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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24. 2024

시고르자브종 한 마리와 신축아파트출생닭 두 마리

영국에 살 때 혼자 사시는 친정엄마를 보러 한국에 왔다 갔다 했었다. 2015년, 아마 아기와 첫 번째 비행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 국내선을 탔었고 한국에 왔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런던 구경을 앞두고 신이 났을, 와글와글 함께 비행기를 탔던 단체여행(패키지) 할머니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들었다.  


- 아기 엄마도 런던에 구경 가는 거야?

- 아뇨, 저는 집이 거기예요. 

- 아.. 애가 국산이 아니야? 


국산 (명사) 

자기 나라에서 생산함. 또는 그 물건. 


착상도 출산도 영국에서 했으니(?) 국산이 아닌가..? 내 나라는 한국이니까 국산이 아니라면 아이아빠는 한국이 자기 나라가 아니니까 국산 맞나..? 아니다. 일단 아이는 물건이 아니니까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그건 틀렸다. (흔히 수입산이라는 틀린 말도 자주 하는데 '산' 앞에는 지역이나 연도가 붙어야 맞다. 예)한국산, 1955년산) 


국내산이 아니냐는 소릴 듣던 그 아이는 지금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있는 시골에 산다. 시골에서 어떻게 애를 키우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시골에서 애를 키우니까 너무 좋겠다는 말도 똑같은 무게로 함께 듣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이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개 한 마리와 닭 두 마리도 함께인 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개는 우리가 도시에서부터 키우던 개가 아니다. 그냥 이 집과 함께 늘 여기에 살던 시골 개이다. 이 집에 사시던 어르신이 큰 병원이 가까운 서울로 거처를 옮기면서 개를 함께 데려갈 수 없어 두고 갔다. 어찌저찌 무리를 해서 데려갔더라도 이 개가 거기서 행복할리가 없다. 푸릇한 산을 쏘다니며 동네개들과 친분이 있고 분명 '사랑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똘똘이'라고 불리는 똘똘한 녀석. 워낙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자란 개라서 차만 보면 산이 떠나가라 짖어대는데 도시에서 어떻게 클꼬. 배변훈련? 산책훈련? 그런 모르고 밖에서 다. 이제 아홉살인 외국산(?) 아이가 여러 관련 프로그램과 책을 섭렵하면서 하나씩 가르치는 중이다. 시골 작은 도서관의 동물 관련 책들이 많은 것이 도움이 됐다. 


무슨 종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시고르자브종'이라고 답한다. 모르세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대단히 많은 종자인데. 



본격적인 시골 생활을 하기 전, 사계절을 5도2촌 생활을 했었다. 주말마다 시골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짧게 요즘말로 하면 5도2촌인가보다. 이때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 시골에서 닭을 키워줄 수 있냐는 말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알부화기를 사다가 달걀을 부화시킨 모양이었다. 비악비악 거릴 때는 (*삐악삐악의 여린말) 마냥 귀여웠는데 글쎄 그 암컷 한 마리와 수컷 한 마리가 어느새 중닭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벽에 바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신축아파트의 벽지를 맛있게 뜯어먹으며 성장하고 있는 이 흔한 남매(?)를 보내줘야 될 때가 온 것이었다. 친구는 동네 여러 농장에게 남매를 받아줄 것을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새와 관련된 질병들이 흔하니까, 괜히 받아줬다가 원래 있던 동물에게도 피해가 가면 테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키우던 애들을 튀겨 먹을 수도 없고.. 결국 조만간 시골 생활을 거라고 말하던 나에게 부탁을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 하지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죽어도 괜찮다면 - 받아주었다. 그렇게 눈 내리던 추운 하얀 겨울날. 트렁크에 중닭 두 마리와 남은 사료를 싣고 산 속으로 들어왔다. 국내산일 뿐더러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신축아파트 브랜드에서 탄생한 이 남매와 사랑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친구는 이별 앞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원래 사랑이의 거처는 도시 아파트의 방만한 크기였는데 그걸 반으로 잘라서 닭장을 뚝딱뚝딱 만들었다. (남편은 공대 출신이다) 다행히 사랑이는 공간이 줄어든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닭을 향해 짖지도 않았다. 오히려 도시 아파트 방안에서 태어나 세상 눈치없는 남매가 사랑이를 자꾸 쪼고 쪼고 쪼았지만. 


(위) 쌍알 (아래) 평소에 낳는 알

흔한 남매는 남매 컨셉의 콘텐츠이지만 실제 출연자들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 같은 닭이 낳은 유정란에서 나온 이 암탉과 수탉도 앞서 흔한 남매라고 표현했지만 지난 3월부터 이들도 알을 낳기 시작했다. (전국의 초등학생들아 흔한 남매는 사실 남매가 아니란다..) 닭똥과 함께 나오느라 표면이 더럽지만 따끈따끈한 알. 주로 하루에 한 알씩 낳고 크기는 다양한데 심지어 쌍알을 낳을 때도 있다. 달걀프라이를 하면 마트에서 사온 달걀과 확연히 비교가 된다. 노른자가 흐물흐물하지 않고 싱싱하게 위로 탱탱하게 솟아있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진 않았고 너무 대견해했다. 기숙사에 아이를 보내놓은 도시엄마 느낌이랄까.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희가 농약 없이 키운 돌나물과 산지직송 지렁이로 식단 잘 케어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시골 생활이 언제 끝날 지 몰라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도시생활의 습관이 아닐까 싶다. 키우는 건 아이 하나와, 닭 두 마리, 개 한 마리로 간단해보이지만 이것말고도 계절마다 다양한 동식물과 곤충들이 시골집을 에워싼다. 뱀이 베란다에 들어온 적도 있고 무당벌레처럼 생겼지만 무당벌레가 아닌 해충이 조명마다 붙어있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또 다시 도시로 돌아가 그땐 그랬지..할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열심히 달걀을 줍고 개똥을 치우고 아이를 키워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할 줄 아는 차가운 도시여자이니까.





* TMI

SNS를 보면 유럽 어드메 작은 코티지에서 free range 닭들과 함께 집안 생활을 하는 크리에이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현실은 닭똥 때문에 집이 다 망가져있을 것임을 이제는 안다. 부럽지가 않다. 예쁘게 보이지가 않는다. 나도 free range eggs를 얻으려는 욕심에 해보려고 했는데 사방팔방에 똥 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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