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믿기는 힘들겠지만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차이를 아직도 잘 모르겠는 내가 브런치를 연재해보려고 했을 땐 분명 물리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매주 수요일로 설정을 해놓고는 이게 이렇게 부담이 될 줄이야. 20년 차 방송작가로서 피디들의 재촉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나와의, 구독자와의 약속을 못 지키게 될까봐 심장이 뛰는 모습이라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진행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약속한 수요일마다 새로 글을 썼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미리 써두고 약속된 시간에 올렸다면 조금 여유가 있었으려나. 지금도 1층 부엌에서 커피가 들어있다는 녹차라떼를 하나 만들어 2층 작업실로 올라왔다. 이 시골 브런치북의 마지막 발행을 하기 위해.
1) 벌
어젯밤에는 택배차량이 상자 두 개를 두고 갔다. 난 택배를 주문한 게 없어서 택배 차량이 집 앞에 섰을 때 조금 무서웠다. 저 차가 왜 우리 집앞에 서지? 어? 잘못 들어왔나? 아파트에선 복도에서 펑펑펑펑 택배 던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도 하나도 안 무섭더니 똑같이 현관문이고 게다가 방범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는 주택에서 뭐가 무섭다고 차 한 대에 벌벌벌 떠는지. 아직 시골 주택 생활 6개월 차가 그렇다고 치자.
알고보니 남편이 말벌 트랩이라 불리는 말벌 포획기를 주문했단다. 그럼 오늘 뭐 올 거 있다고 미리 얘길 하든가. 아우 심장이야. 이걸 쓰면서 어젯밤에 놀란 생각에 괜스레 열이 받아 아까 1층에서 진하게 타온 녹차라떼를 벌컥 벌컥 들이마셨다.
해가 따뜻해지고 꽃이 피기 시작하자 벌들이 나타났다. 매일 뉴스에서 보는 꿀벌은 멸종 직전이라 다들 울상이라는데 왜 우리집은 온갖 벌 종류가 기승을 부리는지? 여러분 대한민국의 벌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여기서 채밀을 하십시오! 그야말로 N잡러였던 우리 엄마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는 양봉에도 일가견이 있으셨다. 할아버지가 떠서 보내주는 꿀단지에는 항상 꿀벌 한두마리가 들어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피가 나에게는 대물림 되지 않았는지 양봉은 관심이 없고 그저 우리 애가 벌에 물리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남들이 한다는 도시양봉에는 무척이나 관심이 있다. 여러분 응원합니다 파이팅) 왜냐하면 아이 학교 친구의 아버지가 산책 중에 벌에 쏘여 20분 만에 사망한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차로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 (차가 하나도 밀리지 않는다는 전제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다치면 안 돼. 병원 없어.
내 아이가 지긋지긋하다고 잘 정도로 자주 한 말이다. 또 손님들이 올 때마다 늘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 어떤 약국 못지 않게 방방마다, 층층마다 무슨 약통이 이렇게 크냐고 할 정도로 놀랄만한 사이즈에 약이 한 가득 들어있긴 하다. 왜냐하면 가까운 병원이 없기 때문에.
다시 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따뜻해지면서 나타는 각종 벌 중에 정말 무지막지한 사이즈의 벌도 있다. 이 말을 하면 보통 벌새와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 도시친구들도 있지만 얘들아 그건 새잖니. 내가 새랑 벌도 구분 못하면서 시골에 들어와 앉아있겠니. 믿어줘. 그건 벌이야.
시골에 사는 친척도 하나 없어서 나와 달리 시골에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처음인 남편은 인터넷에서 말벌을 검색한다. 말벌유인제를 만들 수 있다면서 막걸리, 포도주스, 흑설탕 등을 섞어 마당에서 발효중이다. 시큼달콤한 냄새가 사람인 내 코를 이리 찔러대는데 말벌은 어떨까 싶다.
2) 진드기
야외생활 후에는 반드시 옷을 털거나 빨고 샤워를 해야 한다. 너무 도시사람 같은 소리일 지 모르겠으나 어느 날 사랑이(개)에게 붙은 진드기를 보고는 아 뉴스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살인진드기는 아니었는지 사랑이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만 그때 그 진드기는 피를 잔뜩 빨아먹고는 제 몸이 터질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이게 우리 애 몸에 붙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나 더 얹는 꼴이 되긴 했다. 요즘 빠알간(빨간이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이 정말 빠아아아아알간 색을 하고 있다) 뱀딸기가 아이의 눈을 현혹시켜 매일 풀밭을 쏘다니며 딸기 채취를 하는데 먹지도 않을 거면서 진드기에게 피나 빨리는 건 아닌지 매일 잔소리를 한다. 도시와는 다른 잔소리일 테지만. 야아아!! 장화 신어!! 진드기랑 뱀이랑 산모기랑.... 암튼 신어!!
뱀딸기는 보이면 무조건 먹어둬야 하는 좋은 음식이라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강변에서 뱀딸기를 보고 따 먹었다는 이웃분도 계시지만 뱀딸기는 아무래도 내년 쯤에 용기가 생기면 그때 섭취해보는 것으로. 올 봄은 마당에서 캔 쑥과 마당에서 딴 개망초만으로도 만족이다. 사실 쑥과 개망초를 딸 때도 손가락 위로 기어 오르는 진드기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돌나물을 채취할 때 손으로 기어오르는 빨간 진드기가 있는데 남편이 또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사람에게 특별한 해는 없고 물에 닿으면 거의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다 남편의 검색 실력을 믿지 못한다) 물에 닿으면 죽는 게 아니라 습도에 약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한민국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돌나물 주변에 있는 빨간 진드기들은 가을엔 보지 못할 것으로 사료된다. (돌나물은 작년 경험에 의하면 가을까지 먹을 수 있기도 하다)
3) 고양이
여기 시골 고양이들은 도시 고양이와 달라서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도시에 살 때, 아이 학교 근처 고양이들은 애들 하교 시간에 맞춰 떡 하니 학교 앞에 나타나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용돈으로 사는 츄르와 여러 간식들을 애교 한번 없이 받아먹곤 했는데 우리집 마당에 가끔 나타나는 고양이는 내가 참치라도 한 캔 줄까 싶어서 나가보면 화들짝 놀라 도망가고 없다. 그래도 내가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올까 싶어서 참치를 덜어놓고 오면 그땐 이미 고양이밥은 없다. 개미들이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나타나 금방 싹 쓸어가기 때문이다. 개미에게 지는 고양이라니. 너 도시 한번 다녀와야겠다. 네가 산속에 살아서 지금 배가 안 고프지? 앙?
닭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고부터 닭 사료를 빼앗아 먹는 산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매일 알을 낳는데 그 옆으로 산쥐가 왔다갔다 할 걸 생각하면... 이 유정란을 먹어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시골에는 쥐 뿐 아니라 고양이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닭 사료 냄새를 맡은 쥐가 나타나 닭을 괴롭히기 시작하면 일단 옆에 입주하고 있는 개가 짖기 시작하고 그러면 어디선가 고양이님이 나타나주신다. 요즘 어떤 쥐 덫은 끈끈이 형식인 것 같은데 다른 반려동물을 같이 키우고 있다면 아주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나 개 몸에도 붙을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고양이님!! 제 유정란을 아니 닭 사료를 지켜주세요!!! 참치 한캔 올려드리겠습니다!! 대신 빨리 오셔야해요! 안 오시니까 개미들이 다 먹잖아요....
사실 이 브런치북의 제목은 아이돌 그룹 온앤오프의 노래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 따 왔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 가사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별일 아냐 내 뒤에 숨어 슬픔에 관한 면역력은 내가 더 세"라고 생각하는데 2019년 2월 발매이니 코로나가 발생하기도 전에 나온 노래인데 벌써 '면역력'을 언급하다니. 그것도 아이돌 노래에서? 그때는 면역력하면 홍삼만 떠올리던 때 아닌가?
2024년인 지금은 면역력 하면 홍삼 뿐 아니라 코로나, 사스 뭐 다 떠오를 만큼 시대가 그렇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골 생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내게 이 문구만큼 와닿는 제목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사랑하게 될 거야, 시고르 라이프.
에이, 다들 도시 살고 서울 사는데 아무래도 어렵다고?
별 일 아냐 내 뒤에 숨어 시골에 관한 면역력은 내가 더 세.
이 브런치북을 읽으며 시골생활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lights off
갑니다 이제.
+더 자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깊게 하고 싶었는데 이걸 연재하는 동안 집안에 입원하신 분이 두 분이나 계셔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동안 수요일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