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다. 잊기 좋은 이름. 잊기 좋은 이름. 혼자 입 안에서 제목을 이리저리 굴려보다 그 어감에 매료되어 책을 집어 들었다. 잊기, 좋은, 이름. 단정히 정돈된 두 글자 단어 세 개.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제목을 입 밖으로 꺼내보면 리듬이 살아서 움직인다. 무엇보다 김애란이라는 작가와 어울린다. 1부는 재미있고 , 2부는 신기하고, 3부는 슬프다.
잊기 좋은 이름은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1부부터 이야기해보자면 김애란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등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작가의 삶을 몰래 엿본 것 같아 재미있었고 한편으로는 그 삶에 공감했다. 대산대학문학상의 수상 소감을 말할 때 한껏 멋을 부렸다고 담담히 인정하는 글도, 학창 시절 한 남자아이와 당시에는 그런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썸을 탔던 과정을 보여주는 글도, 어머니 아버지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딸이 쓴 글도 다 어찌 보면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부모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친구, 직장 동료, 친척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 글들이 김애란 작가의 담담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문체와 어우러지고 평범한 이야기가 특별해진다.
2부에서는 자신의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박완서, 조연호. 총 다섯 명의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이게 또 오래된 야사를 듣는 것처럼 신기하다. 사실 작가라는 직업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 않는가. 김애란 작가가 자신의 친한 동료이자 친구들에 대해 느낀 감정들과 소소한 일화들을 써 내려간 글을 보고 있자면 이 작가가 이런 사람이었어? 글이랑 완전 다르다,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이 사람 만나 보면 진짜 재밌을 것 같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가 이 사람들을 정말 마음으로 아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나까지 가슴속이 따뜻해진다.
3부는 너무 슬프다. 슬프다기보다 아프다고 해야 할까. 눈물이 터져 나오진 않지만 가슴 한구석이 조여와 아픈 기분. 몇 년간 꾹꾹 눌린 눈물이 단단히 굳어 눈물길이 중간에 턱 막혀버린 기분. 그런 기분이 든다. 1부, 2부를 미소 지으며 읽게 만들어놓고 이런 3부라니.
3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동일본 대지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아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분노의 기폭제였고 누군가에게는 체념과 포기의 시작이었던, 이제는 오래되어 점점 잊혀 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영원히 그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너라도 나오라며 애타게 부르고, 누군가는 언제까지 그 일을 이야기할 거냐며 화를 내고, 누군가는 아예 입을 닫는다. 그 수많은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작가는 말한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이름을 잊을 수도 있고, 다시 떠올릴 수도 있고, 그러다 자책할 수도 있고, 다시 잊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도, 잊기 좋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