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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현 Oct 18. 2024

수요일은 뉴진스

2부. 팀장은 안할래요.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매주 수요일은 사무실 출근을 한다. 주 1회정도 동료들과 만나 밀린 이야기도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출근하는 수요일에는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침대 정리를 한다. 얼마 전 한강에서 걸으며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 이후로, 요즘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침대 정리를 한다. 침대 정리를 하면서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마음 다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출근을 했던 시절에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서 이런 마음 다짐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는 일상에서는 사무실 출근을 위해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행위가 특별한 의식이 된다. 일주일 중 주말을 제외하고는 딱 한 번뿐인 외출이니 아무래도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출근을 위한 마음 다짐 대신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기 더 바쁘다. 아무래도 주중 딱 하루만 출근을 하다보니, 차려입는 것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주 가지고 있는 몇 없는 아이템들 중 고르고 골라 조합하여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주 1회 출근하는 것이니 지난주 입은 아이템과 겹쳐서는 안된다. 일주일에 달랑 한 번 출근하는데 왜 여전히 입을 옷은 없는 것인지, 옷장을 뒤적이며 평생의 숙제 ‘오늘은 뭘 입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심끝에 얼마 전 새로 산 폴로 데님 셔츠에 화이트 팬츠를 입고,“또” 얼마 전 새로 산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등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단단하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엇 오늘 폴로 셔츠 입고 왔네요?”

“크크 얼마 전에 새로 샀어요”

“나도 며칠 전에 새로 샀는데, 입고 오기 전에 서로 말해주기~”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같은 팀 동료 소영님과 티타임 시간을 갖는다. 출근의 소소한 낙이자 재미이다. 항상 티타임을 하면서 서로 오늘은 뭘 입었는지 체크하며 스몰 토크를 한다. 재밌는게 소영님도, 나도 일주일에 겨우 하루 출근하면서, 회사올 때 입을 옷이 없다며 출근을 위한 옷 쇼핑을 성실히 한다는 점이었다.


“아니 맨날 집에서 잠옷만 입다가 출근하려니 오히려 더 신경쓰이는거 있죠?”

“저도요. 그래서 저 지난주에 이 폴로 셔츠 새로 샀잖아요.”

“크크 저도요.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무거나 입지도 못하겠어요.”


나이가 있어서 아무거나 입지도 못하겠다는 말이 예전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사회초년생이었을 때만 해도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모든 쇼핑을 해결했는데, 요즘에는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브랜드가 있는 옷을 입어야 나이에 어울리게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묘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3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내 또래의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거적대기 옷을 입어도 반질 반질 예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신경써서 입어줘야 봐줄만하단 슬픈 사실을 말이다. 


“어머 혜인님 오늘 뉴진스처럼 입고 왔네. 너무 예뻐요”


특히 우리 팀 가장 막내인 혜인님을 볼 때마다 느낀다. 이제 20대 중후반인 혜인님은 그 나이답게 항상 통통튀고 상큼한 착장을 뽐낸다. 혜인님은 요즘 유행하는 발레코어룩을 입고 왔다. 깜찍한 리본 디테일이 혜인님의 나이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누가봐도 예쁘지만, 내가 따라 입을 수는 없어서 그저 볼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뉴진스 같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뉴진스 같다는 나의 칭찬에 혜인님이 부끄러웠는지 민망해하며 꺄르르 웃었다. 그런 모습이 재밌어서 일부러 더 놀리기 바빴다. 


혜인님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든다.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고(그렇다고 아무거나 입는다는 뜻은 아니다.) 화장을 해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쁠 나이다. 나도 아직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내 나이가 체감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브랜드와 가격을 따지며 내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찾는 내 모습을 보다가, 주변 시선 상관없이 자기와 어울리게 입으면 그저 예쁜 혜인님이 부러웠다.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할 몫만 훌륭히 잘 소화해내도 칭찬받던 시절이 있었다. 시키는 일 실수없이 꼼꼼히 잘 해내면 주변 선배들이 너 참 일 잘한다며 칭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의 혜인님이 그렇고, 과거의 어린 내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주변 시선을 신경쓰며 나와 어울리는 옷을 찾고 가격과 브랜드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끝내는 것이 민망하고 신경쓰이는 연차가 되어버렸다. 내 할 몫을 훌륭히 소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내 일을 넘어서 우리 팀의 일도 봐야하고 후배의 업무도 같이 챙겨줘야 하는 그런 연차가 되어버렸다. 그 사실이 가끔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버겁기도 하다. 내 할 몫만 잘 하는 회사생활이 이제는 욕심이 된 것일까? 


오전에 회의가 있어서 모닝 티타임을 마치고 노트북을 챙겨 회의실로 갔다. 늘 화상회의에서 보던 팀 동료들을 일주일만에 실물로 보는 시간이다. 화면 속에서 항상 편한 복장으로 있던 동료들이 저마다 자기에게 어울리게 예쁘게 멋있게 차려입고 회의실에 앉아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대충 빗은 머리와 민낯으로 함께 회의를 하던 친구들이 멀끔하게 차려입고 눈 앞에 있으니 재밌다. 물론 내가 할 소리도 아니긴 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검은 티만 입고 있던 나도 오늘은 풀 착장을 하고 왔으니 말이다. 


“굿모닝~ 다들 잘 지냈어요?”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팀장님이 들어오시며 오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팀장님은 오늘 화이트 블라우스에 베이지 슬랙스를 입고 오셨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포멀한 커리어우먼의 표본이었다. 팀장이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회의를 진행하며 팀 업무를 챙기고, 여러 의사결정을 내려주시는 팀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역시 팀장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걸. 앞으로 블라우스에 슬랙스는 절대 입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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