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말> 마지막화
예쁜 마음은 예쁘게 말하고 싶어 진다던 거짓은 그 예쁜 마음을 어떻게 예쁘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 만들어진 녀석이다. 그래서 구구절절 거짓은 어떻고, 말은 이렇고, 마음은 어때서,라는 식으로 떠들면서 나의 못난 구석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였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나는 사람들이 예쁘다. 언제나 기특하고 대견하다. 길가에 저 홀로 자연히 피어난 꽃을 보면 "고 녀석, 어떻게 이런 곳에 혼자 폈을까" 싶어 대견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을 그렇게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예쁘고 기특하여 마음이 뭉클할 정도다. 이렇게 예쁜 사람들이 많으니 나도 예쁜 마음을 가지고 예쁜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생각보다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도 아니지만, 못난 마음이 들 때엔 좀처럼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느끼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크고 무겁다. 아마 어떤 꽃과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대견해하는 것이 같은 맥락일 것 같다. 나는 좀처럼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가벼운 마음도 툴툴 털어내지 못하니 그러는 동안 마음에 이것저것 들러붙어 본래 마음보다도 한참 무거워진다. 그런 채로 혼자 피어나보려고 내내 애쓰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으니, 홀로 피어난 꽃도, 홀로 피었거나 피어나려는 모든 사람들이 그 괴로운 마음을 견뎌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절로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나와는 달리 무언가의 충분한 영양분과 보살핌을 받아왔을 수도 있는 것인데, 내 시야는 언제나 내가 겪어온 것들 안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니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하고 마음부터 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애쓰고 지친 것들에게 언제나 마음을 빼앗겨 사랑에 빠지곤 하는데 그런 와중에 나도 아주 애쓰고 지쳐온 사람이라 그런지 마음은 자꾸 못났고 그런 마음을 따라 모난 말들을 하거나 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짓이 되어야 했다. 거짓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삐뚤고 모난 구석이 있기에, 이곳에서 거짓으로서 지낼 수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다 거짓이에요, 그러니까 믿지 마세요,라고 하면 나의 무거운 마음도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어차피 모두 거짓으로 치부될 수 있다면 나도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라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짓으로서 지내는 건 퍽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거짓의 말 안에서 나는 계속 나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려 했고, 곧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익숙하게 해 왔던 일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눈물과 마음, 사랑 같은 것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려야만 속이 편한 나, 애쓰고 지쳐 모난 마음 그대로 기어코 나를 못나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가 얼마나 큰 알맹이를 가진 채로 알맹이 없는 글들을 이어왔는지, 마지막 편이 되어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쯤 쓰면 이제 더 이상 무거운 마음들을 거짓이라고 숨겨 놓지 못하기 때문에 이 와중에도 아주 많은 마음들을 숨기려 들 것이다. 이것이 거짓의 진실이다. 제가 혼자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 혼자서도 감히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마음을 가짜인 양 꾸며내어 거짓된 사랑이라도 받아보려는 얄팍한 속임수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애쓰고 지친 것들에게 마음을 쉽게 빼앗기고 사랑에 빠지곤 한다. 혹여 나의 글을 보고 있는 나와 닮은 거짓이 있다면, 나는 또 마음을 빼앗겨 사랑에 빠지게 될 텐데 그마저도 거짓된 마음일 것만 같아 어떻게 사랑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미 못난 나의 마음을 알아채버린 이상 고집 세고 겁 많은 거짓이 뒤로 주춤 물러나는 것이다. 섣불리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그 거짓됨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나니 아주 멀찍이서 혼자 눈물을 훔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 거짓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뿐이지 않을까. 고작 그런 것밖에 하지 못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이런 말을 써놓는 것은 혹시라도 이런 마음이라도 애쓰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나의 헛헛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이기적인 욕심이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될지, 위안이 되기는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욕심이니, 당신은 "이 녀석 끝까지 욕심부리네"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의 따듯한 정도만 슬쩍 묻혀가면 좋겠다. "따듯하긴 하네"라면서. 어차피 내 욕심이니 욕심까지 다 가져가지는 말라는 얘기다. 얘기를 하는 김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당신이 따듯한 마음을 듬뿍 받으면 좋겠다. 예쁜 말과 사랑을 아주 많이 받아서 내가 쓴 이 <거짓의 말> 시리즈에서 나오는 거짓의 마음은 눈곱만큼도 공감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저 '이 거짓은 왜 이렇게 모났을까'하면서 안쓰러워만 했으면 좋겠다. 홀로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저 녀석 나를 닮았다'며 서글퍼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곁에 피어있는 다른 꽃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혼자 있는 꽃 따위 눈에 차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이것이 나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저따위 모르는 척하세요, 거짓이니까요!" 하면서 스스로 내동댕이 쳐 놓으려는 못된 심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니, 이것 참 거짓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의 말을 쓰면서 나의 이런 진실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계속 내가 왜 <거짓의 말>을 쓰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편에 이르러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전히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속 시원하고 그럴싸한 마무리를 들고 올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이 시리즈를 쓰면서 겨우겨우 이 진실에 도달한 참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짓의 말>을 성실하게 봐온 당신이 있다면 알 것이다. 거짓은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것을. 그러므로 아마 집요하게 내가 왜 거짓이어야 했고, 나의 말을 거짓의 말로 남겨야 했는지 파고들 것이다. 내가 이 마지막까지 와서 "당신이 따듯한 마음을 듬뿍 받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당신에게는 마음을 받으라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마도 나는 나밖에 몰라서, 내가 살아온 모양과 시간 안에서 내가 가진 마음만큼의 시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가지는 헛헛한 욕심의 중심에는 아무래도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혼자 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또 그런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그런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을 내가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너무 부족해서, 내게 너무 필요하고, 내가 너무 받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거짓의 말이라고 포장해서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거짓이라고 감추고 시치미를 떼도, 그 진실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일 테고, 애쓰고 지친 것들에게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나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겠다.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이 마음이 사랑받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던 것 아닐까. 거짓이나 말장난 같은 것으로 꾸며내야만 했던 나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말미에 와서야 이런 식의 고백을 털어놓으니, 또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붙여 무거운 마음을 내놓은 것 같아 그동안 읽어준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기껏 해봐야 거짓의 말인 것을 마지막까지 읽어준 당신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 차례 퇴고를 반복해서 업로드해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퇴고를 거치지 않고 올려 이 글이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고치고 고치다 보면 이 정도의 진실도 말하지 못할 것 같아 다듬지 못한 마음을 그대로 남겨 놓는 것을 용서하셔요. 언젠가 또 다른 거짓의 말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자연히 흐르고, 마음도 흐르며, 말은 마음을 닮는다고 하니 이 거짓의 말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게 될지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엔 거짓의 진실로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게 됩니다. 그런 때가 온다면 또 보러 올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