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의 퍼스트하우스, 바로 우리집
모두와 친밀하게 지냈던 인싸 영국 생활과는 달리 세계가 멸망할 것만 같았던 2020년에 한국에 돌아온 나는 친밀하게 지내는 동네 엄마들이 없었다. 친구들은 많았지만 동네에는 없었고 해외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조리원 동기도 없고 어린이집 친구들도 유치원 친구들도 암튼 아무 것도 없이 다시 시작했던 터였다. 그래서 시골로 이사를 결정한 사실도 담임 말고는 딱히 알려줄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조용히 도시를 떠났다.
그런데 다행히 유령처럼 살았던 건 아니었나보다. 아이와 내가 안 보인다는 걸 인지한 몇 분들이 아직 그 동네에 살고 계시는 친정엄마에게 물어봤나보다. 영어 낱말에 익숙하지 않은 친정엄마는 학교 엄마들에게 '시골 세컨하우스로 이사갔다'고 해야 할 것을 '원래 있던 게스트하우스로 이사갔다'고 잘못 말하고 다니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 집 엄마 방송작가라고 하지 않았어? 게스트하우스도 한대? 아뇨아뇨. 여러분 저 게하 안 해요. 그냥 원래 있던 시골집으로 들어와서 살 뿐이랍니다.
숙박 업소는 아니지만 예전에 영국에 살아서 친구들이 신나게 비행기를 타고 놀러와줬던 것처럼 지금 시골집에도 신나게 놀러와주고 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크리스마스도 시골 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지. 겨울에 이사를 온 관계로 하얀 배경밖에 보여줄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꽃도 피고 쑥도 캐고 아니다 쑥은 이제 5월 중순이라 뻣뻣해져서 못 먹는다. 사방팔방에 피는 들꽃을 꺾어다가 화분이 꽂아두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가르쳐주는 꽃꽂이 수업 못지 않다고 얘들아.
대한민국 땅덩이가 작은 관계로 미세먼지도 여전히 있고 산 속이라 송화가루는 더 심한데도 모든 건 기분탓이라며 지금 이곳에 있는 게 너무 좋다며 깊은 숨을 오래 들여마셔주는 내 친구들. 여기를 세컨드하우스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해주니 더 꼬실 것도 없겠다. 가끔 베란다에 들어온 뱀 때문에 친구들이 놀라고 사마귀 몸을 다 빨아먹고 자가탈출해버리는 사마귀연가시에도 기겁을 하며 괴성을 질러도 나는 즐겁다. 이거? 너희들이 영화 연가시 때문에 공포를 느끼나본데 사람은 안 물어. 사마귀만 먹는대, 라며 시골생활 5개월쯤 되니 파브르라도 된냥 나도 몰라서 검색으로 알아본 사실들을 괜스레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Daum의 꽃검색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생각이 드는데 날이 따뜻해지면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각종 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삶의 기쁨인지. 꽃 사진을 찍고 거기에 붙은 벌이나 나방을 보면서도 피하기 보다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는 내 현재 모습에, 이게 지금 내가 쓰는 것이 맞는지 아님 칠순된 친정엄마의 카카오스토리라도 작성하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2마트에서 산 상추인데도 마당에서 재배한 걸로 알고 맛있게 먹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시골생활 한 지 5개월 차일 뿐인데 여기 살면서 야외에서 고기를 왜 이렇게 못 굽냐고 타박하는 친구도 있는데 (ㅋㅋ 미안 회식 때도 직접 안 구워본 것이 바로 고기여) 도시생활의 장점만 보고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지만 우리집에 놀러온 순간만큼은 도시생활의 단점들을 모두 쥐어짜내게 되는 가보다. 여기는 맘껏 뛰어도 되네, 여기는 노래도 실컷 부르고 피아노도 쳐도 되고, 그럼~ 얘들아. 난 새벽에도 막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밤에도 안마의자를 작동시킬 수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서로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 시골집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어쩌다보니 시골 주택 생활을 시작한 것이 내가 처음이었지만(어디 물어볼 곳이 없었다는 뜻) 친구라는 건 그렇게 서로의 처음을 응원해주고 서로의 삶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이니까 친구들의 하릴없는 표현에 나도 그렇게 대응한다.
야 좋긴 뭐가 좋아 편의점도 없고 배달도 안 되고 맨날 고라니 나오고 쥐 나오고 뱀 나오고...... on and on and on 그래도 주말에 사람 많은 쇼핑몰 가면 뭐하냐.. 물 흐르고 꽃 피는 우리집에 오는 게 훨씬 재밌지? :)
또 놀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