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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JOO Dec 05. 2019

디지털 아이덴터티의 가치

사물 인터넷 시대의 로그인

10년째 집주소도, 회사도, 자동차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바꾸었고 싸이월드, 네이버 검색, 다음지도, 네이트온도 사용하지 않거나 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20년 넘게 사용하는 것은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이다. 10년간 변치 않았던 이메일 주소는 명함에 아로 새겨져 있고, 10년 전부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해온다. 그런 이메일 주소를 바꿀 수가 없다.


이메일이 오래도록 살아 남은 이유는 그 이메일 주소를 타인이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내가 바꾸면 그만이지만, 나를 아는 그들의 기록을 내가 다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또한, 그 이메일 주소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도 기억한다. 회원 가입 시에 기본으로 물어보고 기록하는 것이 이메일 주소다. 그렇기에 이메일 주소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렇게 남들이 기억하는 내 디지털 아이덴터티는 이메일 주소 외에 휴대폰 번호가 있다. 또한, 모바일용 앱들은 대부분 휴대폰 번호로 회원가입을 한다. 스마트폰 메신저의 등장은 이메일의 사용 빈도를 떨어뜨린 것 뿐 아니라 디지털 아이덴터티로 이메일이 가진 지배력을 퇴색시켰다. 이제 이메일 주소가 아닌 휴대폰 번호가 온라인 상의 각종 계정에 기록되고, 메시지도 이메일 주소가 아닌 휴대폰 번호와 연동된 메신저로 보내어진다. 굳이 상대는 이메일 주소를 기억하지 않아도 메신저에 자동으로 뜬 친구 목록을 선택해서 보내면 된다. 외우기도 심지어 타이핑하기도 어려운 주소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이메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메일 주소는 명함에 기록되고 절대 바뀌지 않을 믿음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이메일 아이덴터티조차 점령하기 위해 카카오는 2019년 11월에 메신저 내에 이메일 서비스를 런칭했다. 기존의 이메일과 달리 웹이나 이메일 앱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카카오톡 메신저 내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앞으로 확장해가겠지만 그만큼 이메일 주소가 갖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보니 휴대폰 번호와 함께 이메일 주소를 주요 디지털 아이덴터티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합된 아이덴터티는 이미 페이스북과 구글이 가지고 있다. 지메일 계정을 이용해 구글의 모든 서비스 즉 캘린더, 행아웃, 듀오, 구글밋 등 더 나아가 외부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지메일 주소만 알면 메일을 넘어 전화 통화와 메신저 그리고 서비스 사용이 가능하다. 페이스북 역시 페이스북 아이디를 이용해서 메신저와 인스타그램 등의 다양한 페이스북 내부, 외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친구 목록을 통해서 그들과 연결할 수 있다. 더 이상 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디지털 아이덴터티의 장악을 위한 경쟁이 커져가고 있다. 디지털에 로그인하기 위한 계정을 지배하면 이메일 주소가 그랬던 것처럼 사용자들에게 잊혀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한, 그 계정을 중심으로 모든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들을 연결할 수 있어 그 계정 사용자에 대한 다양한 로그 데이터를 수집해 서비스 개선이나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 메일, SNS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넘어 스마트워치, 스마트폰 그리고 집 대문과 가전기기, 자동차 등의 하드웨어에 이어 은행과 백화점, 스타벅스 등의 오프라인 거점에 로그인할 때 이 아이덴터티를 이용하게 하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장을 둘러싼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애플와치는 그런 훌륭한 아이덴터티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애플 제품들을 사용할 때 아이디, 암호를 키보드로 입력하거나 지문이나 얼굴을 드리밀지 않고 손목에 찬 애플와치가 인증 수단으로 사용되면 훨씬 인증의 속도는 빨라진다. 늘 손목에 차고 있기에 이것만큼 신뢰할 수 있는 ‘나’임을 보증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애플와치를 차고 맥북, 아이맥을 켜면 별도의 인증 확인창이 뜨지도 않고 바로 로그인이 된다. 애플와치를 차고 자동차 문을 열고, 집 현관 문을 열고, ATM기에서 현금을 뽑고, 편의점에서 결제를 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 곳곳에서 훌륭한 아이덴터티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위챗, 카카오가 메신저의 로그인 아이디를 기반으로 각종 앱 연동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AI Assistant를 활용해 각종 전자기기 그리고 금융 서비스의 아이덴터티를 통합하고 있다. 그렇게 카카오 계정으로 연결 가능한 서비스들이 늘어가면서 카카오 플랫폼에 쌓이게 되는 로그 데이터는 카카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 시장을 둘러싼 전쟁에서 카카오, 네이버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기업과 통신사인 SKT와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경쟁하고 있다.


5년이 지나도 여전히 디지털 주민등록증의 역할을 할 계정이 어느 회사의 것이 될지 앞으로 지켜보자. 거기에 새로운 사업 기회와 혁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deep fake 등의 문제로 인해 디지털 저작물과 생산물에 대해 본인임을 인증하는 디지털 인장에 대한 필요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인장은 디지털 아이덴터티와 연계해서 내가 작성한, 만든 그리고 내가 출연한 콘텐츠들에 대한 내역 확인과 관리의 기능도 통합되어 제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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