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21세기에도 가난한 사람은 있다. 어디에 있냐면 지금쯤에는 아마도... 과거에 있을 것이다.
지금이 2022년이니까, 저 사람은 1982년, 저 사람은 2003년, 그리고 저 사람은 2012년쯤을 사는중이겠지.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를 상상해본다. 눈앞으로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얼굴이 그려진다. 내 상상 속의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다시 게슴츠레 떠보며 내가 말한 가난의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그렇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대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현재의 사람은 과거의 사람을 결코 볼 수 없다.
뉴스를 보니 올해 여름은 더울 거라고 한다. 아직 여름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나도 친구들과 올해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야겠다든지, 카페에 자주 가야겠다든지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심각하고 걱정하는 듯 말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곧 폭염이란 말은 내일 비가 올 것이다 정도의 얘기일뿐이다. 비 오기 전 우산을 챙기듯 폭염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어디 폭염이 우산 하나를 챙기는 것만큼 가볍던가? 예전이었다면 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올해 여름이 너무 무섭고, 걱정된다고.
내가 아직 학생이었던 그해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옥상 바닥을 천장으로 두던 우리 집은 폭염의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는 다가구주택이었다. 그날은 불타고 있는 실내의 열기에 도저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갔다. 주말 24시간을 집에서 버티다간 어디 들것에 들린 채로 집 밖으로 실려 나가게 될 게 뻔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그 당시 새로 생긴 백화점까지 걸었다. 땡볕을 피해 걸어도 지면의 열 때문에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더우면 자동차가 휴게소에 들리듯 은행에 들렸다. 은행에서 더위가 좀 가시면 다시 걸었다. 고대하던 백화점에 도착해서는 하릴없이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떼웠다. 거기 있는 물건은 뭐든 비싸고, 과해서 도저히 우리 형편과는 맞지 않았다. 백화점 폐장 시간이 되면 집에 왔다가도, 너무 더우면 다시 밖을 나갔다. 잠자는 건 포기하고 함께 공원 계단에 앉아서. 그냥 매일 매일 그렇게, 여름을 견뎠다. 내일 오를 예정이라던 1도에도 벌벌 떨었던 여름이었다.
폭염이 가면 한파가 시작되니 아마 이번 겨울도 추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는 보일러가 온 집 안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실외 온도가 1도 떨어져도, 실내 온도를 1도 올릴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의 나는 집 안에서 연탄을 피웠었다. 거실 한 가운데에 연탄난로를 두고 썼었다. 그때 아빠가 연탄 배달일을 하셨기 때문에 연탄은 싸게 받아올 수 있었다. 겨울을 더 저렴하게 날 수 있었다. 대신 이산화탄소 중독이 걱정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죽을지도 모르니, 온 가족이 밤중에 종종 깨서 연기를 확인하고 그랬다. 추억의 학창 시절이다.
70-80년대 같았던 나의 2010년대였다. 나는 그 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를 올려 연탄으로 물을 끓인 뒤, 그걸 화장실의 찬물과 섞어 세수하곤 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또래에게 말한다면 아마 쉽게 공감받기는 힘들 것이다. 또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공감되는 일화가 아니라, 당장 어디 EBS에 나와도 과하지 않은 다큐멘터리가 따로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에 끄덕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 말이다.
가난하다는 건 '아직도 이렇게 살아?'에서 '아직도'를 담당하는 일이다.
누구는 앱으로 식재료를 새벽 배송할 때, 누구는 유통기한이 임박해 세일하는 제품을 사러 마트 코너를 뒤진다. 누구는 샤인머스켓이 식상할 때, 누구는 크게 무르지 않은 타임세일 포도를 골라 산다. 누구는 물 온도를 유지해주는 욕조에서 반신욕을 할 때, 누구는 보일러가 없어 대중목욕탕으로 간다. 누구는 직장에 여러 복지를 두고 있지만 누구는 목숨을 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아직도 그러냐, 아직도 그런 문화가 있냐, 아직도 그런 곳에서 일하냐’의 총합이다.
결국 가난하다는 건 2020년대에 2000년을, 2010년에 1980년을, 1980년에 1960년대를 살아간다는 의미다. 가난하다는 건 우리가 열심히 발전시킨 기술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고, 노력하여 만들어왔던 제도의 끄트머리에 있다는 뜻이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간다. 같은 서울에서도 누구는 현재의 2022년을 살아갈 때 누구는 1980년을 살아간다. 사람 사이에서 이른바 시간차가 생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있어도 서로를 의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들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을 극복하는 것은 어긋난 자신의 시계를 세상의 시간과 맞춰 가는 것이다. 어긋난 초침을 부단히 돌리는 와중에도 세상의 시간은 간다. 나는 가끔 가난한 사람들이 이뤄내는 평생의 과업은 언제 한 번 세상의 시간에 살아보는 것이라고 느낀다. 인생 5년을 투자해서, 시대 차 10년을 줄이고, 또 3년을 투자해서, 시대 차 5년을 줄여내고... 나는 매 순간 열심히 노력하여, 2010년 초 정도로는 따라잡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노력해서 따라잡고 있는 게 겨우 세상의 시간이라는 걸 자각할 때면, 고작 평균이 되고 싶어서 아등바등해야된다고 생각할 때면, 그리고 그게 또 혼자가 된 새벽이라면 조금 쓸쓸해져 버리고 만다. 언제까지 시대 속에 편승하지 못하는 이방인, 시간 여행자로 살아야 할까?
나는 나의 달력과, 세상의 달력을 좀 보다가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2030년에는 2030년을 살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