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아니라 앙과 앵,
앙 다르고 앵 다르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 얘기다. 저출산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에 중점을 둔 낱말이라면 저출생은 출생인구감소에 중점을 둔 낱말이다. 한 온라인 매체에서는 뉘앙스(말맛)이 중요한 한국어 특성을 생각해보면 두 낱말은 결코 같은 뜻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 바 있다. 저출산이라고하면 출산이 분명 남녀 둘이 같이 하는 것임에도 마치 출산을 자기 몸으로 직접 하는 여성들에게 저출생의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랄까. 그래서 지금 '저출산'은 반드시 '저출생'으로 고쳐 써야 하는 용어이다.
20년 후 노동인구가 지금보다 천만명 감소할 것이라는 이 나라에서, 그 중에서도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이사를 온 지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어른들의 의지로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난 아이는 진달래를 뜯어 화전을 만들어먹고 애벌레를 잡아 닭에게 준다. 아이가 나무젓가락으로 하나씩 하나씩 잡은 통통한 애벌레. 그걸 받아 먹은 닭이 주는 따뜻한 달걀을 매일 줍는 것도 아이의 일이다. 물론 이런 생활을 꿈꾸었다거나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시골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다. 목적과 계획을 갖고 시골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작년 초. 이듬해부터 시골 생활을 하기로 가족과 결정한 뒤. 나는 도서관에서 가서 시골 생활 관련 책을 모조리 다 읽어 젖혔다. 3년 동안 귀농을 했다가 농사를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 10년 넘게 농사를 여전히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일에 치여 아이과 시골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 들어갔다 다시 나온 사람의 이야기, 건강이 안 좋아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람의 이야기, 그게 1년이었던 사람, 3년이었던 사람, 10년이었던 사람, 여전히 그러고 있는 사람, 주말에만 가는 사람 등등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여러 책에 녹아 있었다.
그러자 문득. 딱히 특별한 목적이 없이 시골생활을 하려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꼭 무엇을 하러 시골에 가야하나?
나처럼 그냥 어쩌다 시골에 집이 있어서 (또는 도시에 집이 없어서) 갈 수도 있지. 나처럼 목적이 없으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속독으로 읽어젖혀도 나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떤 부동산 책은 내가 사는 동네를 '아픈 사람들이 힐링하러 들어가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했다. 교통은 최악, 교육도 최악으로 분류해놓고. (부동산 책이었으니까) 그러나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들처럼 꼭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한 땀 한 땀 살아내다보니 시골 생활 5개월 차가 되었다.
하루는 마당에 모르는 할머니들이 들어오셨다. 안 그래도 날이 따뜻해지면서 꽃이 여기저기 예쁘게 피기 시작하자 모르는 노인들이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고스톱판, 술판을 벌여서 신경 쓰이던 차였다. 비닐봉지 아니 비니루봉다리와 칼 한 자루를 쥐고 쑥을 캐러 마당에 들어오는 분들도 있었다. (거기.. 제가 개똥 버리는 곳이에요..) 아무리 꽃이 피었어도, 아무리 쑥이 올라오더라도 사유지라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할미넴 여러분이 먼저 말씀을 하신다.
- 아니~ 여기가 어린이가 없는 동네인데 갑자기 어린이 웃음소리가 들려서 한번 와봤어.
어린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린이가 잠을 자고 있음에도 왜 새벽에 뛰냐며 왜 새벽에 피아노를 치냐며 따지고 들던 아랫집 남자가 생각났다. 지금은 새벽 4시고 우리 아이는 지금 자고 있어요 아저씨. 이건 그냥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bully잖아요. 이러던 내가 여기 인구소멸위험지역에선 어린이 소리가 들려서 궁금하다며 괜히 와보는 할머니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집 주소에 '골짜기'를 뜻하는 '골'이 들어가서 골짜기에 울려퍼지는 어린이 소리라고 제목을 지어봤다.
학교 통학 버스가 이 산 속 골짜기까지는 오지 않아서 매일 두 번씩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하지만 이건 해외생활을 했을 때도 그랬으니까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만약 아이들 혼자 등하교를 하는, 한국이라는 안전한 나라의 도시였다면 불편하게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원래 새벽배송도 없고 원래 등하교를 어른과 함께 하는 나라에서 살다온 덕분이랄까. 아이가 살던 곳이 원래 편세권이 아니었고 붕세권도 아니었는데 뭐가 불편하겠는가.
어쩌면 지금 연재하고 있는 이 브런치북이 작년의 나처럼 딱히 특별한 목적없이 시골 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에이 이 사람은 도시에 집이 있었으니까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었네, 라며 책을 읽던 당시의 나처럼 에이 이 사람은 원래 해외 살던 사람이라 불편함을 못 느끼니까 시골에 살 수 있지, 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 적어놓으면 나 같은 누군가가 결정을 해야 할 때 용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