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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게 그렇게 희한한가요?

치앙마이(22)

by 모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말이 많고 시끄러운 사람을 싫어하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지루하게 길게 얘기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예전부터 길게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긴 얘기를 요점 없이 장황하게 들을 때 인내심을 가지게 하는 게 싫다. 그런데 내가 그렇지 않기 위해서 너무 노력한 나머지 해야 할 말을 너무 간추리거나 말하기 전에 내가 이 말을 충분히 길게 다 할 수 있을까? 하고 겁을 먹게 된다. 그래서 상대가 기다리든 말든 중간에 길을 잃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꺼내면서 장황하게 길게 말하고 있다면 그 상대는 내가 자기를 엄청 편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해도 된다. 나의 단점은 충분히 의견을 설명해도 되는 자리에서도 너무 간단하게 핵심만 말하게 된다는 것. 마음을 좀 편하게 갖고 싶다.


“치앙마이에 혼자 가서 몇 달씩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외롭지 않겠어?” 하고 교수님이 물은 적이 있다. 수업을 듣는 내내 뭔가 외모가 조국을 닮았고 잘생기고 똑똑해서 인생이 부럽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이다. ”아, 저는 그냥 카페나 벤치 옆자리에 앉은 사람한테도 말을 잘 걸어요. 그리고 여행 중에 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많고 친구도 잘 사귀어요. “라고 대답했더니 자기는 모르는 사람이 카페 다른 테이블에서 말을 걸거나 하면 너무 당황스럽고 어색해서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왜 불편하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공감을 구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같은 회사나 학교 동료여도 모르는 사이에 말 걸면 어쩔 줄 모르고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말 뿐이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나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술자리 안 좋아하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기 빨리는 거의 I에 가까운 E인데 극 I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E의 대모처럼 되어서 너무 웃기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도 그 사람이 매력적이어서 친해지고 싶어서도 아니다. 나는 그냥 궁금한 걸 못 참고 뭐에 꽂혀서 말을 걸고 싶은 거리가 생기면 꼭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오, 너 신발 진짜 이쁘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야!” 하고 말을 걸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서 말을 쏟아내야 하는 것이어서 그냥 그것이 다일뿐일 때도 있고, 그냥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심심해서 혹은 즉흥적으로 말을 걸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말을 건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어떨 땐 이렇다 저렇다 괜히 말을 걸고 어떨 땐 조용히 가고 싶고 그런 것이다. 그날의 체력과 에너지도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의지에 많은 영향을 준다.



요가에서 요가 매트를 펴고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심심할 때 옆 사람에게 말을 잘 건다. “오, 너 요가 매트 색깔이 진짜 이쁘다. 나도 그 핑크색을 사볼걸 그랬다.”를 시작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 하면 거의 내가 가본 나라일 확률이 높아서 내가 그 나라에 갔던 경험도 나누고, 그러다 보면 한국에 와봤냐, 치앙마이에서는 뭐 하냐 하는 대화로 번지게 된다. 말을 건 이유는 진짜 요가 매트 색깔이 너무 예뻐가지고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태국 어디에서 산 매트라고 하며 낯선이에게 열린 태도와 생각을 가진 긍정적인 표정의 날씬한 중국 여자였는데 언제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서로 시간이 안맞아 다시 보진 못했다.


한 번은 나를 두 번째 본다며 멕시코 여자가 엄청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함박미소와 자연산 꼬불꼬불 곱슬머리를 가졌다. 그러면 나는 “오, 또 봐서 반가워.” 하면서 “오, 그때 이후로 요가는 처음 오는 거예요? 어제오늘 날씨 진짜 좋아요. 며칠 동안 계속 폭우 와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서 요가 매트는 새로 샀나요?” 하고 말 걸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면 상대가 약간 부담스러워하면서 뒷걸음칠 치는 게 느껴져서 뭔가 낯선 사람을 질리게 만든 나 자신과 상황이 너무 웃겼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활달할 것 같은 유럽인, 남미 사람들도 내향인들은 나의 질문, 대화 폭격을 부담스러워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도 있어 재밌다. 항상 들떠있고 미쳐있는 파티광의 스페인, 남미 사람들을 많이 봤어서인지 먼저 말을 잘 못 걸고 누가 말 걸면 부담스러워하는 내향적인 사람들도 많을 것을 생각을 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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