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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y 01. 2024

지금 주소로는 배달이 어려워요

학군지 도심 아파트 단지에 살다가 인구소멸위험지역의 시골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많은 것이 변했다. 


근로자의 날이라 아이 학교에서는 재량휴업일이라고 했고 학원에서도 휴강이라고 했다. 학원 때문에 주말에도 노는 날이 많지 않아 바쁜 요즘 아이들. 이런 기회가 있는 날 아이 친구들을 불러 놀려야 한다. 아파트였다면 점심 시간 쯤에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시켰을 것 같은데 시골집에 차를 타고 놀러온 친구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여기 배달되나요...? 


안 된다. 배달어플에 들어가면 '지금 주소로는 배달이 어려워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택배는 느릿느릿 오지만 새벽배송은 안 된다. 택배가 느릿느릿 오는 이유는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꺼번에 취합해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워낙 비탈진 산길에 가로등도 없어서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아예 모든 배달이 올 수 없다. 이럴 땐 큰길이 있는 (=제설작업이 되어 있는) 읍내 중국집에 택배를 맡겨 놨으니 가져가라는 문자를 받기도 한다. 

  

나는 다행이게도 한국의 택배 문화를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 해외 생활 탓에, 하필 내가 해외 생활했던 때는 지금 같지 않아서 배달문화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흔하게 된 모양이지만. 이런 나의 과거 덕분에(?) 원래도 편리하게 이용하던 서비스가 아니었으므로 시골 주택 생활에서도 불편하지 않다. 친구들이 놀러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침에 나가서 점심 먹을거리와 간식을 사왔다. 평소에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려면 어차피 차로 산을 내려가야 하고, 어차어피 읍내에 가야하니 간 김에 장을 보면 된다는 마인드로 편리하게(!) 살고 있다. 

  


나의 주택살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어른으로서는 처음이다.

4살에 주택에 살았고 거기서 동생이 생겼다. 중간에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했고 17살에 또 다른 주택에 살았지만 그때도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관리와 관련해서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거기는 서울이니까 어른이었다고 해도 지금 사는 산골짜기 주택과는 달랐을 거다. 

 

시골집에서 겨울 아침에 창문을 여는 건 미세먼지 없는 공기 환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밤사이 눈이 왔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눈이 왔다면 마치 지각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두꺼운 옷을 챙겨입고 집에서 나가는 찻길을 제설해야한다. 경사진 그 길로만 차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어서 마음이 급하다. (아파트 살 때는 아침에 눈이 오면 지상에 댔던 차를 지하로 옮기기 위해 벌떡 일어났으니 새벽눈 때문에 발딱발딱 일어나는 건 어쩌면 똑같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아빠가 자기만의 눈썰매장을 제설하려고 나갈 준비를 하면 아이도 마음이 바빠진다. 차고에 가서 얼른 빈 염화칼슘 봉투나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야한다. 어른들이 눈을 다 치워버리기 전에 경사진 길에서 눈썰매를 한두번이라도 타기 위해서다. 요즘엔 플라스틱 눈썰매를 2만원 안팎으로 온라인에서 있는 같은데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 겨울엔 아이의 눈썰매장이었던 경사진 길은 지금 봄꽃들로 그득하다. 



눈길이 예쁘긴 하다

우리 가족의 산골짜기집은 옛날 한옥의 안채, 사랑채처럼 두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사랑채 역할을 하는 공간은 손님이 올 때만 쓴다. 손님이 오지 않아 겨우내 그냥 놔두었더니 보일러가 고장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채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안채에도 영향이 있다고 해서 겨울도 아닌데 급하게 사람을 불러 수리를 했다. 도심 아파트였다면 관리사무소에서 맡아서 했을 일이겠지. 


사람들이 와서 보일러 공사를 하는 걸 보니 영국집에서 새 보일러로 교체를 하고 몇 년 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왔던 기억이 났다. 남편에게 말했다. 


- 저거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이러다가 몇 년 뒤에 또 이사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하지만 그 예감 앞에 ‘불길한’을 븉이지는 않겠어. 왜냐하면 이번에는 불길하지는 않으니까.


지금은 또 무슨 일이 생겨서 또 낯선 어디론가 이사가기 전에 지금을 즐겨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전쟁 같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다음을 위해서 이걸 아끼고 저걸 다음에 하고..라는 생각은 다음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이걸 하고 당장 저걸 하고..로 바뀌었던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아무리 지하주차장에 차를 안전하게 댔더라도 갑자기 천장에서 녹물이나 석회물이 떨어질 수도 있고(이럴 때마다 관리사무소에서 세차비를 줬다) 여름에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주차장탈출을 위해 다급한 상황에 처하는 일도 잦았다. 내가 살던 서울의 아파트가 그랬다. 지대가 얕아 여름마다 물난리가 나서 매번 뉴스에 나오던 곳. 내가 타던 차는 덕분에 침수차로 분류되어있어 제 기능과 관계없이 팔지 못하고 폐차시켜야했다.   


지금은 주택이라 주차 걱정도 없고 산 속이라 침수될 걱정도 하지 않는다. 아직 산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제설을 관리사무소가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약간의 고통이 있으면 좋은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어둑어둑해진다. 지금 주소로는 어려운 것이 있으니 저녁 준비를 하러 이만 부엌으로 가봐야겠다. 






*층간소음이 없어서 좋다는 뻔한 이야기는 싣지 않았다. 층간소음 못지 않은 새소리 고라니소리 새벽닭울음소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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