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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14. 2021

때가 되면 곁을 떠나겠지만 말이야.

10.


그래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병원에 자주 오는 대형견이 있다. 계절을 이름으로 가진 아이는 병원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사랑스럽고 듬직한 골든 리트리버다. 30Kg 족히 넘는 몸무게를 가졌음에도 사람만 보면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이는 병원 단골환자 중 한 명이다. 그 순한 눈망울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내가 해온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도 병원에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도 단골로 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주사를 맞고 발버둥을 치거나, 고통에 못 이겨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순간마다 마음속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고통스러워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암 때문이다.


골든 리트리버는 품종 특성상 가장 취약한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암에 잘 걸린다는 것. 사실 환경적 요인이나 영양학적 문제도 있겠지만 골든 리트리버 종의 60%가 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인 문제를 아예 빼놓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정기 검진을 자주 받는 아이라면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전 검진을 통해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대부분 진단 후 몇 개월 내에 사망하고 만다. 심지어 몇몇은 진단을 받고 난 뒤 며칠 내에 안락사를 진행하기도 할 정도로 골든 리트리버의 암은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필연적 운명이다.


병원 사람 모두가 알고 있고 사랑스러워하는 아이일수록 더 불행한 운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자주 오는 아이일수록 건강에 큰 이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아이일수록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니까. 거기에다가 아무리 아파도 사람을 물지않는 귀여운 대형견이라니. 가끔, 동물들에게도 신이 있다면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일수록 왜 더 고통스러운 삶을 주는거냐고 묻고싶다. 물론, 순종을 원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말이다.




병원에 오는 아이는 부유한 집 출신이라, 달에 두세 번 정도의 검진을 받는다. 한 회 진료의 얼마의 금액을 지불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매 진료 때마다 꽤 큰 금액을 납부하고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료뿐만이 아니라 급작스런 응급상황까지 더해보면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른 집에서 길러졌다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동물을 키우는데 필연적인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보험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적게는 몇 십만원, 많게는 몇 백만원을 써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의 태도를 단순히 재정으로 가르기는 어렵다. 적어도 내가 본 보호자들은 돈이 없다고 해서 아이를 버리거나, 돈이 많다고 해서 아이를 애지중지 대하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재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되는 것 같다.


반려동물은 때가 되면 주인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키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몇 년 안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 몇 달 안이 될지도 모른다. 병으로 떠나든, 자연사가 되었든 말이다.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는 건 꽤나 큰 인내와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다. 고통스럽지 않도록 관리도 해주어야 하고, 행동 하나하나 이전보다 더욱 신경써서 돌봐주어야 한다. 병원에 더 자주 들러 더 많은 치료를 받고 더 많은 돈을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남은 건, 오직 보호자 뿐이다.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하고 있다는 유대감, 아픈 아이에게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다. 





아픈 아이일수록 버려지기 쉽다. 이 문장은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되어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재정이나 정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많은 동물들이 버려진다는 사실은 몇 십년째 변하지 않았다. 한 해 보호소에 버려지는 8만 마리의 유기견 중 대부분이 늙고 병든 아이들이다. 온 몸에 곰팡이가 피어 털을 미는 것조차 하기 힘든 아이, 다리뼈가 골절되어 똑바로 걷기도 힘들어 안을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아이, 온 몸이 털로 뒤덮힌채 눈뜨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아이, 치주염 때문에 잇몸이 녹아내려 입조차 뗄 수 없는 아이까지 ... 이게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모두 다 직접 보호소에서 마주친 아이들이었다.


몇 몇 이기적인 사람들은 병원 앞에 반려동물을 유기하곤 한다. 아픈 아이를 돌봐줄 여력이 되지 않으니, 마음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싶어서 병원 앞에 두고 가는 경우인데 전혀 하나도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결코 치료받고 행복하게 살았대요 같은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마주하면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되도록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혹 들 때가 있다. 그냥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그냥 제 몸이나 간간히 잘 돌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여유롭고 친절한 보호자를 만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에서 잠시 멀어져 행복한 삶을 누리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못한 보호자를 만났기 때문에 온 신체기관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이야기가 아닐까.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모습이 아이 스스로 한 선택은 결코 아닐텐데 말이다. 예전에, 보호소에 봉사활동을 간 날, 늙고 병든 채로 다리를 저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전 주인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 아직도 사람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 달려오기도 했었다. 나는 가끔 아직까지도, 순간을 스치듯 그 광경이 떠오르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반려동물의 기대수명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그래도 많은 반려동물들이 주인보다 먼저 떠나게 된다. 앞서 말한 가여운 골든 리트리버도 언젠가 주인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다만, 그게 이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그래도 좋은 주인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앞서 말했듯, 모든 반려동물들이 주인 곁을 떠나는 때가 오겠지만 그게 반드시 그 때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떤 상황이 닥치든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서 여생을 함께하는 보호자들이 더 많기를 간절히 바란다.  


※ 원문에 게시되는 글은 모두 의학적 소견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자세한 증상이나 문의는 가까운 동물병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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