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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일찍 들어온다는 그에게

(부제: 시치미와 함께 젓가락을 건넨다)

by 소피아

“저녁 안 먹고 일찍 들어갈게.”
남편의 현재 상황 보고.


“응~ 알겠어.”

아무렇지 않은 듯
짧은 대답을 하며
방금 올라온 감정을

8등분으로 나눠 담았다.


이건 사모님의 오래된

감정 정리 방식.

그중 소분해둔 성가심을

냉동실에 넣고

앞치마를 두른다.


뭘 해볼까,

감정도, 저녁도 어떻게 조리해볼까.

맛있게 하자니 또 기대할 것 같고

맛없게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럴 땐 궁중음식을 배웠다는

그 프라이드가,
뭘 맡겨둔 것처럼 펄쩍 난리다.


‘음식은 마음’이라는 말을
실제로 국물 맛으로

증명할 줄 아는 사람,
그런 내가
이번만큼은...

‘무맛의 품격’을 고민한다.


언제나

저녁거리 사온다 그러면 땡큐,
저녁 먹고 온다 그러면 더 땡큐.


그런데 왜 그랬을까.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하는

다정한 메시지는 왜 보냈을까.


아마도, 당신이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이 그리웠던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든 된장찌개보다

따뜻한 한마디가 더 그리웠던 걸까.

...호호호


결국 오늘 저녁엔
궁중떡볶이도, 갈비찜도 없다.
대신 깊은 감정 하나가 보글보글.


곧이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에게 시치미 뚝 떼고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가 맛집이래
한 마디 툭 던진다.


조명은 살짝 어둡게
테이블엔 예쁘게 플레이팅된
배달음식.

간장 치킨에 청양 고추 추가.

내가 좋아하는 거지만
“이게 인기가 많대~” 하며

젓가락을 슬쩍 내민다.


그렇게 감정을 데우지 않고,

음식을 식히지도 않고
선택할 줄 아는

사모님으로 남는다.




감정적 사모님의 감정 요약


“된장찌개보다 뜨거운 건

내 마음이었다.”


“요리는 멈췄지만

자의식은 은근하게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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