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초록입니다. 저는 가난합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수식어로 나를 소개했지만, 한 번도 가난과 엮어 말한 적은 없다. 심지어 가난한 학생들을 모아 장학금을 주는 장학재단에서조차 나를 가난으로 설명한 적은 없었다. 얘도, 쟤도, 나도 똑같이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가난에 대해 떠드는 것만큼 식상한 게 어디 있겠냐마는, 어쨌든 가난한 사람끼리도 피하는 주제가 가난이었으니 세상에 나의 가난에 대해 말을 나눌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전에 가난했든 지금 가난하든 앞으로 가난할 예정이든, 많은 사람이 가난과 자신을 최대한 떨어트려 놓고 싶어 하는 듯하다. 가난을 고백하는 건 오직 과거의 추억일 때만이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어야, 가난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가난이 성공을 더 크게 부각할 오목거울이 아니라면, 짜증 나는 핸디캡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가 안다. 인터넷에서는 ‘가난한데 애를 낳는 건 학대’라는 말이 불길처럼 번지고, 일부 자본가들에게는 ‘가난한 건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누군가의 됨됨이를 칭찬할 때조차 ‘어렸을 때 여유로운 집에서 사랑 많이 받은 듯’이라고 쓰는 오늘날. 자신의 가난을 털어 놓는 건 자신의 태생부터, 부모와 자신까지 시원하게 욕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 인생에 가난으로 만들어진 게 너무 많은데, 정과 망치질로 나를 들여내고 또 들여내서 지금의 윤곽을 만든 게 가난이었는데, 가난을 아무 데도 말할 데가 없다니 조금 억울했다. 인생에 강한 존재감을 가진 부분이 가장 다른 사람과 얘기하지 않은 부분이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나의 가난이 만들어 낸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 솔직한 생각, 부끄러웠던 모습, 나만의 생활 습관, 가난을 버티려 노력했던 나의 자세를 여행 이야기나 재밌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 디테일을 살려 생생하고 즐겁게 말하고 싶다.
삶에서 가난은 항상 무언가를 받기 위한 증명 정도나 한탄 정도로 사용됐다. 그렇지만 나는 내 가난을 ‘내가 얼마나 가난했고, 지금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가난이 나라는 한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필명의 힘을 빌려 솔직하고 가감 없이 얘기해볼 예정이다. 나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서로의 사회적 모습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느슨하게 만나 가난에 대해 무겁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