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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Jun 20. 2019

어느 건물관리인의 죽음

장,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장을 위하여



8개월 전 처음 새로운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 가구를 옮기는 것부터 정착하는 것 까지 도와주었던 건물 관리인, 장(Jean) 이 있었다. 30살인 그는 덩치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까맣고 윤기 나는 건강한 피부를 가졌다. 365일 아파트 앞 작은 경비실 같은 곳에서 먹고 자며 일을 대신 처리해줬다. 이사 온 이후에도 거의 3주 동안 가스를 구하지 못해서 요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동네 시장에서 가스통을 구해다가 가스레인지에 연결해준 이도 그였다. 입주민을 대신해 수도세나 전기세를 내는 귀찮은 일도 처리해주었다. 아침에는 입주민들의 차를 닦아주고 천 원, 이천 원의 팁을 받았다. 못하는 게 있다면 뭐든 장을 찾았다.



잡초 같은 꽃들도 가까이서 보면 모두 아름답다 @아비장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물었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왜 한국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겼어?" 같은 그가 건넨 말이 장난인 줄 모르고 기분이 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내가 부탁하는 일은 거절하지 않는 그의 성실한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갔다. 그가 집안일을 도와줄 때마다 조금씩 팁을 줬는데, 한사코 거절해서 억지로 쥐어줘야 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퇴근하는 길에 바게트 빵을 사서 들어가는데 그가 장난을 걸어왔다. 


"저번에 케이크 맛있었는데 또 사주세요~"

"생일이 언제야? 생일에 내가 케이크 사줄게!"

"벌써 지났는데 왜 안 사줬어요? 8월인데?"

"그건 작년이잖아! 올 8월에 생일 되면 사줄게."


현지인이 너무 당연하게 나에게 뭔가 요구를 하는 게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너는 부자니까 더 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천 원을 주면, 고마워하기는 커녕 한 술 더 떠서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장이 진짜 케이크를 원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나에게 말을 거는 게 좋아서 라는걸 언제부터인가 알고 있었다. 


그가 24시간 상주하는 고시원? 경비실? 같은 곳은 겨우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을만한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근처 수풀에서 일을 보았다. 손바닥 만한 작은 창문으로 밤하늘이 내다 보였는데, 열대야로 더운 밤에는 방에서 나와 마당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까만 밤하늘이 그의 지붕이 돼주었다.


그는 공부하는 게, 학교 가는 게 정말이지 제일 즐거웠다고 했다. 집이 이렇게 가난하지 않았다면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교도 가고 싶었다. 언젠가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밖에 끝내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공부를 하려 돈을 모으고 있었다. 가끔은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꿈과, 건물 관리인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잠을 잘 수 없게 그를 괴롭혔다. 올해는 딸아이가 태어났다. 딸아이의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보면서 그리워했다.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어쩌면 그녀의 탄생으로 아마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꿈은 더 멀어졌을 거다.



가난하다는 것은 곧 안정망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랑베레비


하루는 아침에 출근하며 경비실 앞에 앉아있는 장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듣지 못한 것인지 아무 대답 없이 멍하니 있는 거였다. 다음 날도 인사를 건넸는데 아무 말이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장의 여동생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그가 아프다고 했다. 고용인인 집주인이 그를 병원에 보냈는데 말라리아라고 진단하고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3~4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못하더니 아예 일어나질 못할 지경이 되었다. 5일째 쯤 되는 날인가 여동생이 장의 짐가방을 싸고 있었다. 내가 먹던 비타민을 잔뜩 싸서 같이 챙겨줬다. 입원을 하면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가 드는데, 그럴 돈이 없으니 전통요법인지 주술 같은 것으로 치료를 하는 마을로 그를 보낸다고 했다.


그가 떠나고 바로 이튿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30살의 젊고 건강한 남자가 아픈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부고를 들은 다음날, 집주인이 사람을 시켜 장이 머물고 있던 경비실을 청소하게 하고 있었다. 남아있던 장의 물건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보내준다고 했다. 집주인은 다음 주면 장을 대신할 새로운 건물 관리인이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건물 관리인과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땡볕을 걷다가도 쉬어갈만한 그늘이 있다면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한결 쉬울텐데 @아비장 쁠라또


나는 코트디부아르에 온 이후, 한 달에도 몇 번씩 부고 소식을 듣는다. 이렇게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이것도 곧 가난일까. 이렇게 죽음이 도처에 가득한 것도 어쩌면 모두 가난과 저개발의 탓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아비장에서 사용할 차를 구입해 자동차 보험을 드는데, 차량 손괴에 대해서는 보험금액이 아주 높은데 인명피해나 상해에 대해서는 보상금액이 아주 적단다. 사람의 가치가 차의 가치보다 낮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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