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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Sep 02. 2023

고인물 직장인의 슬랙 신문물 적응기

10년 차 직장인의 이직 적응기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면서 반드시 친해져야만 하는 게 있었는데, 그건 이름만 들어봤지 뭔지도 몰랐던, 슬랙이었다. 슬랙? 그게 뭐예요?




 회사 첫 출근날 신규 입사자들을 위한 온보딩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슬랙이라는 걸 구경하게 되었다.


"이따 자세히 말씀드릴 거지만, 저희 회사에서는 슬랙으로 업무를 해요. 슬랙 써보신 분 있으신가요?"


이 질문에 같이 입사했던 8명의 동기 중 딱 50%가 손을 들었다. 물론 나는 손을 들지 않은 50%에 속했다.


"저희가 이 질문하면 평균적으로 딱 절반이 써봤다고 답을 해주시더라고요. 슬랙 사용법은 이따 다시 설명드릴게요."


 나중에 동기들과 대화를 트게 되며 서로의 이전 직장이 어딘지 알게 되었는데, 이 슬랙의 사용 유무에 따라 전 직장 부류(?)도 전통적인 기업과 요즘 회사로 나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슬랙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쿠팡, 오늘의 집, 야놀자 등 흔히 젊은 회사, 스타트업 기반의 IT회사가 주를 이루었다. 요즘 젊은 기업들은 슬랙이라는 걸 많이 쓰는구나.... 나는 솔직히 슬랙이 뭔지도 몰랐다. 슬랙 그거 그냥 메신저 같은 거 아냐? 근데 메신저가 뭔데 사용법까지 알아야 하지?


 이직한 회사의 메일 계정을 생성하고 긴장된 상태로 입장한 슬랙. 슬랙에 대한 내 첫인상은 '정신없음', '기 빨림'이었다. 단체 카톡방 같은 게 엄청 많이 있는데,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업무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고 온갖 화려한 이모지들이 잔뜩 달린 이상한 세상이었다.  


"저희는 슬랙과 구글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공식적인 회의를 진행할 땐 보통 구글밋을 많이 사용하고, 가벼운 질문은 슬랙 허들을 사용해요. 슬랙에서 업무 진행하고 관련 내용을 이어가시려면 스레드로 남기면 돼요."


허들은 뭐고, 스레드는 또 뭔지 온갖 외계어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저기 선생님, 전 사실 컴맹이에요...




 약 4개월간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슬랙을 쓰면서, 이제 이 슬랙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대략 알게 되었다. 슬랙은 한마디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 트위터 + 메신저 + 사내 전화 등 모든 기능이 짬뽕이 된 업무용 메신저다. 핸드폰이랑 연동되기 때문에 내가 컴퓨터를 OFF 하여도 나에게 보내는 DM을 핸드폰 알람으로 받을 수 있다. (별로다.)


 타 부서 사람과 업무적으로 소통을 하는데 메신저로만 이어가기에 한계가 있다면, 허들을 이용하면 된다. 허들은 내선전화와 같은 기능이었다.


"땡땡님 잠깐 허들 가능하세요?" 묻고 허들 버튼을 누르면 전화하는 것처럼 상대와 소통이 가능했다.


보라색이 기본 테마인 듯?


이 슬랙 때문에, 이전 회사에서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이직하며 사라진 것이 2개가 있다.


1. 팀 단체 카톡방

2. 내선 전화


팀 슬랙방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면 되고, 내가 멘션 된 내용은 핸드폰으로 알람이 오기 때문에 단체 카톡방을 만들 필요가 없다.


또한 슬랙 허들로 업무 이야기를 하면 되기 때문에, 사내 전화도 당연히 사라졌다. 전화올 때마다 기계처럼 읊었던 "감사합니다 마케팅팀 000입니다" 대신 이제는 "허들 가능하세요?"라고 하고 내 업무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 모든 게 슬랙 하나로 가능하기 때문에 팀 동료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아도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직한 지 3개월이 넘은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 전화번호를 저장한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업무적으로 필요했다면 당연히 저장했을 텐데,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전화번호를 저장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나는 원래도 전화번호를 잘 저장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전에 새로 운 팀장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있다가 팀장님 전화를 못 알아채고 제대로 응대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던 적도 있다.) 나는 보통 업무를 하면서 필요에 의해 한 명 한 명씩 번호를 저장하는 스타일인데, 이 회사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개인 전화번호를 저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슬랙이 너무 알아서 다 잘해주니, 카톡도 필요 없고 개인 전화번호 저장할 필요가 없다.


 한창 사회적으로 회사 단톡방의 업무 시간 외 개인시간 침범 문제로 이슈가 됐던 적이 있었다. 또 개인 프로필 사진을 내가 원치 않는 회사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함 때문에 카톡에서 제공한 멀티프로필 기능이 환영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굳이 카톡을 활용하지 않아도 슬랙 하나로 업무 진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툴이 된다. 그렇지만 겪을수록 이 이상으로는 더 친해질 수 없다는 묘한 경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도 열심히 슬랙을 노려보며 일하다가 퇴근했다. 띵동 하는 소리와 알람을 순간적으로 놓치면 내가 멘션 된 스레드를 못 찾아서 한참 헤맨다. 각양각색의 업무방 리스트를 스크롤하면서 이 주제를 이야기했던 업무방은 어디였더라? 하며 찾는 것도 부지기수다. 우리 팀 한 동료는 초대된 업무방만 100개가 넘는단다. 나는 아직 100개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만큼 초대되고 싶은 마음도 1도 없다. 생각만 해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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