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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Aug 30. 2023

내 자리가 없는 회사

10년 차 직장인의 요즘 회사 이직 적응기


이 글은 어쩌다 보니 요즘 회사, 젊은 회사로 이직한 10년 차 직장인의 이직 적응기를 담은 기록이다.  


약 9년의 시간 동안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인 회사에서 한결같이 다니다가, 얼떨결에 요즘 젊은 회사의 마케터로 이직하게 됐다. 정규 분포의 대척점, 양 극단에 있는 수준으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10년 차 고인 물 직장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직한 회사에서 가장 적응이 안 되었던 점을 꼽으라면, 회사에 출근해도 내 자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스마트 오피스 뉴스에서나 들어봤던 표현인데, 내가 진짜 스마트 오피스로 출근을 하게 되다니...


사실 어디에 따로 말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집이 아닌 다른 곳-회사 내 자리-에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꽤나 안정감을 느꼈었다. 이게 무슨 안정감이냐 하면 뭐라 설명하기 어렵긴 하지만... 집 외에도 내 맘대로 내 물건을 둘 수 있고, 내 마음대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출근하고 앉는 회사의 내 자리였다고나 할까? 공공의 공간이지만 회사의 내 책상, 내 자리는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그런 나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전 회사 내 자리.jpg

새롭게 이직한 회사는 스마트오피스라며 내 자리가 없었다. 출근하면 도서관처럼 사원증을 태깅하고 오늘 하루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자리를 예약하느라 바빴다.


예약하고 찾아간 자리엔 모니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 공간인데, 여기에 집에서 이고 지고 온 노트북과 핸드폰, 파우치 등을 놓고 하루살이 근무를 하게 된다. (출근할 때 맨날 노트북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이직하고 처음으로 잔스포츠 백팩을 샀다.)


퇴근할 땐? 언제 여기서 내가 근무를 했었는지 싶을 정도로 내 흔적을 싹 치운 채 사라진다. 메뚜기떼 마냥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출근하는 이 패턴이 꽤나 적응이 안 가고, 괜히 정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퇴근이라니... 가뜩이나 낯선 회사인데 정 붙이기가 더 어려웠던 입사 초반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나는 책상을 참 지저분하게 썼었는데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물건 정돈을 잘 못했다. 집은 그렇지 않음) 이곳에서는 작은 흔적 남기기가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퇴근하기 전 찍었던 사진.jpg

물론 이것도 다 한 때였던 게,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출근할 일이 거의 없다. 전사적으로는 전면 재택인 상태이고, 우리 팀은 월 1회 출근을 진행한다. 한 달에 한 번 출근을 하니 뭐 회사에 흔적을 남겨놓는다 하더라도 다음 달에나 찾을 수 있어서 오히려 곤란하겠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는 것. 물론 생계를 위한 자리였지만 그래도 일주일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아지트처럼 느낄 정도로 안락했던 내 자리였는데, 이제는 그런 공간이 없다. 이 사실은 재택을 하고 있는 지금도 꽤나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재택근무 하는 주제에 배부른 소리 한다고 공격받는다면, 할 말은 없다.




작년 11월 이직하면서 지금까지 간간히 적었던 기록들을 모아 브런치에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올린 글은 이직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썼던 일기입니다. 이제는 벌써 새로운 직장에서 일한 지도 9개월의 시간이 지났네요.


지난 일기들을 시간 순으로 올릴 계획이고, 시간이 지나며 생기는 생각의 변화들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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