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이 지긋지긋해 아프리카로 떠나온 지 8개월
아프리카????
정착할 듯하더니 또 떠난다는 내가 가는 곳이 아프리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한결같은 주변 반응이었다. 부모님도 결사반대를 외쳤다. 직장동료들도 조금 더 버텨보라고 만류했다. 다른 곳에 소개해 주겠다며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냐고 말렸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렸다. 3년 전엔가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어 부모님께 넌지시 이야기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격한 반대로 접은 적이 있었다. 당시엔 아프리카로 가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만 있었을 뿐 굳은 의지 까진 아니었다. 내가 정말 실행에 옮기고자 결심만 섰다면 반대 따위는 큰 장벽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그렇게 내 마음은 이미 이 곳 코트디부아르에 와 있었다.
2018년의 유독 무더운 여름 에어컨이 없는 집. 스카이프 면접을 보려니 도저히 더위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어 집 근처 조용한 모텔을 하나 잡았다. 시원한 곳 들어가니 좀 기운을 차려서 면접을 어찌어찌 치러냈고,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 코트디부아르 UNEP(유엔환경프로그램)에서 합격소식을 받았다. 기쁨은 잠시, 온라인 보안 및 안전 교육이며 건강검진을 등등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처음엔 콩알처럼 조그마하던 두려움이 새록새록 자라났다.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두려웠다. 사실 아프리카를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한국에 염증을 느끼고 도망가고 싶었던 거 아닐까?
"나 진짜 아프리카 가는 게 맞을까? 괜한 짓 하는 건 아닐까? 사실 도망가는 것 아닐까?"
"뭔 소리야~ 그렇게 가고 싶다며 네가!"
친구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며 한참을 들들 볶으니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나의 결정을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주 그렇게 노래를 불렀잖아 네가!!"
친구의 아주 짧고 단호한 외침에 문뜩 정신을 차렸다. 맞아 그랬었다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었다.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블로그를 뒤지다가 아비장에 위치한 아프리카 개발은행 본부에서 인턴쉽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 KDI에서 석사과정 중인 그가 세종시에 있다길래 찾아갔다. 그는 아비장에서의 평소 생활, 환전, 치안, 좋은 거주지역 등등 여러 궁금해하던 점들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다. 궁금하던 것들이 풀리니 걱정이 부쩍 수그러들었다. 다행히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 안했고, 무사히 아비장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한국에서 보다 코트디부아르에서 훨씬 행복하다. 비로소 사람같이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물론 아프리카에 살면서 고충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더 행복하다는 거다.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게는 인권 침해처럼 잔인한 집단주의였다. 그저 점심을 안 먹고 싶을 때 안 먹고,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권리를 갖고 싶었다. 내가 일한 만큼 시간 외 수당을 받고, 일이 없다면 주말에 출근 안 하고 쉴 수 있는 기본권리 말이다. 내게는 당연했던 이런 권리는, 타인들에게는 젊은 애들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비쳤다. 강산은 십 년이면 바뀌지만 문화는 쉽지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에 도저히 한국에서 살 자산이 없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내가 행복한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한국에서 나를 고달프게 하던 원인이 없다. 오후 5시면 퇴근을 한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주말에 출근한다.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회사 바로 옆 헬스장에 들러서 운동을 한다. 땀을 흘리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었나 새삼 배운다. 장을 봐서 집에 오면 어언 저녁 7시. 밥을 해 먹고 소파에 앉아 책이나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 한 잔 때리는 평화 그 자체다.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하니 주말이 2.5일인 셈이다.
리더십 있고 합리적인 상사 밑에서 일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좋다. 직장이 제시하는 비전에 공감할 수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즐겁다. 주말에 일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히 여겨주는 상사여서 행복하다. 동료들과 함께 미래 꿈을 꾸고 공유한다. 1년에 휴가가 30일이니 신나게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며칠을 쉬다가 출근을 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면 쨍한 햇빛이 느긋하게 야자수 나무가 흔들흔들 춤을 춘다.
커다란 망고 하나에 500원인데 어찌나 단지 망고랑 포도를 섞은 맛이 난다. 잘 익은 파파야의 배를 갈라서 패션후르츠를 얹어 먹으면 아주 달콤 새콤하다. 일주일에 3일까지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아프면 아픈 만큼 병가를 쓸 수 있다. 집 앞 빵집에는 방금 만든 따끈따끈한 바게트가 300원인데 곱게 찢어서 버터에 바르면 그렇게 맛난 밥 한 끼가 된다. 다른 공산품들은 비싼데 또 술 값은 싸다. 남아공과 프랑스의 괜찮은 와인들을 4~5천 원에 살 수 있다. 까망베르 치즈 조각과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금방 한 병이 빈다. 주말 늦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근심이 가신다.
그래 아프리카에서 행복하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훨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