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가 이 역경을 잘 이겨내기를 바라며
“진짜 그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난 그런 바이러스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안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아무리 이게 위험한 상황이고 남편이 자가격리 중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안이는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 집을 청소해주는 가사도우미이다. 남편이 독일에서 돌아와 2주 동안 격리를 하므로, 한동안 일을 오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미처 확인을 못하고 찾아온 거였다. 코트디부아르의 오랜 내전과, 말라리아도 수십 번 살아남았을 그녀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는 한 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듯했다.
남편의 자가격리가 끝나면 다시 일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재택근무가 시작됨과 동시에 출퇴근하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만큼 조심하라는 사무실의 지침이었다. 집 청소를 스스로 해본지가 1년이 훨씬 넘었는데 어쩌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놈의 바이러스가 날 다시 가사노동으로 복귀시킨다. 결국 3월 내내 안이는 일을 쉬었고, 나는 청소 스킬을 회복해야 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돈은 필수지. 나는 그녀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싶었고, 월급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했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었더니 안이가 꼬맹이 두 명과 함께 서있었다. 나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오미와 줄리엣. 안이의 귀여운 딸내미 들이다. 딸내미들의 행차까지는 예상을 못했던 터라 좀 꼬락서니를 잘 갖추고 있을 걸 후회했다. (왠지 줄리엣과 나오미에게 그 예쁜 이모?로 기억되고 싶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바이러스 따위, 그런 걸 두려워하냐며 나를 한참이나 깔깔대고 비웃었던 그녀가 아닌가.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애써 근심스러운 얼굴을 감추며 물었다.
“이 바이러스가 다 지나가면, 다시 일해도 되는 거야?”
유급휴가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이 바이러스를 계기로 일자리를 잃을까 봐. 안이를 똑 닮아 똘망똘망한 두 꼬맹이도 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사실 직접 청소를 해보니 힘들긴 하지만 할만하네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콩알만한 집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만 부지런을 떨어도 된다.
“당연하지. 난 너 없으면 안 돼.”
내 말에 그녀는 안심한 얼굴로 월급을 받아 돌아갔다. 너 없으면 안 된다는, 나의 말 한마디가 그녀의 전부였다.
바이러스의 가면을 쓴 근심의 정체
2020년 4월 9일 기준 코트디부아르의 COVID19 확진자 수는 444 명이다. 완치자 52명, 사망자는 3명이다. 나는 2주 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사회적거리두기 정책을 도입하며 학교는 한 달간 휴교하고 상점과 레스토랑도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마트,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불안함이 느껴졌다. 일요일에 마트에 가니 계란, 베이컨 등 몇몇 품목이 동나고 없었다. 곧 정부가 모든 사람들의 이동을 금지하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두려운 것은 기껏해야 집 청소를 직접 해야 한다거나, 봉쇄정책 때문에 냉장고가 텅 빈다거나,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이 떨어진다거나. 갑자기 물이 안 나와 머리를 못 감는다거나, 4월 계획했던 여행을 미뤄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불편함이 좀 생기는 것 뿐이다. 이 얼마나 아늑한 고민인가? 아늑한 나의 아파트 밖, 아비장에서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위기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확진자 수가 수백 명 대이지만, 상황이 악화될수록 보건위기가 인권위기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코로나가 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미국에서도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는 가운데, 총기 구매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람들이 언젠가 소방, 경찰, 의료 조직 등이 약화해 치안이 무너질 때를 대비하여 총기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선진국들이 총기 구매, 휴지 사재기라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씨름할 동안, 아프리카 그리고 코트디부아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안이처럼 보통 사람들은 바이러스 자체가 두렵진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민낯을 하고 있다.
2020년 4월 5일 일요일.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코트디부아르 정부가 아비장 요푸공에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팅 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요푸공은 아비장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이다. 불안한 민심이 요동쳤다.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격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데모가 폭동으로 번졌다. 성난 군중들은 센터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질렀다.
“유럽에서 바이러스를 들여온 건 마코리와 코코디 지역에 사는 부자들이다! 요푸공엔 유럽 갈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이 곳에 센터를 짓느냐!!”
시위자들이 소리쳤다. 밤 사이 경찰은 폭동에 가담한 스무 명을 체포했다. 아비장 내에서도 지역별로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또 그 격차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폭동에는 가짜뉴스도 한몫을 했다. 테스팅 센터를 치료센터라고 오인한 가짜뉴스가 퍼졌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백신치료를 하자는 프랑스 의사 개인의 발언이 마치 사실인 냥(실제 그런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비장의 좋은 의료시설은 대부분 사립이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레바논인이나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사립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공공부문은 아예 딴 세상 이야기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공공병원 의료진들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국가가 방호복과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으면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비장을 봉쇄하자 지방과 아비장 간의 통행이 멈췄다. 버스운송회사는 한 달 동안 기사들을 해고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실업률이 25%에 이를 수 있다는 RTI 기사가 나왔다. 길거리의 동양인을 "코로나"라고 부르며 공격하는 동영상이 SNS를 나돌았다. 주술사 복장을 한 현지인이 길거리에서 무리 지어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채찍질하는 영상도 나돌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절도, 강도에 특히 주의하라는 가이드라인이 내려왔다. 외출 시 차 안에만 머무르고, 되도록 집에 있으라는 주의였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줄 때도 공공장소에서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전 직후 선출된 와타라 대통령이 헌법에 금지된 3선 출마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올 초 일이다. 80살이 다 된 노장이 장기 독재에 조금 더 다가서자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와타라 대통령은 반대세력 제거도 시도했다. 그는 전 국회의장인 기욤 소로가 유럽에서 코트디부아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횡령 혐의로 구속명령을 내렸다. 소로는 용케도 비행기를 돌려 스페인으로 돌아갔고, “정치적 망명” 상태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코트디부아르는 내전과 내전 이후 생성된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 정부과 반 정부 세력의 대립이 다시 내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3월 초 와타라 대통령은 3선 출마를 번복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욤 소로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현 정부의 방역태세를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국방부 장관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역경을 기회로 더 강해질 수 있기를
역설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는다. 현 상황은 중저소득국인 코트디부아르가 앞으로 다뤄야 할 개발 문제를 아주 직접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더 이상 최빈국이었을때의 프레임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어려울테지만 바이러스는 곧 종식될테고 우리는 그 다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빈부격차가 첫 번째 과제다. 정부 당국에 보고되지 않는 취업 및 비정형 고용관계인 비공식 경제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 은행권을 강화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국내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정치/사회 안정성을 높여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다양화하고 프랑스에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장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개발의 관점에서 다양한 분야를 보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 부자를 위한 성장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개발이 되어야 한다.
와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챙기는 것이다. 4월도 여전히 안이는 일을 못할 것 같지만, 난 여전히 그녀에게 똑같은 월급을 줄 생각이다. 10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나보다 안이에게 더 큰 효용이 있을 거 같아서다.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긴 했지만 만일 바이러스 때문에 일을 아예 못하게 되더라도 UN의 보호를 받을 거다. 동일한 안정감을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UN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르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다. 위기 속에서 우리가 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작게는 이웃을 돌보고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 우리 모두가 이 위기를 함께 나누어지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바이러스를 계기로 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우리는 그 민낯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바이러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어디서든 존재한다. 아프리카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바람이 지나간 후, 과연 우리는 같은 코트디부아르를 살게될까?
다시 한 번 아프리카가 이 역경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역경을 계기로 더 강하고 튼튼해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