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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May 17. 2020

아프리카의 물가는 왜 유럽보다 비쌀까?

한 끼 식사가 웨이터 월급과 동일해버리는 수준


네덜란드 병



"알리슨! 아비장은 왜 이렇게 물가가 비싸?"


아비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었다. 정말로 의문이었다. 도대체 아비장은 왜 이렇게 비싼지!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가 여기보다 부유하지만 이렇게 비싸지 않다. 도대체 왜일까?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기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자란 아주 현지 사정에 밝은 친구다.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가 답했다.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천연자원 때문인 거 같아."


"네덜란드 병 말하는 거야?"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은 주로 자원 부국이 자원의 수출로 인해 일시적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지만 결국 물가와 통화 가치상승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이 쇠퇴해 결국 경제 침체를 겪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원의 저주라고도 부른다.


음. 그도 그렇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석유,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다이아몬드, 금, 복사이트(알루미늄 원광)가 많이 난다. 코트디부아르도 과거 다이아몬드 생산으로 내전도 겪었고, 지금은 카카오(초콜렛의 원료) 전 세계 생산량의 41%를 공급한다. 이는 코트디부아르 수출의 40%가 넘고, GDP의 10%에 달한다. 50년대 코트디부아르는 글로벌 카카오 가격 폭등으로 소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달콤한 성장에는 부작용도 있는 법. 한 가지 작물/자원에 의존도가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산업에 대한 발전과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베네수엘라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가 원유를 수출하지만 물가 수준은 더 저렴하다. 전 세계 도시의 물가 수준을 랭킹화하여 아래 지도를 그려봤다.(데이터 원본) 물가 수준이 높을수록 진한 빨간색이고 낮을수록 하얀색이다. 한 국가 내 여러 도시의 데이터가 있으면 가장 물가가 높은 곳을 기준으로 했다.


재미있게도 서아프리카의 남쪽 해변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붉은색임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분홍색에 가깝다. 아프리카 내에서는 코트디부아르보다 잘 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가 색이 더 옅다. 원유 수출하는 아시아 국가들도 코트디부아르보다 물가 수준이 낮다. 왜일까?


[그림 1] 전 세계 도시의 물가 수준



코트디부아르의 체감물가



실제로 체감하기에도 이곳 물가는 한국이나 유럽보다 비싸다. 유럽 중에서도 비싼 파리와 비등하게 느껴진다. 코트디부아르의 법정 최저임금이 한 달 기준 6만 5천 세파(약 13만 원)이다. 최저임금 기준, 일인당 하루에 평균 4천 원으로 산다는 이야기다. 이는 유엔에서 정의하는 절대적 빈곤 보다 2배 이상 높은 임금이다. (물론 실제로는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이 많다). 임금 수준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물가다.


특히 비싼 게 느껴지는 게 먹을거리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남편과 식사하면 메인 메뉴 2개에 음료 두 가지 하면 6~7만 원 정도 나온다. 에피타이저나 디저트, 와인을 시키면 거진 한 사람당 십만 원을 내야 한다. 나의 한 끼 식사가, 이 레스토랑 웨이터의 한 달 월급인 셈이다. 처음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년 전에 스위스에서 4천 원짜리 자판기 커피(3스위스 프랑 정도)에 충격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뽑아 먹는 그 자판기 커피가 어찌나 맛있던지. 가격 적응력은 금방 생겨나서, 4천 원을 4백 원처럼 쓰게 되었다. 문제는 비싼 돈 주고 맛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맛이 형편없을 때도 많다. 자연스럽게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이고, 집밥 스킬 개선에 힘쓰게 되었다.


쁠라또(아비장의 행정지구)카페에 갔다. 심지어 엄청 고급진 곳도 아니다. 전자상가 안에 작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커피는 보통 한잔에 6,000~7,000원 정도 한다. 쿠키도 맛 없다구 흐구흐규.... 한국에서도 이렇게 비싼 카페를 안가봤는데......호텔도 아니고....... 그렇지만 가격을 너무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 사고 먹는다. 그냥 써야 한다. 정말 코트디부아르에서 부자처럼 사치하고 산다. 아, 그렇게 많은 카카오를 생산하지만 초콜렛은 죄다 수입산이다.





먹거리 물가는 싸다면 싸고, 비싸다면 비싸다. 집에서 애플치즈 샌드위치를 해 먹으려 casino(슈퍼마켓)에서 재료를 사 왔다. 구입한 재료와 가격은 다음과 같다.

 바나나 (코트디 산, 약 1,000원)

 사과 (프랑스 산, 사과 1개 700원)

 브리 치즈 (프랑스 산, 약 6,000원)

 샐러드 (코트디 산, 600원)

 바게트 빵 (코트디 산, 200원)

 실파 (코트디 산, 600원)


여기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코트디 국내산은  저렴하고, 수입산은 비싸다는 거다. 그나마도 이건 나름 저렴하게 샌드위치를 만드려고 노력한 버전이다. 샐러드도 해외산을 쓰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는다. 코트디에 온 이후로 현지에서 나지 않는 브로콜리와 버섯은 거의 못 먹었다. 마트에 있지만 비싸서. 이들 가격은 한국의 열 배는 될 거다. 외국인으로서 코트디 산 음식만 먹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유럽산 제품을 소비하게 된다. 심지어 베이커리에서 "프랑스 빵"이라고 유럽 이름만 붙여도 일반 빵보다 서너 배는 가격이 더 비싸진다.





양극화, 빈부격차, 중산층의 부재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물가가 싼 나라더라도 가장 부자들이 즐기는 최상급의 서비스는 비싸다. 코트디부아르에는 양 극단의 서비스만 존재한다. 이를테면 일반 사람들이 가는 저렴한 레스토랑과, 외국인/부자들이 가는 비싼 레스토랑만 있다. 특히 비싼 레스토랑은 대부분 유럽인들이 투자/운영하기 때문에 가격이 유럽 가격이다. 그 중간이 없다. 중산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일 거다. 물론 내가 일반인들이 가는 저렴한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다. 실제로도 가끔 이용하긴 하지만, 보건/위생 측면에서 우려될 정도로 서비스 질이 낮다. 그래도 맛은 있어서(난 현지식을 아주 좋아한다) 먹고 안 아프길 기도하면서 먹는다. 실제로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동료들은 절대로 일반 식당에서 식사를 안 한다. (몇 번 설사와 식중독 같은 고통을 겪고 나면 이렇게 되는 듯)


[그래프 1] 아프리카의 전체 인구 대비 중산층의 비율

출처: Bearingpoint (2015)


AfDB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위 그래프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중저소득층(하루 소득 4~10$) 과 중고소득층(하루 소득 10~20$) 은 전체의 14%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친구의 60%는 하루에 2$ 이하로 버는 빈곤층이고, 20%는 언제든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이 곳에 비즈니스 구조는 다수인 80%의 빈곤층을 타겟으로 하는 사업과 상위 6%를 타겟으로 하는 사업으로 양극화된다. 상위 6%는 인구비율로는 매우 적지만 구매력이 있고, 최상위 재화/서비스 외에는 다른 대안(중저가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최상위 서비스만 소비하게 된다.


물론 두 가지 원인 외에도 정부의 부패 정도, 사회적 치안/안전 정도 등 여러 요인이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코트디부아르에 살면서 여기 물가 왜 비싼지 끊임없이 고민해왔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내가 한 끼 저녁식사에 자신들의 월급을 쓰는 걸 보면서 (물론 그 돈을 쓰는 내 마음속에서는 눈물이 솓구친다), 이 곳의 웨이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가 더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까? 아니면 지레 그마저도 꿈꾸지 못하게 되어버릴까? 한국인 선교사님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종종 코트디 아이들을 한국에 1~2주 간 초청하는데, 여행 후 다시 집에 돌아오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의 모습이 눈 앞에 너무 아른거려서, 그리고 자신의 형편과와의 괴리가 너무 커서.


코트디부아르가,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더 성장해야 한다. 카카오 생산에 의존적인 현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다른 기반산업과  기업을 발전시켜야한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중산층을 키워내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좀 더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지고 다양한 옵션이 생기면서 물가도 내려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머지 않은 미래에 더 발전한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겠지? 빠르게 발전 중인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그리고 한국이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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