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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ug 06. 2018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다들 퇴사를 바라며 회사를 다니지 않나요?


"나중에 뭐하고 살고 싶어?"

얼마 전, 대학 동아리 카톡방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Y언니는 카페를 차릴 것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귀농을 꿈꾸고,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다들 취업을 해서 각기 다른 업종에서 성실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바라는 것은 같다. 퇴사를 하는 것. 말하자면, 지금 다니는 직장은 퇴사 이후의 삶을 위해 머무는 곳이다.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 머무는 아이러니가 우리 삶에 벌어지고 있다.




회사원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회사에 소속되는 순간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써, 소득을 가지고 소비를 하면서 경제를 굴러가게 만드는 주체가 된다. 동시에 나의 소득은 생계를 꾸려가는 소중한 밑천이다. 20살, 법적으로 엄연한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했다면, 회사원이 되면서는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것이다. 독립의 자유와 더불어, 소득세, 지방소득세, 고용보험료, 국가연금보험료 등과 같이 월급에서 차감되는 금전적인 의무가 더해진다.


첫 월급을 받고 급여명세서를 보면서 '세금이 참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더해진 의무는 여러 가지 '~세' 나 '~료'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바로 그들을 부담하는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이 정말 묘했다. 그때 비로소 회사원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 다른 실감의 순간은 나는 더 이상 용돈의 수혜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휴가를 위한 비행기 티켓을 위해 부모님께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 회화 학원 수강료를 위해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을 벌려선 안된다. 나는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고, 고로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부모님의 생신이나 군대를 간 동생이 휴가를 나왔을 때, 얼마 정도는 그들의 계좌로 이체할 수 있어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나에게 있는 셈이다.




그런 나는 어느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어쩌면 아주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을지 모르는 꿈을 이루고 싶어서,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계산에 밝은 회사원으로써 나는 자연스레 머리를 굴린다. 학원비는 월에 50만 원, 적어도 6개월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300만 원이 필요하다. 6개월 동안 백수일 것이고, 재취업까지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생활비와 여유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 사이에는 전세대출이자나 통신 요금, 공과금 등 필수적인 비용도 필요하다. 퇴사 후에는 미루고 미뤘던 유럽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싶기에 500만 원 정도 더 필요하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얼마가 있어야 하나. 얼마가 있어야 퇴사를 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회사원이 된다는 건, 돈에 얽매인 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에게 부여되는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지불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하물며, 회사를 떠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아니기에 퇴사 후의 삶을 위해서는 회사가 주는 월급이 필요하다. 퇴사를 위해 회사원으로써 묵묵히 일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우리 삶에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성실히 업무에 임하고 있다.

꿈이나 용기의 부재가 아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말하고 싶다.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정한 회사원이 된 것이라고. 주변에서 습관처럼 '퇴사할 거야!'를 내뱉던 누군가가 갑자기 진중한 동료가 되었다면, 아마 그는 저 멀리 도약하기 위한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Cover image: painted by Alexander Pokusay @Adobe stocks

# 타이틀은 김애란 작가의 '노크하지 않는 집'의 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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