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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나는 마당이 있다

by Aeon Park

긴 연휴가 끝나고 드디어 아이도 학교에 간 그 조용한 집의 순간이 부모들에게는 진정한 휴식의 시간이 아닐까?

연휴 내내 북적대던 마당에 오랜만에 나가보았다.

콩 아님. 먹는 거 아님. 분꽃 씨앗이다. 매우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는데 자연의 힘으로는 쉽게 싹을 틔운다. 그 힘이 볼 때마다 신기. 이 분꽃의 출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84KM 떨어진 어떤 도시에 살고 있던 우리 엄마. 엄마가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분꽃 씨앗이 툭툭 떨어져 있어서 몇 개 주워왔다며 너네 마당에 심으라고 열 개인가를 주셨는데 그게 지금 온 마당을 뒤덮고 있다. 마당이 있다면 분꽃심기를 추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땅이 다 분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생명력으로 지난 여름, 사망자를 낼 만큼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수해를 맞고도 그 씨앗이 살아남아 마당에 피어있다.

줄기를 보라. 마치 동물의 뼈 같다. 날씬한 내 팔목만하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해서 내년에나 다시 볼 것 같은 분홍분꽃.

노란 분꽃도 있다. 아파트 단지에 흰색은 없었나? 드물지만 흰색도 있다고는 한다. 우리집에선 못 봤다.

비젯티접란. 나비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냥 접란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혼자 사시던 친정엄마가 건강 상의 이유로 아들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원래 키우시던 각종 실내용 화분들을 시골에 사는 나에게 버렸는데 (못 키운다고 막 버리는 거 이거이거 식물학대야 이거!) 한동안 나도 엄마처럼 실내에서 물이나 주면서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성수동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거기서는 이 식물을 그냥 밖에 심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 경관을 위해 여기저기 놔둔 걸 보니 아마도 성동구에서 관리하는 화분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거 밖에서도 큰다고? 싶어서 나도 그날 집에 돌아와 땅에 심어놓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러너'라고 부르는 긴 줄기들이 호박마냥 계속 땅에 박으면서 옆으로 뻗어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호박과 비교하는 것도 올해 호박을 처음 땅에 심어봐서 알게 된 지식. 비록 마당을 다 덮고 있던 호박은 큰비로 물에 떠내려갔지만... 흑흑

이모들이 놀러와서 밤을 주워놓고 간 흔적도 마당에 그대로. 누구는 이걸 겨울 연료로 쓴다던데 생각보다 잘 타지 않는 것 같기도.

숲해설가인 이모의 설명에 따르면 이게 산초나무라는데 추어탕에 넣는 그 산초?

열매로 뭘 할 수 있는 모양인데 기다려보기로 한다. 산초 장아찌 어때.

집 주변으로 듬성듬성 보이는 버섯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덴마크에는 버섯 투어도 있다던데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버섯이 없어서 그런 투어는 만들지 않는다. ㅎ

이건 색깔이 또 다르네. 습기가 있어서 그런가 주변에 돌나물도 엄청 많다.

돌나물은 어쩌면 우리집보다 더 넓게 분포하고 있을지도. 보통 봄나물로 알고 있지만 가을에도 봄철처럼 탱탱해서 먹을 수 있다.

모종의 이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곤충이 마당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너 그러다가 사마귀한테 먹혀! 힘껏 날아 도망쳐!


지난 연휴 내내 내 의지와 반대로 마당에 있다가 베란다로 다시 들어온 식물들도 있다.

엄마가 문주란(文珠蘭)이라고 잘못 부르는 군자란(君子蘭). 둘 다 수선화과인 것은 맞다. 이렇게 잎에 아픈 무늬가 생긴 것은 어르신들은 햇빛에 놔두면 식물에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 어르신들이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식물을 다 밖에서 내놓고 그러시더니 결국 아픈 무늬가 생겼다. 흑흑 이거 햇빛 받으면 안 된단 말이야. 흑흑

피해자 2

또 다른 직사광선 피해자 행운목.

아흑 가슴이 찢어진다. 그래도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줄 거라 믿으며 다시 살려내야지 뭐. 조금만 참자.


마당 구경,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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