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경력자입니다만

by Aeon Mar 10. 2025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알바를 했던 것은 1999년이었다. 그때는 서울 청담동에 살고 있던 학생 신분으로 맨날 놀러다니던 압구정에서 우연히 알바를 찾는다는 종이가 붙은 카페를 보았고 그냥 들어가서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집 앞에서 '강남구청역'을 만든다고 매일 시끄럽게 공사를 하고 있었고, 압구정로데오역도 없었던 시절. 청담동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두정거장 지나 내리면 압구정이었다. 그때 그 카페에서 몇 달 먼저 일을 하고 있던 동갑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와 학과를 물으니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가 간 연극영화과와 똑같은 곳이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너 걔 알아? 나 걔 친구야! 뭐 그런 거. 배우를 꿈꾸던 그 두 친구는 모두 연극/ 방송계에 진출했고 나는 나중에 방송작가가 되어 일터에서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신기하다 이야기한다. 용돈을 위해 카페에서 알바하던 것뿐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사이좋게 연락을 하고 잘 지낸다는 것이. 


다시 압구정 카페로 돌아가자. 수많은 기억과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당시에 사장님은 우리보다 두 살 많은 청년이었는데 건물주의 아들이었다. 알바생들이 연영과라 너무 예뻐서였을까 (나 빼고) 알바-사장의 딱딱한 수직 상하 관계는 절대 아니었고 그냥 친한 선후배 같은 느낌으로 편하게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손님이 유자차를 주문해서 다른 알바생이 숟가락으로 유자청을 크게 뚝 떠서 뜨거운 물에 타 쟁반에 나갔는데 그 손님이 입에서 피를 흘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오전 알바생이 그 유자청 유리병을 어제 깨뜨렸었고 그대로 버려야 할 것을 그대로 주워 다른 통에 담아놓는 바람에 오후 알바생이 그걸 모른 채 유자차를 타서 손님에게 나간 것이었다. 오전 알바생은 그 일로 잘렸고,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99년의 그 손님은 괜찮다며 휴지로 피를 슬쩍 닦고 말았다. 옆에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본 나는 그 사건으로 배운 것이 많았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이번엔 시골 카페로 돌아가자. 알바 첫 날, 사장님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저 설거지만 해주어도 일손을 더는 곳이라 그랬을 터. 설거지야 뭐, K장녀, K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손이 빠르다며 칭찬을 받았다. 그때그때 설거지가 끝나면 아아잔에 얼음을 넣는 것 정도만 했다. 이건 99년 압구정에서는 해본 일이 아니었다. (그때도 자동으로 얼음 만들어주는 냉동고가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궁금) 사람은 늙어서도 배울 일이 천지다. 얼음을 얼마나 담아야 할지, 얼음 한두개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어떻게 담을지, 지금은 알지만 첫 날엔 몰랐다. 사람들은 왜 죄다 아아만 시키는지, 이 시리고 무릎 시린 이 아줌마는 이해불가. (positive!)


25년 만에 다시 시작한 카페 알바 이야기, 이것도 심심해서 시작한 것임을 밝혀야겠다. 내 본캐가 방송작가라는 걸 아신 카페 사장님의 어머니는 이 카페의 건물주이신데 알바를 하러 온 나를 보자마자 '아니, 유명하신 분이 왜...'라고 말씀하셨다. 심심해서요.... 



* 공교롭게도 압구정 알바 친구가 동갑이었던 것처럼 시골 카페 사장님도 동갑이다. 반갑다 친구야.



작가의 이전글 국내산 단팥죽이 시작이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