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콩 Oct 24. 2024

그냥 이렇게 막 계약해도 되는 거야?(1)

  우리 엄마는 실행력이 끝내준다.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차가 없어서 고생한 일로 한동안 서러워하더니 ‘면허를 따야겠다’고 선언한지 한 달만에 면허증을 따냈다. 이번에도 ‘딸로부터의 독립’을 결심한 다음날부터 장소를 물색하더니 다다음날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 부동산에 가자고 했다. 엄마 차를 타고 부동산에 가는 길, 어떻게 그렇게 일처리가 빠르냐고 물었다. 엄마는 별 거 아니라는 듯 헹 하고 웃더니 말했다.

“너네 엄마가 능력자인 걸 아직도 몰랐어?”

“아니 그런 소리 말고 진짜 어떻게 그렇게 척척 해내는 거냐구. 비법이 있어?”

“머리 속에서 수십 번 시뮬레이션 돌리는 거지. 내 안에서 너는 이미 혼자 살고 있다.”

  다른 집 엄마들은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끼고 산다던데 일찌감치 나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황당했다. 그렇지만 우리 네 식구 중에서 엄마의 생활력이 가장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학교 근처 어느 부동산에 갈지도 이미 정한 거야?”

“아니. 눈에 띄는 첫 번째 부동산에 바로 들어간다. 네가 골라 봐.”

“아니 조사하고 온 게 아니었어? 나보고 생활기록부 마무리에나 신경 쓰라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검색해서 후기 좋은 곳 찾아놨지.”

“딸아. 부동산은 다 똑같아. 서로 매물을 공유한다더라. 우선 들어가서 별로면 더 둘러보고 올게요~ 하면 되지.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아빠도 엄마 말에 동의한다.”

  엄마와 아빠, 나는 활짝 웃는 스마일 표시가 크게 붙어 있는 한 부동산에 들어갔다. 부동산이 모여있는 상가에서 우리가 주차한 곳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중년의 아주머니셨는데 무척 친절했다. 엄마와 내가 사장님을 마주본 채 나란히 앉고, 아빠는 사장님 옆 의자에 앉았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여러모로 보안이 걱정 되어서요. 아파트 전세 매물을 보고 싶어요. 요즘 월세가 비싸서 오히려 전세가 합리적이더군요.”

“나 아파트에 사는 거야?”

“아휴. 저도 제 자식 독립시킨지 얼마 안돼서 어머니 마음 너무 잘 알아요. 이 주변에 새로 생긴 아파트들 다 시설이 너무 좋답니다.”


  온갖 매물이 들어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커다란 파일을 이리저리 신중하게 들춰보던 사장님은 세 군데의 후보를 추리더니 주소를 쓴 종이를 엄마에게 건넸다.

“이 집은 29평인데 세 가족이 살아요. 남향이고 고층이라서 볕이 아주 좋아요. 이 집도 29평인데 첫집이랑 구조가 조금 달라요. 입구가 복도식이거든요. 가 보면 한눈에 아실 거예요. 이 집은 24평이고 아직 입주가 안 된 새 아파트예요. 첫 입주자가 되면 모든 걸 다 처음으로 쓰시는 거예요. 최고죠!”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친 여러 선택지에 벌써부터 머리가 핑핑 돌았다. 엄마는 대충 예상했다는 듯 전세가를 물었다.

“첫 집은 2억 8천, 두번째는 2억 7천, 세번째도 2억 7천이에요.”

“평수가 다른데 가격이 똑같네요? 조금 더 작은 평수는 없나요?”

“이 동네가 좀 그래요. 평수 상관없이 큰 길로 나올수록 가격이 오히려 더 셉니다. 여기보다 작은 평수인데 더 비싼 집도 있어요.”

“생각보다 가격이 나가네요. 저희는 2억 5천 정도 예상하고 왔거든요.”

근심 섞인 얼굴로 엄마가 말했다.

"HUG에서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예정이에요."

내가 덧붙였다. 학교 일부터 제대로 마무리 하라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나름 열심히 찾아본 정보였다.

“우선 한번 둘러보러 가실까요? 후보를 추린 뒤에 집주인과 협의해보시죠.”


  그렇게 갑자기 부동산 투어가 시작되었다. '에이번리의 초록지붕 집'에서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살던 빨간머리 앤이 길버트와 결혼한 뒤 '포윈즈 항구의 안개 낀 보랏빛 해변에 있는 꿈의 집'을 찾아낸 것처럼 나도 무사히 독립을 이뤄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부모님이 함께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국어 교사이고 이십대 후반이었지만 엄마 말대로 나는 덩치 큰 아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2023년 2월 인천의 한 신도시 부동산에서 사장님께 들은 가격을 기준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 물가, 전세 가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엄마의 잔소리

  매물을 찾을 때 ‘네이버 부동산’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지도에서 중개업소 목록, 평당가, 주변 시설을 확인할 수 있다. 매매, 전세, 월세, 단기임대 중 원하는 거래유형을 선택하면 목록이 쫙 뜬다. 선택하면 해당 매물의 가격, 평수,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볼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제공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국토교통부 기준 계절별 관리비도 대략적인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매물의 최장 7년까지의 최고와 최저 실거래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에서 제시된 가격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네이버에서 정말 실재하는 매물인지 확인한 날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주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이전 01화 독립선언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