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그렇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니 존경스러워!”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친구가 말했다.
“뭐, 한국인들은 미국, 중국 외에 웬만한 나라는 비자 없이 비행기 표만 끊으면 갈 수 있어서 여행을 많이 하기도 하구. 나는 혼자 여행을 좋아해.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같이 여행하면 새로운 나라와 도시와 그 사람들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고 난 그 나라 사람을 관찰하고 소통하는 걸 좋아해서. 현지인들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눈도 맞추고 스몰토크도 나누고 하는 게 일상과 다른 이야기니까 좋아. 같이 가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다른 가치는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아. 근데 혼자 길게 여행하니까 지치기도 하고 심심해서 이젠 같이 여행하는 게 좋아졌어.” 하고 말했다.
대학원 방학 동안 여행을 하는데 너무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막상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이 아까워서 어디든 여행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든 느낌도 있었다.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후회로 남기 싫어서. 학자금 대출로 빚도 있으면서 일단 가진 돈을 다 쓰면서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며 행복하던 학생 시절과 비교해서 이제는 잃을 게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모아 놓은 돈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나라를 선택하지 못하고 가격과 타협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 앞으로 쓸 돈을 남기며 아껴야지, 하는 나 자신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이 정도라도 걱정 없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적당히 하며 살게 된 지금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근엔 여행 그 자체에 지친 것 같다. 많은 곳을 여행해 보며 새로운 것에 노출되어 왔지만 그 감흥이 처음 여행을 하게 될 때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다지 엄청 새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마다 동네마다 자잘하게 혹은 큼직하게 다르긴 달라 그 새로움을 맛보는 건 보장되어 있어서 여행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좀 쉬다가 다시 즐겁게 다니게 될 건 맞다.
직장을 다니다 짬짬이 3박 또는 4박으로 여행하다 보면 더 오래 있고 싶은데 아쉽다는 느낌이 크다. 그런데 또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겨서 비행기표를 끊는 김에 더 오래 있다 오자, 하고 보름 정도 다른 나라에 있다 보면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안전하고 포근함을 느끼고 싶다. 지역 별로 이동하는 게 지치기도 하고 온전히 쉬는 기분은 안 든다. 동남아는 집 밖을 나서면 오토바이 떼 때문에 늘 긴장하며 다녀야 한다. 또 너무 마음 놓고 다니다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이후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조심하며 다니니 정신이 피곤하다.
보름 정도 여행하다 보면 생리 전 증후군 또는 생리 기간과 겹치기도 한다. 이번에 중국을 친구들과 여행하는데 하이킹도 하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너무 덥고 지치고 다리가 아프고 피곤이 몰려왔다. 알고 보니 예정일 보다 2-3일 일찍 생리를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전부터 몸이 안 좋았던 것이다. 여럿이 여행하는데 몸이 안 좋은 티를 내기도 미안했다. 여행 코스를 준비해 준 친구 부부에게 미안해서 힘든 티를 안 내다가 생리 당일날은 쓰러질 것 같고 도저히 에너지가 없어서 혼자 방에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점심을 먹고 박물관에 가라고 한 뒤 방에서 에어컨을 켜고 쉬었다.
10월 연휴 동안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동료에게 연락이 왔지만, 평소 같으면 기쁘게 생각하며 비행기를 알아볼 텐데 제안은 너무너무 고맙지만 쉬기로 했다. 최근엔 교수 연구실에 잠깐 갈 일 있었을 때 외국 얘기 예술 얘기 등 공감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나 건물에서 지나치는 외국인 학생들과 가끔 스몰토크를 나누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만나는 학우들의 질문과 대답을 들으며 영감을 얻고 있다. 내 삶에 다시 집중하며 마음의 흐름의 평온을 되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