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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Apr 06. 2020

<아무튼, 떡볶이> 요조

<아무튼, 떡볶이> / 요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저번에 읽은 <아무튼, 망원동>에 이어 두 번째로 아무튼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제목은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떡볶이>에 실린 글에 대해 설명하자면 '아무튼 떡볶이에 관한 글이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부모님과의 희한한 외식 이야기나 부산 여행, 혹은 한가로운 동네 마실기로 시작한 글은 요상한 루트를 통해 떡볶이로 아무튼간에 도달하고 마는데 그 희한하고 신기한 루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러니 <아무튼, 떡볶이>라는 제목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글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아무튼 각설하고, 이 책은 가수이자 책방 주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작가인 요조가 떡볶이라는 음식과 얽힌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 생각들을 짧은 글들로 풀어낸 책이다. 몇몇 글은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떡볶이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야?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떡볶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책에 실린 글들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저자의 떡볶이에 관한 애정이다. 떡볶이가 등장할 때마다 애정을 듬뿍 담아 그 맛과 자태와 특징과 색과 식감과 그 외의 모든 요소들을 조목조목 묘사하는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좋아한다는 어슷 썰지 않은, 동그랗게 썰린 밀떡이 떡볶이 양념에 푹 절여진 채 눈 앞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듯하다.(덕분에 나는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떡볶이를 책을 읽는 동안 두 번이나 먹었다. 책의 중간쯤에 나오는 <소림사를 향해 걸었다>라는 글을 읽고 자정이 넘어가는 한밤중에 한 번,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한 번.)


이 책은 떡볶이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건넨다. 비건 떡볶이에서 출발해 동물 보호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고 단골 떡볶이집에서 시작해 주변인에 대한 관심, 도시화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변하기도 하며 맛없으리라고 지레 무시했던 떡볶이집에서 겪은 완벽한 떡볶이에 관한 일화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일침이 되어 양심을 푹 찌르기도 한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얇은 책이 던지는 질문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은 채 떡볶이를 먹으며 고민했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싶은 걸 선택할 권리가 있지. 그런데 왜 비건들은 누군가와 식사를 할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할까? 동물들에 대한 폭력적인 사육 방식과 인간의 편익 추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걸까? 동물권과 인간의 편익을 함께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매주 가는 식당의 아주머니는 몇 살인지 알고 있나? 고독사와 같은 안타까운 일들을 막으려면 주변에 조금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네. 간판으로 떡볶이 맛을 판단하는 것처럼 인간도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는 세상이야. 어떻게 하면 외모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지? 아니지, 나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나?'


떡볶이는 맛있었고 머릿속은 복잡했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떡볶이 그릇을 싹싹 비우고 뚜껑을 덮으며 <아무튼, 떡볶이>가 내게 건넨 고민거리들을 머리 한 구석에 저장해놓고 천천히, 긴 시간 동안, 어쩌면 몇십 년 뒤까지도 고민해보기로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에는 문젯거리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문젯거리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지만 느끼지는 못한다.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계란들이 마트로 배달되기 위해서 그만큼의 수많은 닭들이 몸을 돌리지조차 못 하는 닭장 속에서 알 낳는 기계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누군가를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계란을 늘 마트에 쌓여 있고, 채식주의자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의 외모를 가장 먼저 보게 되므로 우리는 그 잘못된 문젯거리들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다. 일상이 늘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볍게 그러나 잘못된 일상을 인지할 수 있는 정도의 딱 적당한 세기로 질문을 던진다.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매콤 달콤한 음식, 떡볶이로 유혹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떡볶이라는 음식에서 시작해 일상의 문제들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떡볶이가 땡기는 어떤 날,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맵고도 달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그 일상의 문젯거리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바로 해결되는 문젯거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떡볶이는 맛있을 테니까.


책 속 한 문장


아마도 나에게 있어 이 책의 최고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 난 당신의 바로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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