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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pr 08. 2018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꿈이 된다

꿈에서만이라도 행복하면 좋겠는데...


아침부터 기분이 뒤숭숭했다.

소중한 주말을 활기차게 보내고 싶어서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밤 10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론은 망했다. 새벽 내내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꿈만 세 번 정도 꾼 것 같다. 꿈을 반복해서 꾸기도 했고, 그 내용이 묘하게 현실적이라 깨어난 후에도 한참 동안 찝찝했다.           




처음으로 기억나는 꿈은 주말 출근에 대한 내용이었다.

팀에 이슈가 발생했다. 굳이 해결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지만, 만 분의 일의 확률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문제 예방을 위해서는 진행 상황을 계속 확인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주말 출근이 필요했다. “굳이 출근 안 해도 돼.”라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팀원들도 다들 출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좋아, 이번 주말에는 절대 12시 전에 안 일어나야지!’하며 늦게 잠이 들었다.


현실이었더라도 출근은 안 했을 것이고, 그게 절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꿈에서는, 조금 달랐다. 꿈속의 토요일 아침, 붕붕거리는 카톡 알림에 눈을 떴다. 안경을 끼지 않은 시야가 흐릿해서 눈앞에 휴대폰을 바짝 붙여 카톡을 읽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은 팀원들의 사진과 함께 [버들송이만 안 왔네?]라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도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밧줄로 꽁꽁 묶인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수술 전 마취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꼬르륵 다시 잠들었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휴대폰을 더듬어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을 확인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래, 꿈이구나.




두 번째 꿈은 매우 으스스했다.

아무래도 전날 밤에 읽었던 공포영화 ‘곤지암’의 후기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나는 어떤 아파트 단지의 반상회에 참석했다. 내 집은 아니고, 대학교 선배의 집인데 이상하게 내가 대신 반상회에 와 있었다. 그 날의 주제는 최근에 단지 내에 도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창문이 갑자기 빠르게 열렸다가 닫히고, 단지 내 공터에서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자주 목격된다는 것이다. 다들 아파트에 귀신이 들렸다고 수군거렸다.

   

알고 보니, 대학교 선배의 아이가(현실에서 그 선배는 결혼을 안 했고, 당연히 아이도 없다) 악마의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 그 모든 일을 벌인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꿈의 마지막은, “내가 말하지 말랬지?”라며 나를 보고 씩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그 웃음을 보며 팔다리가 얼어붙는 두 번째 가위에 눌렸고, 애써 발차기를 하며 깨어났다. 이불이 저만치 발아래 떨어져 있었다. 시간도 정확히 기억난다. 새벽 5시 23분이었다.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까지 조금 깨어 있다가, 안대를 쓰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다음 꿈에서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중간고사를 준비 중이었다. 시험이 일주일 뒤인데, 나는 시험 범위도 모르고 있었다. 왜 그 시험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자꾸 ‘공부해야 해, 시험 망치려고 작정했어!’ 같은 윽박지르는 말을 하는 바람에 눈물도 찔끔 흘렸던 거 같다. 그렇게 문제집을 펼치고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에 깨어났다. 아침 9시 7분. 주말이 시작됐다.


이런 꿈은 꾸고 싶지 않다. (Toni Sanchez, Nobody)


그렇게 바쁘게 꿈을 꿨는데 아침이 개운할 리 없다. 거의 12시간을 잠들었지만, 쉬지 않고 꿈꾸느라 에너지를 평소보다 훨씬 많이 소모했다. 일어나서도 한 시간을 침대에 누워 멍하니 보냈다.


원래 계획은 집 청소를 깨끗이 한 다음, 목욕하고, 오랜만에 주말에 화장도 한 뒤 염색과 영양 케어를 위해 미용실을 가려했다. 나간 김에 카페에서 넷플릭스로 드라마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서점도 잠깐 들르고. 아주 많은 일을 생각했지만, 영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바깥 날씨도 우중충했다. 오늘은 집에서 뒤숭숭한 마음을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꿈은 반대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스트레스에 관해서는 전자가 옳을 것이다. 신입 시절에 손목이 잘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해몽을 검색해보니, 손가락이 잘리는 꿈은 회사에서 사람 간에 갈등이 생기는 징조라고 했다. 그때 나는 팀장님과 매우 불편한 관계였다. 갈등이 깊으니 손가락이 손목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번 꿈도 자연스레 회사와 엮게 되었다.      


짚이는 게 한둘이 아녔다. 손가락 뿐만 아니라 발가락까지 하나씩 꼽으며 나열할 수 있었지만,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일들이라 잊으려 노력했다.


다만, 이번 주에 있었던 외부 미팅 건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맡은 업무에서 연중 가장 공들여야 하는 프로젝트 건으로 다른 회사와 미팅이 있었다. 프로젝트의 물고를 트는 자리였다. 앞으로 반년 이상 함께 일할 상대이기에 잘 보이면서도, 원하는 바는 정확히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그 쪽의 담당은 이런 업무에 익숙한 10년차 베테랑이었고, 나는 3년 차였다.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마주 앉았다.      


상대는 능수능란하게 앞으로 진행될 부분과 그들이 줄 수 있는 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제 다음은 우리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이번 프로젝트에 다들 관심이 높다, 함께 진행한다면 이런저런 점에서 이점이 있으실거다, 까지 말했을 때, 상대방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그건 당연히 하셔야 하는 거고요.”      


아.... 그럴 수 있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이, 곧이어 불쾌함이 느껴졌다. 하하, 하고 웃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미팅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모두 만족스러운 내용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분의 말은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릿속을 빙빙 돌고 있다. 그때, 불쾌한 티를 냈어야 했나? 아니야, 그럼 안 되지. 그럼 내 기분은? 아, 머리 아프다.            




내친김에 주말 내내 집에서만 보내기로 하고, 필요한 먹을거리를 사러 잠깐 외출했다.

토요일 오후의 마트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들도 모두 회사에 다니고 있겠지. 일주일 동안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였을 것이다. 혹시, 그들 중 누군가도 지난밤 이상한 꿈들로 뒤척이진 않았을까?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주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자연스레 풀어놓아야 한다. 어떤 일이 나를 괴롭게 했는지 털어놓는 건 처음엔 홀가분하지만, 점차 말하는 행위마저도 그저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복잡한 머릿속은 먹고 즐기는 단순한 여가로 정화해야 한다.


카트를 끌고 마트를 돌아다니면서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물음이 반복됐다. 불쾌한 티를 냈어야 했나?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 사람이 무례했는걸? 그래도 미팅은 잘 마무리했잖아. 하하, 하고 영혼없이 웃던 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럴 때는 정말 답이 없다. 그저 맥주와 군것질거리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틀어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는 데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아주 단순한 여가가 필요하다.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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