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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Jul 27. 2018

지치는 것은 모든 걸 성가시게 만든다

나의 피로를 제외한 모든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회사를 다니면 매일 양갈래 길 위에 서게 된다.

하나는 야근, 다른 하나는 칼퇴(근). 누군가는 칼퇴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나의 그 길에는 떡하니 '접근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이 당당한 모양새로.


처음에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필요 없습니다, 온몸을 바쳐 일할 테니 뽑아만 주세요!'라고 외치던 혈기왕성한 신입 시절에는 분명 그랬다. 그 말이 얼마나 혹독한 미래를 불러올 지에 대해 알지 못했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여덟 시 출근, 열한 시 퇴근. 약 15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씻는 둥 마는 둥 하며 얼른 잠자리에 들기 바빴고, 아침에는 오분이라도 더 자려고 버티다가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주말은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온전히 잠자는데 투자했다. 압박과 긴장으로 가득 찬 하드코어 한 생활을 일 년 정도 지속하자, 피폐하다는 게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피폐한 건, '지치는 것'이다.


지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깨달았다. 이전의 나도 분명 지쳤던 순간이 있었을 테지만, 입사 전후의 지침은 확실히 달랐다. 이전에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좋아하는 영화와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드코어 회사생활로 지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책, 영화, 친구, 그 모든 즐겁고 행복한 단어마저도 성가실 뿐이었다. 가장 귀한 것을 단숨에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지친다’의 잔인한 의미를 그때 깨달았다.




원래의 나는 큰 노력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영화 보는 것을 즐겼다. 대체로 맥주, 조금 더 기분을 내고 싶다면 와인도 좋은 파트너였다. 가끔 괜찮은 레시피를 찾아서 직접 만든 음식을 곁들이기도 했다.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 두어 개를 사서 한 입 사이즈로 잘라 보울에 담고, 마트표 드레싱을 뿌리면 손쉽게 그럴듯한 안주가 만들어졌다. 가끔 글을 썼다. 일기가 아닌 글을 쓰면서, 주특기인 망상력을 폭발시켰다. 할리퀸 로맨스에서 밀란 쿤데라까지, 폭넓게 읽기도 했다. 답답할 때는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달렸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다리를 움직이고, 숨 쉬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머릿속에 가득하던 잡다한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은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특별하지 않은 것이 얼마든지 특별해졌다. 그런 일들에 마음을 쏟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지만, 회사가 내 삶에 들어오고 나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곳에서 받은 업무와 사람 관계에 대한 압박은 일상을 마비시켰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아무리 늦게 퇴근하더라도, 행복을 찾겠다며 영화를 틀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러다 늦게 자면, 내일 출근은 어떡하려고?'


더 확실하게 깨달았던 순간은 어느 날 일기를 쓰던 중이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나 왜 이렇게 우울한 얘기만 늘어놓고 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뒤적여본 입사 이후의 일기장에는 온갖 우울과 회의가 가득해서 마치 내가 알던 나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기분이었다. 감동받은 영화, 인상 깊은 글귀, 보고 싶은 전시회, 가고 싶은 여행지로 물들었던 옛날 일기의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일기 쓰는 것마저도 비즈니스 같았다. 기록을 위한 기록. 나는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지치는 것은 모든 걸 성가시게 만든다.

비단 영화나 책 같은 취미가 아니라 가족, 친구, 애인에게도 그렇다. 퇴근 후 멍하니 누워있을 때 울리는 엄마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다고 한 마디 하는 것이 힘들었다. 몇 개월 만에 보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도 하루 전에 파투를 놓았다. 주말 내내 커튼을 친 방 안에서 방전된 나를 보듬고 싶었다. 나의 피로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저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다. 내게 소중한 것들과 그렇게 거리를 두게 만들었던 건, 아무래도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이러다가는 내가 정말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거울 속에 비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이, 그런 것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굴레를 벗어나야만 했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이 말은 인생의 진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쌓이면서 압박과 불안은 점차 잦아들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업무에 익숙해졌고, 사람 관계에 의연해졌다. 일부러 버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이렇게 되었다. 수백 번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면서 지내다 보니, 주변 상황이 점차 나아졌다는 게 더 정확하다. 어찌 되었든, 그 또한 다 지나가긴 했다.


나를 거의 잃어버릴 뻔했던 지침의 깊은 웅덩이에 빠졌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최근에는 나에게 집중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이전의 나를 알던 동료가 '네가?'라고 말할 정도로 단호하게 내 것이 아닌 업무를 끊어내기도 하고, 퇴근 후 약속도 미루지 않는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백화점을 가고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일상의 건강한 욕망을 거침없이 충족한다. 이런 행위를 통한 만족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한다.


나는 지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소중한 것을 귀하게 여길 힘을 얻기 위해서.

내일도 열심히 나를 위한 뭔가를 하며 충분한 만족을 느낄 것이다.



# 타이틀 배경 출처 : artist 'ivector' @Adobe st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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