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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Jun 17. 2018

이제는 더 이상 그만 죄송하고 싶다

나, 그리고 그토록 혹사당한 자존감을 위해


지난 3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단연 "죄송합니다" 일 것이다.


회사에서 하루에 약 세네 번 정도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면, 나는 대략 2,500번 정도의 죄송한 일이 있었다. 입사 전까지는 평생 동안 죄송한 일이 손가락 발가락을 합치면 충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건지...


상황에 따라 그 말의 무게감은 다르지만, 모든 이슈 해결의 시작은 누군가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한다. 죄송한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나서서 이슈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나서는 순간 모든 뒤처리, 죄송하다는 말 까지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그 정도 한 마디쯤이야, 전혀 어렵지 않다.


진심으로 말 한마디는 어렵지 않다고, 입사 이후로 쭉 생각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조금 불합리할 정도로 내게 사과를 요구하는 순간에도, 이 또한 '담당의 책임감'이라고 여기며 조각난 자존감을 애써 이어 붙였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겪다 보니, (씁쓸하게도) 이제는 면역이 되어서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상하지도 않는다.  




업무 특성상, 여러 유관부서의 중간에서 업무를 중재하고 조율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원만한 관계가 아주 중요한 역할이기도 해서, 웬만하면 업무를 강요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대체로 나이스 한 사람들이 많지만, 어딜 가나 있다. '강약약강'(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한) 타입의 사람이.

  

그런 타입의 사람을 (연차이든 나이든) 윗사람으로 만나게 되면 일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그들은 스스로에 비해 상대적 '약'으로 판단되는 사람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비록 본인의 실수로 비롯된 일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앞서 말했듯, 사과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지지 않을 거라며 물고 늘어지는 사냥개 타입이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나는 투쟁의식 충만한 사냥개와는 정반대인 프로펠러 꼬리를 가진 유순한 애완견이기 때문에, 강약약강을 상대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끈따끈한 일화가 있다. 프로모션에 필요한 판촉이 생산업체 내부 이슈로 납품이 안되었고, 프로모션이 깨질까 봐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님, 이거 꼭 들어와야 해요. 업체랑 얘기해서 납품하라고 챙겨주세요."라고 하자, 그쪽 담당은 "아니, 나라고 넣지 말라고 하고 싶겠어요?"하며  성가심을 표현했다. 어떻게 납품을 맞추기는 했지만, 아뿔싸, 프로모션 바로 전 날 윗선의 의사결정으로 일정이 변경되어 열심히 재촉했던 판촉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 "그렇게 챙기라고 해놓고 일정을 바꿔요? 나한테 일부러 그런 거예요? 할 말 없어요?" 내가 일정을 바꾼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은 꾸역꾸역 삼키며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되새긴다. 그래, 말 한마디면 싼 값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번만큼은 절대 죄송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드라마틱한 절정의 순간은 아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하던 중에, 누군가 사소한 클레임을 걸어올 때,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할 수도 있다. 매일 하던 것처럼 영혼은 저기 멀리 두고 "앗 죄송해요"라는 말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가끔은 그 말이 턱! 하고 목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 


면역이 충분히 되었지만, 그렇다고 철옹성 같아진 것은 아니었다. 불합리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하나씩 실금이 그어진다. 그 금이 점차 쌓이고 쌓여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된 자존감은 아주 사소한 동요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크기로 흩어진다.


일보직전의 그 상태, 바로 그때가 '절대 죄송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내 자존감이 '나는 이미 너무 지쳤어. 이제 더 이상 그만 죄송하고 싶어.' 라며 경고음을 울릴 때는 그 어떤 일에도 죄송하고 싶지 않아진다. 이성과 감성은 따로 논다고 했던가. 머리로는 '쉽게 가자, 사과하고 치우' 싶지만, 혹사당한 불쌍한 내 자존감을 생각하면 목구멍에서 그 말이 턱! 하고 걸린다.


죄송하다는 말 대신, "정말 왜 그렇게 됐을까요 ㅠㅠ"와 같은 그들의 예상 답변에 없는 말을 던지면 강약약강은 당황한다. 그중 조금 나이스 한 이들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며 발톱을 감춘다. 하지만, 정말 센 강약약강은 "아니,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어떡할 거야?"하며 다시 공격을 날린다.


강약약강이 뭐라고 하든 말든, 일단 한 번 쳐내고 나면 대응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 "네네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와 같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일단 일은 해야 하니 확인하겠다'로 마무리하면 아주 상쾌한 기분이 된다.




확실히 내 실수가 아니라면 죄송하다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바스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내 자존감을 몇 번 마주하고 난 뒤, 하루가 멀다 하고 혹사당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내 자존감이니 내가 가장 소중히 다뤄주기로 했다. 죄송하다는 말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남발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내 실수가 확실한 건 죄송하게, 모호한 건 모호하게 (혹은 잘못이 명확한 누군가에게) 넘겨버리자.


이제는 정말 그만 좀 죄송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 그리고 혹사당한 나의 자존감을 위해.



# 타이틀 배경 출처: studiostoks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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