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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17. 2022

푸우의 비극

푸우는 잘못이 없다

*2020년 한 트위터로부터 착안한 소설입니다.


가게 안 TV에서 디즈니랜드 홍보 영상이 흘러나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영상을 보다가 순간 울컥하였지만 분명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영상이 다 끝날 때까지 내 모습이라곤 귀 한 쪽조차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참을 새도 없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나왔고, 결국에는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내 친구 피글렛과 티거, 심지어는 내 라이벌이었던 미키 마우스까지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오해할까봐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타고나길 긍정적인 성격이라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다. 또 나에겐 행복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이제는 그 모든게 아득한 옛날 일 같이 느껴지지만.


나는  친구들 중에서도 꽤나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노란색 빨간색 , 귀여운 얼굴에 긍정적인 성격까지. 판매 순위를 매기면  5 안에는 안정적으로 들었다. 어린 아이들은 나를 보면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데려가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졸라대곤 했다. 그런데, 저기 어디  나라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며  인생의 비극이 시작됐다.


내가 이 나라의 지도자를 닮았다니, 처음에는 약간 들떴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혹시 이 나라의 마스코트가 되는 건 아닐까? 지금보다 더 사랑받으면 어떡하지? 내가 베이징에 입성하는건가? 중국의 화이트 하우스는 어떤 모습일까? 부푼 꿈에 설레여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곧 알게 됐다. 내가 나오는 영화들에는 죄다 금지령이 내려고, 미국에서 개봉한 내 애니메이션은 중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여기에 더해 디즈니랜드에서도 내 얼굴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기까지만해도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가게에서 나를 사려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리기 시작한 거다. 천진한 얼굴으로 “왜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푸우는.. 가지고만 있어도 위험할 수 있어.”

나는 한순간에 인기 톱 5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폭탄이 되버린거다.


갈수록 내 머리에는 먼지가 쌓여갔고 자리도 창가에서 가게 제일 안쪽으로 옮겨졌다.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됐는데 신경도 안 써주는구나... 엉덩이가 다 닳아서 없어지는 건 아닐까... 이러다 솜이 다 빠져 너덜너덜해진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건 아닐까..  내 미래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들었다.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생각들이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디즈니랜드 홍보 영상에서까지 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자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던 거다. 아무리 시 주석을 닮았다는 얘기가 돌더라도, 이건 정말 너무한 처사 아닌가.




그렇게 나는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하루하루를 애써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가게에 정말 오랜만에 노란 머리 여자아이가 한 명 찾아왔다. 몇 달 만에 본 미국 사람이었기에 우리의 온 관심이 그 아이에게로 쏠렸다.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웬일이래, 고향 사람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 여자아이는 인형을 하나 사려는 듯 가게를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여자아이는 그대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집어들었다! 나? 나를 고른거야? 내가 드디어 주인을 찾은 거야? 갑작스레 닥친 이 비극을 지나, 나에게도 희망이 찾아온거야? 그녀는 비행기를 탈 때에도 나를 품에 꼭 안고있었다. 이게 얼마만에 받아본 사랑인지... 너무나도 행복해서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진짜로 하늘을 떠다니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대륙을 건너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아주 큰 3층 저택이었다. 중국에 있었다면 이런 집은 구경도 못했을거다. 내 인생, 드디어 피어나는구나!


며칠 있어보니 그녀의 가족이 대충 파악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엄마, 몇 명의 형제들, 큰 개 찰리, 그리고 항상 바쁜 아버지. 이렇게였다. 그런데 그녀 아버지의 얼굴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언젠가 가게에 있는 TV에서 저 얼굴을 봤던 것 같은데.. 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이라기엔 그정도로 많이 본 것 같진 않았고, 코미디언이라기엔 그다지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튼 가족들과 꽤나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와는 영 데면데면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가.




어느 날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잔뜩 화가 난 채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늘 누군가의 욕을 하곤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잘 알아듣질 못했다.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또다시 잔뜩 화가 난 채로 집에 들어왔다. 유난히 화가 났는지 그날따라 굉장히 큰 소리로 욕을 해댔는데, 한 문장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Fucking  China! 앗, 나도 그 나라에 쌓인 것이 많았기에 그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공감이 갔다. 그에게 어떻게든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는 심정으로, 내 따스한 눈빛을 그에게로 보냈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씩씩대던 그가 나에게로 얼굴을 돌렸고,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눈빛에 역시 위로를 받은건가? 싶었던 찰나, 갑자기 그가 나를 집어들더니 찰리에게로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한창 보이는거면 무엇이든지 물어뜯던 찰리는 늘 나를 노리고 있었기에, 나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찰리에게? 나를 왜? 그는 찰리에게 외쳤다. 

Hey! Charlie! Bite this!


찰리는 나를 신나게 물어뜯었다. 나는 처량하게 뜯기면서도 당최 이게 무슨 일인지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중, 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가 갑작스레 생각나기 시작했다. 분명 그와 시진핑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었다. 악수도 하고.. 그의 이름이.. 아.. 마이클? 비슷했는데... 찰리가 계속해서 내 온 몸을 잘근잘근 씹어대서 더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마이클은 그런 나와 찰리를 열심히 찍어대기만 했다. 나의 귀가 찰리에 의해 뜯겨져 나가던 순간, ‘트윗!’ 그녀의 아버지 핸드폰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 다음으로는 모든 게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소리도, 내 눈에 보이는 찰리도... 그 모든 게... 내가 뭘 잘못한거지? 디즈니에 편지라도 보내 성형이라도 했어야 하는걸까? 난 1921년부터 이 얼굴이었는데? 나에게 대체 다들 왜 이러는거야. 도대체... 나에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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