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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성 Apr 10. 2018

당연한 것의 위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하라."

- 니체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 중-     


  우리는 편안함을 가장한 안일함으로 우리의 의지와 생각할 권리를 쉽게 포기한다. ‘당연한 것’은 이중 가장 위험하고 불안하며 간단한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기 얼마 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학생들에게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나 또한 이것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이 불문율이 확산돼 어떤 질문이든 막아버리는 통념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결국 대부분의 강의는 교수와 학생의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주입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는 곧 학생의 질문뿐 아니라 발언의 권리마저 실추시켰다. 우리는 이 ‘질문’에 질문할 필요가 있겠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위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을 처음 본 이들은 ‘파이프’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밑에 적혀있는 문장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모순이 아니다. 이 그림은 파이프의 재현이고 그 밑에 적혀있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도 그려진 그림이다. 아무리 화가가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그것은 재현일 뿐 실제적 기능은 전혀 할 수 없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의 고정관념이 깨지게 강요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서적에 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인용한다. 미셸 푸코는 철학을 ‘영원한 비판’으로 보았다. 그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여러 이념적 전제들의 은폐된 이면과 계보를 현미경처럼 자세하게 드러내 보이고 그것에 질문을 던졌다. 또 그러한 전제들에 귀속됐던 정당성과 보편타당성의 허구적 성격을 폭로했다. ‘당연한 것’에는 논리나 경험, 이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아니 ‘당연한 것’은 ‘왜 당연하지?’라는 질문조차 소거시켜버리곤 한다. 그러나 미셸 푸코는 그것의 위험성을 알고 질문하고 비판했다.

  

  서두에 말했듯 우리는 법보다 무서운 통념과 관례로 정의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미셸 푸코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우리는 제2,3의 미셸 푸코를 보호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이라는 권위로 묵살시켜버렸을 수도 있겠다. 이제는 우리가 파이프 ‘그림’을 유심히 살펴볼 때인 듯싶다.     


201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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