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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13. 2022

빗방울

 호텔 창문에 빗방울이 들이친다. 아니, 들이친다기보단 knock, knock. 두드린다. 침대를 바라본다. 그녀가 누워있는 것만 같다. 새근새근 자는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더블 침대의 가장 자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녀를 안는다. 하지만, 없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베개를 안는다.

 그녀는 미국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 있었어도, 우리는 헤어졌을 것이다. 미국의 침대는 더블일까? 그녀가 내가 여행 올 때를 대비해 큰 방을 구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의 사이는 서울과 나성의 거리보다 더 멀어서, 편지를 써달라는 노래마저 처량하게 들린다. 오늘은, 여자친구와 자주 왔던 호텔 방에 왔다. 나 홀로.

 나는 항상 먼저 도착해 노트북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그녀를 맞아주었다. 재즈는 그녀와 나를 이어주는 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이자, 우리를 맞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 블루투 스 스피커를 가져오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신촌에 가지 못하는 쫄보가 나는 아니다. 나는 아직도 재즈를 듣는다. 하지만 오늘은 듣기 싫었다. 오늘은 자라섬 호텔에 왔다. 그녀와 내가 사랑을 나눴던 장소이다.

 빗방울이 거세진다. 그녀는 항상 빗소리를 사랑했다. 가끔 호텔을 빌려서 놀 때, 비가 오지 않으 면 빗방울 소리를 유튜브에서 검색할 정도였다. 예보에 없던 비다. 내 마음을 한창 더 시리게 만 든다. 뼛속까지 젖어, 옷이 무겁다. 나는 옷을 벗는다.

 여기까지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비는 조금씩 윈도실드를 두드렸다. 나는 와이퍼를 킨다. 가는 길엔 그래도 재즈를 들었다. Chet Baker의 I fall in love to easily.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고, 무모하게 당신을 탐닉했던 나는 어디갔나? 조수석을 바라본다. 그녀는 귤을 까주진 않았지만, 나에게 아메리카노를 먹여줬고, 계속 내가 힘이 나는 말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 쉽게 빠졌다. 나는 그렇게 만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되돌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단 한번의 시도에서도 실패를 맛보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있다.


“내가 여기 있어.”
 그녀가 말한다, 내 차의 조수석에서, 호텔방의 침대에서.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조수석으로, 침대로.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빗방울, 이놈의 빗방울들이 불쾌한 요술을 부리고 있다. 윈도실드의 빗소리가 거세진다.


“내가 민성이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뭐냐면...” 

“뭔데?”

 이제 빗방울은 나의 목소리까지 흉내내고 있다.


“해린이의 인스타를 타고 인스타에 가봤지. 근데 잠겨있고 브런치 주소만 있는 거야. 들어가봤지. 버스에서 못내릴 정도로 집중해 다 읽었어. 그 때 반했지.”

“그건 처음 듣는 얘긴데.”
 빗방울이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준다. 하지만 나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좋았어?”
 이번엔 침대에서 내가 말한다.
“치~ 몰라.”
 그녀는 몸을 베베 꼰다.
 나는 미칠 것만 같다.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호텔방 티비의 소리를 키운다. 빗줄기가 한층 더 거세진다.


“사랑해,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자.” 

“나랑 사귀어줄래?”
“그래. 내 남자친구.”


 나는 귀를 틀어 막고 억지로 잠에 들려 노력하고, 성공한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일어나니, 비가 그쳐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운전석에 타고, 윈도실드를 바라보니 너무 많은 빗방울들 이 앞을 가린다.


“  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와이퍼를 킨다. 빗방울들이 단 두번의 움직임에 말끔히 지워진다. 나는 다신 당신에 대한 글을 적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엑셀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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