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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pr 17. 2024

쑥과 냉이는 알았어도 벼룩이자리와 꽃다지는 몰랐다

그리고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몰랐다

친정엄마는 충북 청원군 출신이시고 돌아가신 아빠는 충북 영동군 출신이시다. 찾아보니 지금은 청원군이 청주시인 모양이다. 재작년에 그 동네를 엄마 따라 갔다가 청주 한나절 여행기를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egeve23/132

호구조사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을 따라 시골집에 자주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외갓집은 할아버지가 생전에 워낙 N잡러이시라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농사를 지었고 아빠 쪽은 시골에 집만 있었지 뭘 하진 않았던 기억이 있다. 외할아버지댁처럼 벼가 고개를 숙이는 걸 보거나 신나게 쥐불놀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마당에 채송화가 가득했던 기억은 있다. 


엄마와 이모들은 시골에 모이면 밭에 있는 여러 먹을거리들을 채집? 채취? 하느라 바빴다. 어깨너머로 본 게 있고 그동안 얻어 먹은 게 있으니 나는 쑥과 냉이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어린이였다. 이후 고등학교 때는 잠깐 주택에 살았는데 그때 마당에 돌나물이 그득그득했던 기억이 있다.


into the unknown

주민등록표를 떼어볼 일이 있어서 보니 현주소로 구성된 날짜가 23년 12월 말이었다. 약 1년 동안 5도2촌 생활을 거쳐 눈이 많이 내리던 한겨울에 정식으로 시골집 세대주가 된 거였다. 겨울에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지라 매일 눈만 치웠다. 이제 아무도 나한테 군대 얘기 중에 빠지지 않는 제설작업에 대해 네가 뭘 아냐는 소리는 하지 못한다. 우리집은 산 중턱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경사길이 아이의 훌륭한 눈썰매장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차로 들어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제설작업이 매일 매일 필수였다. 여기는 주택이라 공동 관리사무실도 없고 나랏길이 아니라 나라에서 눈을 대신 치워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가 치워야 내가 장보러 나가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식 배달이 되지 않는 지역이기도 해서 꼭 내가 나가야만 함) 내가 선택한 시골생활이니 이만 징징대고 봄을 맞이해보자. 


그렇게 해가 일찍 뜨고 낮이 조금 더 길어진 봄이 왔다. 이제야 하얗고 하얀 산뷰를 걷어내고 푸릇푸릇 연두연두한 배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동네 벚꽃길이 유명하다던데 서울은 뭐 안 그런가. 어딜가나 벚꽃이 천지인 것을. 여의도 MBC 시절에 지겹도록 본 벚꽃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땅에서 뭐가 새로 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마당 구석구석에 자세히보면 작은 꽃 같지만 꽃은 아닌 이것들이(왼쪽 사진) 마구 올라오고 있었다. Daum에는 꽃검색은 있지만 잡초검색이나 풀 검색, 나무 검색, 나물 검색은 없다. 나는 이리저리 검색한 끝에 이제 벼룩이자리라는 걸 알게 된다. 영어로는 Thyme-leaved sandwort. 해외 생활할 때 허브 좀 서양음식에 쳐 봤다 싶은 사람답게 Thyme이라는 낱말에 쾌재를 불렀다. 먹을 건가봐! 찾아보니 벼룩이자리는 산성땅에서는 살지 못해 대기오염이 크게 노출된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하니 채소값도 비싼 요즘 나에게 찾아온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나들이 작가로선 '벼룩이자리'라는 이름이 일본이름에서 왔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지만 일단 먹는다. 맛.있.다. 냉이만큼 '나 냉이다!!!'라는 정확한 맛은 없지만 식감이 좋고 어느 요리에 슬쩍 넣어도 잘 어울리는 맛이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에도 어울렸고 무침으로 먹어도 좋았다. 생으로는 먹지 않았다. 



(왼) 꽃다지                           (오) 냉이



벼룩이자리가 지겨워질 때쯤 눈에 띄는 노란꽃이 있었다. 꽃다지였다. 처음 들어봤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와 중얼중얼 부르던 동요에도 나오는 식물. (국립국악원의 '나물 노래') 꽃다지를 검색해서 가장 반가운 구절은 '어린 식물은 식용으로 쓰인다' 부분일 것이다. 얼른 데치고 무쳐서 먹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벼룩이자리보다 못하다. 그래서 지금은 먹지 않고 그냥 다 뽑아버리고 있다. 



봄의 제왕이랄까. 쑥이 안 나오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한 달째 매일 쑥을 캐고 있는데도 다음 날 나가보면 또 쑥쑥 자라있다. 도시에서도 흔히 보이는 거지만 도시는 살충제나 제초제가 있는 땅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있으니 채집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도시에 살 때도 동네 할머니들이 칼 들고 다니며 각종 봄나물을 캐는 걸 본 기억이 있는데 자기 땅이 아닌 것은 둘째, 셋째 치고 건강이 염려되는 부분이다. 그런 걸 생각했을 때 깨끗한 내집 마당에서 나오는 쑥은 반갑고 반갑다. 그동안 쑥으로 안 한 요리가 없다. 쑥버무리, 쑥국, 쑥파스타, 쑥전... 친정엄마 칠순을 앞두고는 쑥을 잔뜩 캐다가 갖다드렸다. 시골에 사는 딸이 캐다 주는 쑥을 받아들고는 도시에 사는 엄마는 쑥이 상태가 너무 좋다며 맛있겠다고 한참을 칭찬하셨다. 



앞서 청소년 시기에 주택에 살았고 그때 마당에 돌나물이 그득그득했다는 얘기를 했던 이유는 그 돌나물이 지금 시골집에도 그뜩그뜩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뜩그뜩 : 그득그득의 센말) 주택에 살 때마다 마당에서 만나는 돌나물은 다시 만난 고향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돌나물'은 '돈나물'로 잘못 쓰는 일이 잦은데 표준어는 '돌나물'이다. 


자연 그대로의 것을 채취해서 먹는 봄의 시골생활은 여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도시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다시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남편은 괴로움에 울면서 도시로 돌아갔고 나는 아이와 둘이 시골집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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