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 번 나가면 끝이야. 다시 들어와서 우리랑 살림 합칠 생각은 하지 마."
평화로운 어느 저녁, 정섯껏 차린 밥상 앞에서 한 어머니(만 52세)가 딸(만 26세)에게 엄숙하게 선언했다. 2022년 2월, 임용고시에 3년 동안 매달렸던 딸은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과 어머니의 한숨 소리와 등짝을 때리는 손길에 떠밀려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때마침 근처 신도시에는 아파트가 하늘 높이 올라섰고, 전국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새로운 학군지를 일궈냈다. 여기서 학군지는 학군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들이 꼬깃꼬깃한 봉지 속 군밤들처럼 모여들어 교사들을 지치게 할 정도로 수가 많았다는 소리다. 갑자기 모여든 학생, 부족한 교사 수, 아직 역이 건설되지 않아 버스나 자차에 의존해야 하는 교통 상황. 모든 것이 생초짜 교사 지망생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신도시에 있는 한 학교에 자기소개서와 지도 계획, 각종 증명서를 첨부해 지원을 했다. 결과는 채용 합격! 야호!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3개월 시간 강사 경력이 전부인 사람을 채용한 것은 그만큼 다급했다는 뜻이다. 다급했다는 것은 아무도 이 학교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십대 중반이 넘도록 스터디 카페에만 박혀 있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딸은 도로의 러시아워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버스의 배차 간격은 20분이었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수 시절에 면허를 따 놓을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아침잠이 많은 딸은 매번 버스를 놓쳤고 어머니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자차로는 20분 거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이 오십이 넘도록 서른에 가까운 딸을 등교시켜야 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찼다. 출제 기간이 되면 딸은 예민해졌고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딸을 데리러 다시 학교에 갔다. 하교까지 시켜야 할 줄 몰랐던 어머니의 미간 사이 주름은 깊어만 갔다. 평화롭던 집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잠들 수 없다며 새벽까지 깨어 있는 딸과 내일 어떻게 출근할 거냐고 얼른 자라는 어머니의 고함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와 동생은 오고 가는 다정한 비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결판을 내자. 나가라.”
그리고 딸이 2023년도에도 같은 학교와 재계약하는 데 성공하자 드디어 어머니의 입에서 독립선언문이 나오고 만 것이었다.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딸이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하지 않자 어머니가 딸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