은 그조차도 부담이 되었다. 정말이지 난임부부는 웁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난임 지원을 받고 하는 게 아니라서 비용은 꾸준히 나갔다. 이렇게 해봐야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추석 때였을까? 남편은 친구들과 만난다며 나갔다. 사실 이날은 병원이 정해준 날이었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갔다. 그날의 기억. 너무 싫다. 지금 생각해도 하! 하며 탄식이 나온다. 후회되는 것은 새벽에 온 남편은 울며 잔소리하는 내게 화내면서 집을 나가려 했을 때 그때 붙잡지 말걸. 내 인생의 한이다. 그냥 내보내고 문을 잠갔어야 했다. 난 왜 붙잡았을까? 내가 무슨 보살이라고. 아주 그냥 이가 갈린다, 갈려.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날에 책임을 다하지 않은 남편을 한없이 봐준 게 잘한 일 같지는 않다. 진짜 웃기고 슬프다는 표현이 맞다. 정말 웃프다.
난임이 힘든 이유는 원하는 아이가 늦어지는 것도 있지만, 만만찮은 심적 고통을 동반한 이 길을 혼자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길이 혼자라 생각될 때 힘들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정말 제대로 겪었다. 임신하기 좋은 날이 웬 말이야. 의무도 지켜야 의무다. 결혼생활에 아이가 의무일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아이를 원한다면 약속의 날은 지켜야 할 의무다. 남편 본인도 불안하니 줄여야 할 술을 더 마셔대고 결국 난 또 울고. 우는 나를 남편도 싫어하고 나 자신도 싫어했다. 딱 그 시점에서 아닌 척하며 서로 상처를 내기 바빴다. 그렇게 가능성 있는 약속의 날들은 가끔 지켜지지 않았고 지켜지더라도 그냥 가능성이었을 뿐 결국 임신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새벽의 폭주 이후 아침이 되어 사과한 후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진작 했어야 할 검사를 공식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난 또 좋은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다. 연휴가 지나고 남편은 곧바로 검사를 실행했다. 병원에서 그러더란다. 별 걱정하지 말라고, 대부분 무난하게 나온다고. 며칠 후 병원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결과가 좋지 않으니 난임 전문병원에서 검사를 제대로 받는 것을 권했다. 남편은 정자가 조금이 아니고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것은 흠이 아니다.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이 일은 안타까운 경우는 맞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원망하는 것은 남편의 상태가 아니다. 남편이 나타내는 태도가 문제일 뿐. 남편은 닥친 상황에 함께 이겨내기보단 술을 마시며 회피하고 뻔뻔하게 굴고 이기적으로 굴었다. 그게 문제다. 내가 남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 우리의 현실이다. 서로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는 부부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우리 부부는 절대 그러지 못했다.
당장 시술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와 맞지 않는 C 병원에 가자니 싫고 친한 언니가 출산한 병원에 난임센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했다. 검사를 하기 전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시술은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돈으로 맛있고 좋은 거 먹으며 여행을 다니자고 했다. 지금은? 그냥 시술이 맞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결과는 당연히 안 좋게 나왔다. 앞서 한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난임센터다 보니 의사가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해줬다. 먼저 정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요즘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정상적인 정자 수의 기준이 낮아지고 있지만 그 낮아진 장벽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게다가 정상 정자보다 기형정자가 많다고 한다. 기형이란 단어에 움찔하며 기형정자가 많으면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은지 문의했더니, 검사한 사람들이 백이면 백 다 그렇게 문의한다고 한다. 기형정자는 애초에 임신이 될 수 없는 정자라고 한다. 결국 정자 수도 부족하고 기형정자가 많으니 임신 확률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참 씁쓸했다. 결국 자연임신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난임이 되었다. 이미 난임이었지만 공식적으로 난임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난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