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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May 29. 2024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선택

한자 가릴 선, 가릴 택.

'선택(選擇)'은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을 뜻한다. 수많은 고름과 가림 끝에 지금 나는 시골에 살고 있다.


사실 제목을 ‘런던에서 시골까지’라고 쓰려다가 흠칫 멈추었다. 보조사 ‘까지’는 어떤 일이나 상태 따위에 관련되는 범위의 끝임을 나타내는데 괜스레 '끝'이라는 말을 담고 싶지 않았나보다. 우리 가족의 시골살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처음부터 하는 것을 ‘리부트’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재시동 정도가 좋겠다. 지금 이 시골생활이 우리 가족 역사에 재시동이었던 기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류 멸망의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때. 우리 가족은 한국행이라는 선택을 했다. 최선의 선택과 선택 끝에 결정된 해외살이였기에 한국행이라는 당시의 선택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국행을 처음 결정할 때는 우리가 시골에 정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것 또한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수년간 고르고 가린 결과물이니 불만을 가질 순 없다.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한국에 와서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 아이 담임이 번아웃에 대한 얘길 한 적이 있다. 내가 8학군 출신이라 그런가, 내 보기엔 학원을 많이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아이반에서는 그랬나보다. 그래도 학원을 줄일 생각은 없었다. 내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산후조리원도 못 갔고 영어 유치원도 못 갔다. 다른 아이들이 손쉽게 다니던 피아노 학원도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다니지 못했으니 뭐든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론 수업 때문에 한글을 알아야 악기 학원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시골살이 초반에 도시에서 하던대로 똑같이 영어, 피아노, 체육을 돌아가며 등록을 하고 보니 한 선생님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 순간 전화기를 붙들고 울지 않고 있는 척하며 대화를 마쳤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여긴 시골이잖아. 도시보다 훨씬 더 여유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소리를 들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4살 때 방과후수업으로 치어리딩을 했다. 끝나고 나면 집 근처에 있는 학원에서 탭댄스를 했고, 가끔 키즈 요가나 수영 특강이 나오면 시켰다. 한국인이 없는 그 동네에서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영국인 사부님이 있길래 한국인인 내 아이가 이걸 안 하면 누가 안 하냐싶은 마음으로 학교 친구 3명과 함께 등록해 코로나로 대면수업이 사라질 때까지 다녔다. 그래서 번아웃이 왔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갸웃거렸던 것이다.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왜? 영국에선 그런 소리를 못 들었는데.. 오히려 왜 한글학교는 안 보내냐, 악기는 왜 안 하냐는 소리만 들었는데...


버스와 택시가 다니는 뛰뛰빵빵 환경에서 뒤에 산이 있고 앞에 계곡이 흐르는 시골로 환경만 바뀐 것이지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 시간이 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학교 수업을 듣고, 끝나면 학원을 돌고, 해가 질 때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난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달리 국영수는 진도가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가끔 한글책을 읽어주거나 가나다를 따라 쓰게는 했지만 다른 한인 아이들처럼 한글학교를 보내지도 않았고 결국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지금 한국어를 못 하느냐? 지금은 굳이 언급하지 않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해외에서 나고 자란 애 같은 느낌이 전혀 없을 만큼 한국어를 잘한다. 한국에서 한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국어, 논술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닌데. 나는 기다림을 선택하지 않고 재촉을 선택했던 걸까.


아이의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무엇을 배울 땐 항상 아이에게 먼저 물었다. 아이가 4살이었을 때도, 아이가 9살인 지금도 '이거 배우고 싶으면 등록할 건데 할래?'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생각해보고 말해줘' 따위의 질문을 반드시 하고 아이가 그만 다니고 싶어할 때도 '학원비 결제한 것까지만 다닐까? 정말 그만 다니고 싶으면 얘기해줘. 다음 달에 등록 안 할게'하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다행히 선생님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피곤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번아웃이 온 것처럼 눈이 게슴츠레 풀린 것은 유감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까지 선택권을 주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그래서 나도 홈스쿨링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하니 인구소멸위험지역인 이곳 학교도 아주 잘 다니고 있다. 도시만큼 다양하진 않아도 주어진 학교와 본인이 선택한 학원을 나름대로 열심히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마음만 먹으면, 적금을 깨거나, 영국 은행에 있는 돈을 한국으로 가져온다거나, 은행 대출을 받는다거나 또는 집안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겠다고 했다면 얼마든지 도시에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시골 생활을 선택했다. 우리 아이는 지금 또래들이 할 수 있는 세 자리 수 나누기 두 자리 수는 몰라도 꽃다지와 개망초가 먹을 수 있는 풀이라는 걸 안다. 바위를 들면 온갖 벌레들이 아래에 드글거리는 걸 알면서도 괴성 한번 지르지 않고 구경을 할 수 있다. 손등에 붙은 무당벌레 한 마리에 비명을 지르는 도시 아이들이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개망초나물. 시금치같은 식감에 씀바귀 고들빼기 같은 쓴맛이 매력적이다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빌렸다. 책 날개에 붙은 저자 소개를 보니 '앞뒤로 산밖에 없는 어디어디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닭과 소와 개구리, 비와 바람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나중에 뭐가 되든 우리 아이도 이런 소개를 덧붙일 수 있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 소개 : 템스강의 물비늘이 반짝이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코로나 19로 부모와 함께 한국으로 이사한 후 인구소멸위험지역에 살았다. 어린 시절 친구는 닭과 개구리, 방아깨비와 계곡의 가재였다. 그리고.."


그리고 이후는 아이가 만들어나가겠지. 그 여러 갈래의 길을 이 아이도 고르고 가리며 걸어갈 것이다. 만약 아이가 도시에 살고 싶다고 하면 얼마든지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고, 만약 아이가 다시 해외로 가고 싶다고 해도 우린 준비가 되어있다. 아이가 나중에 하게 될 선택에 내 힘으로 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건 우리 부부가 그동안 열심히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온 결과물일 거다.



오랜만에 마당에서 뱀을 봤다. 5도 2촌 생활을 하던 작년 가을에 처음 보고 겨울잠에 들어간 터라 한동안 보지 못했다. 겨울엔 춥고 제설작업을 해야 하지만 모기가 없고 뱀도 없다는 점이 좋았다. 이제 춥지는 않지만 눈을 한껏 크게 뜨고 산모기에 물리지 않으려 긴팔을 입고 뱀에 물리지 않으려 긴 장화를 신어야 한다. 산모기는 집모기와 달리 물리면 멍이 든다. 영국에 살던 10년 동안은 모기를 모르고 살았다. 매일 비가 오기 때문이라는데 '햇빛을 잃고 모기 만나지 않기 VS 햇빛을 쐬고 모기 만나기' 밸런스 게임을 한다면 지금은 후자이다. 기꺼이 피를 내어주고 이 나라의 경도와 위도가 주는, 뼛속 깊이 들어오는 햇빛을 만끽하고 싶다.



*영국에선 일본뇌염예방접종이 필수 접종이 아니었다. 한국에 와서 뒤늦게나마 맞았으니 아이도 맘껏 이 햇빛을 누릴 수 있기를. 이 경도.. 이 위도.. 이 햇빛.. 못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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