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닿았다

<거짓의 말> 9

by 김민주

작업을 하기 위해 카페에 왔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태블릿, 마우스, 키보드, 커피가 3/4 정도 남은 컵, 손목이 아파 풀어놓은 시계 같은 것들이 제각기 일정한 각을 맞춰 놓여 있다. 옆자리에는 함께 작업을 하러 온 친구가 나와 나란히 앉았고, 반대편에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둥글게 이어져 있는, 튼튼해 보이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반대편에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둥글게 이어져 있는, 튼튼해 보이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이 의자가 나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책상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 제가 손을 옆으로 뻗어 보겠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거예요. 이 친구는 옆자리에 앉아 있지만, 이 손을 기준 삼으면 그 반대편에는 이 친구가 있게 되겠죠? 자, 그럼 의자 두 개도 마찬가지다. 서로 옆에 놓여 있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두 의자는 반대편에 놓여 있게 된다. 반대편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기준을 무엇에 두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에게 그 기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따라 나와 다른 것들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를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반대편이 되기도 하고, 옆자리가 되기도, 나의 편에 있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구조를 <거짓의 말>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가 보려고 한다. 앞서 반대편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먼저 <거짓의 말>의 반대편을 생각해 본다. <거짓의 말>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실의 말? 진실된 마음? 거짓의 반대에는 진실이, 말의 반대에는 마음이 있을까? 다시 말해, 진실과 거짓은 서로 반대되는 것일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믿을 수 있나요? 무엇을 기준으로 절대적인 위치를 상정할 수 있죠?


거짓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다. '사실이 아닌 것 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다.' 기준이 '사실'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본다. 무엇부터 무엇까지 사실이라고 볼 것인지요? 사실이 뭔데요? 사실이 뭐긴요, 하면서 찾아온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데, 그럼 거짓은 집요하게 당신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또 묻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어디부터 어디까진데요?" 아마 당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이므로 이것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야겠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의 기준에 대해서 말이다. 무엇으로부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정의 내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 시리즈와 오늘의 글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앞서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함께 봐 왔으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의 기준, 그건 <거짓의 말>의 근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니까.


이 밀접한 관계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우리는 계속 <거짓의 말>에 집중해 왔다. 자연스럽게 '말'을 따라왔다. 그것이 거짓일지언정, 우리의 기준은 '거짓'과 '말'이었다. 그동안 거짓이 말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말과 마음 사이의 거리감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거짓이 한계를 느끼면서 절망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게 8화까지의 흐름이었다. 어쩌면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 예측할 수 있는 범위였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 시리즈의 전제가 '거짓'과 '말'이었기 때문이다. 기준을 정해놓고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그 태연한 과정 속에서 모두가 놓치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이 필시 생긴다. 제가 스스로 약삭빠르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 약삭빠른 태도로 모아 온 '말'의 아래에 가려진 것들을 이제 꺼낼 차례다.

말. 그 아래에는 분명하게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거짓이 계속 말에 담으려고 했던 '마음'이 그렇겠다. 그 과정에서 거짓은 '마음'을 '마아으음-'이라고 부른다든지, 마음과 닮은 것들을 묘사하거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적절한 문장들을 엮는 시도를 했다. 그러면 그것에 나의 마음이 담겼을까? 물론, '마음'이라고 적는 것과 '마아으음-'이라고 적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담겼을 것이고,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한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지, 그리고 그대로 온전하게 가닿을 수 있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럼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다 알면서 부질없는 시도를 해온 것이냐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고? 잠시 진정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진정하시라고 공백을 두 줄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의 아래에 있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말의 아래라는 표현이 맞을진 모르겠다. 어쩌면 말보다 훨씬 위에 있거나 동일 선상에 있을 수도 있다. 그 위치를 지금 분명히 하는 것은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두겠다. 이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로 있었던 일', 즉 사실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이 문장이 반감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직 기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아래의, 이를테면 마음 같은 것들이 어떻게 '사실'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의 근거를 무엇으로 둘 것인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오늘 이 글의 목적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보이지 않고, 말로 정의하기 힘들며, 흐르고, 사라지고, 변하는 것인데 무엇으로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우리 모두가 알잖아요?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오히려 얼마나 이상한가요? 그러니 나도 이상한 말을 해본다. 말에 담기지 않는 것들은 '감각 이상의 감각'으로 존재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린가 싶을 것이다. 감각이면 감각이지, 감각 이상의 감각은 무어냐고 말이다. 잘 생각해 보세요. 단지 감각과 말 같은 것으로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감각과 사고만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으시는 거예요?

이것을 시작으로 집요한 나의 본성을 발휘하여 당신을 못 살게 굴어 보겠다. 우리의 기준을 붙잡아 흔들 것이다. 거짓과 진실, 말과 마음, 닿음과 닿지 않음, 감각과 사고, 존재와 사실, 그 모든 것의 기준 말이다. 그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어떤 무언가'로서 단언할 수 있을까? 이것은 거짓일까? 사실과 다를까? 사실과 같다면 진실일까? 사실이라는 근거는? 당신의 감각이, 당신의 생각은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나는 정말 닿지 않았을까? 마음이 정말 닿을 수 있는 것인가? 실체가 없는데도? 그럼 마음과 다른 말들은 거짓의 말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마음과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 만약 이 시리즈의 제목이 <진실의 말>이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거짓의 집착적인 질문 세례에 당신은 혼란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당돌한 태도로 말을 퍼붓는 거짓의 얼굴 앞에 손을 휘두르면서 질문을 한차례 막아본다. 이어 당신이 묻는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당신이 당신은 거짓이라고 했고, 거짓의 말을 쓰고 있잖아요. 근데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요? 그러니까 뭘 믿으라는 건데요?"


"아직도 제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도, 진실처럼 구는 것도 믿지 마세요. 단지 당신을 믿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 그 이상의 감각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어요?"


거짓이 다시 차분하게 글을 이어 적어 내려 간다. 모든 것이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기준이 흔들린다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순간에 진실과 거짓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러니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실과 거짓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감각이 될 것이다.


"감각은 어떻게 그냥 믿어? 당신 말마따나 그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잖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존재하잖아요? 그걸 우리가 느끼고 알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내가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오는 걸 봐왔죠? 마음이 있다는 걸 당신이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면서 봐왔겠죠? 그럼 거꾸로 물어볼게요. 마음은 어떻게 믿어요? 있다고 확신해요? 그것과 뭐가 다르죠?"


"마음은."


당신은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노트북, 태블릿, 마우스, 키보드, 시계, 컵과 같다. 마음과 이것들이 다르다고 말할 것이라면 분명하고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만으로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나의 반대편에도 있다. 내가 어떤 것을 기준 삼느냐에 따라 친구의 위치가 바뀐다. 단지 그것만으로 이 친구를 인식할 것인가. 그렇게 달라지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그 친구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비약적인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궤변처럼 들릴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의심해 볼 만하지 않나요? 믿음의 근거가 뭔가요?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의 근거가 뭐예요? 명확하지 않다면, 흔들어 봐도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은 어느새 거짓의 옆자리에 앉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짓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치자 거짓이 당신을 향해 싱글벙글 웃어 보인다. 이어서 거짓이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당신은 어쩌지 못하고 거짓이 내민 손을 한참 바라본다. 잡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거짓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밝게 웃으면서 말한다.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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