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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Oct 24. 2018

떠난다 아프리카로

글로벌 호갱이지만 괜찮아


운수 좋은 날


꽤 운이 좋았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며 운 좋게 비상구 앞자리를 얻었을 때 말이다. 야호! 옆자리에 앉은 수단에서 온 아저씨는 의사인데 서울아산병원에서 컨퍼런스를 마친 후 돌아가는 길이란다. 왠지 의사가 옆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만약에 응급상황이 생길걸 생각하면 난 역시 운이 좋은 편이다. 


경유지인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에티오피아로 단체관광을 가는 듯한 젊은 사람들, 파란색 유엔 모자를 쓴 군인까지... 드디어 나도 떠난다. 수단 아저씨는 키가 작고 말랐지만 조용하고 교양 있게 말하고 스마트해 보이는 꽤 괜찮은 비행기 옆좌석 동무였다. 비행기는 만석이 아니라 꽤 여유가 있었고, 음식은 썩 입에 맞진 않았지만 대략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에티오피아 승무원들은 정말 예쁘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기름져서 찜찜한 머리카락과 이를 닦지 못해 찝찝한 기분 빼고는 상당히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이 정도면 장거리 비행기도 탈만한데? 싶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아비장 까지는 약 5시간이 걸리는데 비극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머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속이 울렁거리더니 내리 화장실로 세 번이나 뛰쳐가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그제야 이 긴 비행이 내 고단한 여정의 시작 같이 느껴졌다. 


구토가 지나간 후엔 비로소 속이 좀 편해졌지만 뭘 먹을 자신은 없었다. 금붕어처럼 물만 몇 잔 마시고 잠을 자다 보니 머지않아 아비장에 도착했다. 하강을 시작한 비행기 안에서 코트디부아르의 벌판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에게 어떤 어려움들이 닥칠까 상상했다. 내가 이곳에 적응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부패경찰에게 돈을 뜯기지도 않고,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고, 때워 논 이가 떨어졌는데도 위생상태를 믿을 수 없어 치과를 못 가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택시에서 낙법으로 뛰쳐나와 도망갈 일은 없을까?





네, 여기 호갱님 왔습니다~


널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어. 빠져나갈 수 없을걸. @아비장 뽀흐부에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저명한 아비장 공항 세관을 통과하는 일이다. 인터넷에서는 공항세관에 걸려서 돈을 뜯겼다는 사람들의 일화가 많았다. 부패한 세관 직원들이니 말도 안통하고, 그저 좀 깎아나 달라는 부탁이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세관직원이 외국인들을 잡아서 검사할 때 재빠르게 도망 나가라는 조언을 얻었던 나는 한참을 서서 출구 쪽을 살폈다. 엑스레이 기계에 짐을 넣고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도통 걸리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운수 좋은 날인가! 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떼는 순간, 아뿔싸! 유니폼도 아닌 평상복을 입은 세관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아주 차분하고 기계적으로 내 가방에 먹을 게 있는지 물었다. 이미 나 같은 외국인은 하루에도 수백 명은 상대해 봤으리라. 


프로 앞에 어떤 아마추어가 당해낼 재간이 있으랴.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맘 편하게 몇 푼 쥐어주면 될 것을 난 왜 그렇게 안 뜯기는 방법을 연구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애초에 나는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편도 아니며 남이 부탁하는 것을 잘 거절하지 않던가. 결국 가방을 열라고 지시하신 세관직원님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라서 뒷 방으로 끌려갔다. 취조실 역할을 하는 곳 같았다. 거기엔 다른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또 가방을 열라더니 음식을 들어오려면 세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따졌다. 


세관 앞에 나는 한 없이 작아지기만 @ 아비장 드쁠라또

20시간에 걸친 비행은 너무나 고단했고, 그나마 먹은 것도 다 토해낸 나는 저항할 기운이 없었다. 가공식품까지 세관 신청을 해야 하냐며 찔끔 항의해보았지만 그게 다였다. 거의 24시간 아무것도 못 먹은 택이었다. 그저 어서 숙소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침대에 기어 들어가고 싶은 것 뿐이었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그의 요구대로 여권을 꺼내 보여줬다.


여권을 펼치더니 (아마도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네?" 중얼중얼하며 별안간 한국이랑 코트디부아르가 친구라느니 어쩌니 한국을 좋아한다면서 자기 전화번호를 쪽지에 적어줬다. 그냥 가도 된단다.


:D...?


다행인 건지 아니면 되려 돈 뜯기는 것보다 더 나쁜 건지 구분이 안 갔다. 가방을 닫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다른 동양인 남자애가 잡혀서 취조실로 잡혀오고 있었다. 불쌍한 아이. 이 녀석들 불어도 잘 못하고 쉬운 목표물인 동양인만 골라서 돈을 뜯고 있는 거였다. 





TIA - This is Africa

여긴 아프리카니까


자, 공항을 빠져나오자 두 번째 관문이다. (나름 스스로한) 조사에 따르면 공항에서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는 현금만 받으니 달러를 현지 통화인 세파 프랑으로 환전을 해야 한다. 환전을 할 때도 그냥 주는 대로 받으면 안 되고 흥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환전하려고 하는데요? 말을 떼자마자 환전꾼들에게 납치되듯 환전소로 끌려가서 영수증도 못 받고 백 불을 환전 받았다. 내 옆에 다른 외국인 남자애는 왜 이거밖에 안 주냐며 투정을 부렸지만 (당연히) 이의는 수용되지 않았다.


공항 문을 나오자마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가뜩이나 기름진 머리를 휘감았다. 온도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습한 공기 때문에 답답하고 매캐하게 느껴졌다. 승강장에 택시기사들은 커다란 짐가방을 든 나를 보자마자 서로 자기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고 난리가 났다. 주 코트디부아르 코트라에서 발행한 정보지에 따르면 공항에서 내가 묵을 숙소까지는 대략 5천 세파 프랑(1만 원 가량)이면 된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8천 프랑을 불렀다. 나는 5천 프랑을 계속 주장했지만 이미 다른 기사들이 몰려와 내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 


:D...?


흔한 아비장의 택시 내부 모습. 잘 달리기만 한다.


심술이 나 택시에 올라탔다. 30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은 택시는 에어컨은 당연히 되지 않았고, 창문도 닭다리로 올렸다 내리는 수동이었다. 그나마도 망가져서 덥고 습한 바람을 온 얼굴과 머리로 맞으며 공항도로를 달렸다. 비행기에서 먹은걸 다 토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는 구글맵을 보며 택시기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GPS를 보고 있는데 택시기사는 두 번인가 굳이 안 들어가도 될 골목으로 들어가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8천 프랑에 바가지 씌운 게 민망하긴 했나 보다. 목적지에 다다라 정확히 8천 프랑이 없는 나는 1만 프랑짜리를 건넸고, 할아버지는 조커처럼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 1만 프랑 준거얔ㅋㅋㅋㅋ" 


:D...?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비장 드쁠라또


20시간의 비행기, 세관, 환전, 택시 그리고 숙소까지...... 왠지 재수가 좋은 것 같았던 오늘 드디어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도착했다. 나중에 안거지만 임시로 에어비엔비에서 찾은 이 원룸은 한 달에 150만 원가량을 줬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지인들이 내는 것의 거의 2배 가격이었다.


:D...?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니까. This is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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